잠깐 영화 이야기

영원한 추억 속의 소공녀 셜리 템플

Shain 2014. 2. 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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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릴 때부터 고전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어른들의 영화는 가끔은 이야기를 쫓아가기 너무 힘들었던 반면 주로 흑백으로 만들어진 고전영화는 천천히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가 참 느낌이 좋았습니다. 때로는 KBS에서 보여주는 고전영화 시리즈를 봤던거 같고 한때는 EBS에서 보았던 것같은데 한국 고전 영화든 외국 고전 영화든 지나치게 시각적으로 변해버린 요즘 영화와는 색다른 매력이 있더군요. 어제 85세로 사망한 셜리 템플(Shirley Temple)은 고전 영화 속에서 언제나 귀엽게 웃는 영원한 공주님 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나이든 셜리 템플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했다고 했으니까요.

세계인들의 영원한 소공녀 셜리 템플 타계하다. 아쉬운 그녀의 사망 소식.

 

셜리 템플은 아역배우의 대명사였습니다. 아카데미상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한 그녀는 어린 나이에 탁월한 연기로 대공황을 겪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귀족'적인 그녀, 흑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떠받드는 귀족, 시대착오적인 공주 역할이 껄끄럽기도 하지만 귀엽다는 이유로 모든게 용서가 되었을 정도죠. 1928년생인 셜리 템플은 대스타였고 문화의 아이콘 이었습니다.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양 행복해 했습니다.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1937)' - 하얀 얼굴에 검은 얼굴, 붉은 입술을 가진 귀여운 공주님 - 는 셜리 템플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유명한 이야기, 그녀의 이름을 딴 무알콜 칵테일 셜리 템플, 셜리 템플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형과 아동복 등 그녀는 시대를 초월해 귀여운 여자아이의 상징이었습니다.아무도 영화 속 셜리 템플이 나이드는 것은 바라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 덕분에 불과 17세의 나이로 그녀의 배우 생명은 단절되어야했으며 어린 시절의 명성을 잇지 못하고 개봉하는 영화 마다 실패하는 쓴맛을 봐야했죠.


 

어린 배우가 성숙한 어른이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천재적인 연기력과 모든 사람을 사로잡은 어린 서절의 영광은 쉽게 누릴 수 없는 행운이었으나 한명의 여배우로서는 그녀의 인생을 발목잡는 족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역배우가 성인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셜리 템플을 꼽곤 했죠. 그러나 배우로서는 크게 활약하지 않았던 셜리 템플은 70년대 외교대사로 활약하며 문화사절의 외교적 역량을 보여줍니다. 대중은 나이든 셜리 템플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던 거죠.

4살 때 데뷰한 그녀가 배우이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어린 시절 밖에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일 거 같습니다. 그리고 셜리 템플은 그녀가 원하든 원치 않았던 30년대 미국 사회의 부유층을 상징하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아이 였습니다. 그녀의 영화 속에서 흑인들, 인도인들은 그녀의 수발을 드는 하인이었고 귀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의 아랫사람들이었습니다. 셜리 템플을 증오의 대상으로 표현한 소설 작품도 있었는데 셜리 템플을 진짜로 증오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상징하는 백인을 증오한다는 뜻이었지요.

성인이 된 셜리 템플도 아름다웠지만 어른이 된 그녀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백인도 흑인도 아닌 동양인의 눈으로서는 귀엽게 재잘거리는 그녀가 그냥 예쁜 아이로 느껴지지만 그녀가 성인배우로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변화하는 시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급격히 변화하던 미국에서 어쩌면 그녀는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흑백 영화 속의 스타, 영원한 과거의 상징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귀족으로, 공주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는 '소공녀(1939)'의 세라 크루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흑백영화 속에서 가장 먼저 본 셜리 템플도 '소공녀' 였습니다. 그녀의 아역 전성기였던 1930년대에 셜리 템플은 소공녀 속 이미지와 비슷한 영화를 꽤 많이 찍었는데 귀족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빠를 만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소설 '소공녀'의 내용과는 좀 다르게 진행됩니다). 1929년 미국은 대공황으로 사회 분위기가 어둡다 못해 비극적이었습니다. 경제적 곤란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던 그 시대 - 아동 학대에 대한 개념도 자리잡지 못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어린 여자아이는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던 시대의 상징이었죠.

셜리 템플을 추억하며 간만에 어린 시절에 보았던 '소공녀'를 보았습니다. 영화 '소공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만큼 드라마틱한 재미를 느끼기에는 좀 부족한, 오래된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결말까지 뻔하게 알고 있으니 딱히 끝 부분이 궁금하다거나 그렇지 않죠. 현대인들이 이 영화를 보는 독특한 재미는 30년대의 시대상을 읽어 보는 것 입니다. 아이를 폭행하는 걸 훈육이라며 자연스럽게 여겼던 그 시대에 석탄을 까맣게 묻히고 구박받으며 일하는 베키나 쉽게 끈을 끼울 수 없었던 그 시대의 가죽구두 등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게 많습니다.

또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는 꿈속에서 세라가 공주가 되는 장면(마치 백설공주같습니다)인데 꿈속에서 민친 선생은 마녀로 등장해 이웃집 부자 아들인 제프리와 로즈 선생을 고발합니다. 람다스와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귀여운 꿈은 셜리 템플이 탭댄스를 추는 장면 만큼이나 흥미롭죠. 요즘은 쉽게 보기 힘든 발레 공연도 포함되어 잇습니다. 너무 짧게 끝난 그녀의 공주 시절을 상징하는 것같기도 하고 춤, 노래, 연기에 다재다능한 셜리 템플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장면

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셜리 템플은 고전영화의 상징같은 존재였습니다. 어제밤에 간만에 베키와 세라 두 아이의 다락방 만찬 장면을 보다가 흐뭇하게 웃었습니다. 짧게 끝나 버린 그녀의 연기 생활은 아쉽지만 그녀가 남긴 추억은 전세계인들을 추억하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지요. 많은 사람들이 셜리 템플로 인해 행복했다는 걸 알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긴 세월 동안 함께 한 그녀 셜리 템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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