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이명환 보다 무서운 사이코패스 최형욱

Shain 2013. 2. 12. 16:16
728x90
반응형
드라마 '마의'에 등장하는 이형익, 백광현, 허임, 임언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원이거나 역사적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란 점 외에 이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천거로 내의원에 입성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의 허준도 각종 드라마에서 의과 시험을 치른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의과 합격자 명단에 허준의 이름은 없다고 합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특정인물의 천거로 내의원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부 출신 명의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들이 실력이 뛰어나고 유명했다는 뜻도 되지만 한편으론 내의원 진료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내의원의 진료 절차는 우리가 TV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까다롭고 답답합니다. '마의'에서 현종(한상진)이 백광현(조승우)에게 고주만(이순재)의 시료에 실패했다며 사형에 해당하는 벌을 내리는 장면에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인 시청자들이 많지만 왕실의원은 한번의 진료에 목숨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왕실 가족들에게 위험한 시료를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근거를 들어 탕약을 주거나 온천을 권하는 등 되도록 간접적인 방법으로 책임을 면하려고 했습니다. 종기를 째는 과감한 방법은 그런 내의원 의관들의 임상경험이 부족해서라도 또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선택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었죠.

왕실 의원들은 시술 한번에 목숨을 걸어야할 때도 있다. 세자의 종기 수술을 맡게 된 백광현.

강지녕(이요원), 윤태주(장희웅)와 함께 세자(강한별)의 종기를 치료하던 백광현은 세자의 출혈이 멈추지 않아 당황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약재를 써봐도 소용이 없어 이대로라면 현종의 아버지 효종처럼 죽는 것이 아닐까 겁이날 지경입니다. 안 그래도 외과술은 파상풍 때문에 위험한 시술이란 인식이 강한데 세자의 지혈 마저 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쓸 수 없는 사술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백광현의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수의 이명환(손창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접근한 최형욱(윤진호)의 말을 떠올리며 백광현의 위기를 이용할 생각을 합니다.

예고편을 보니 백광현이 사암침법인 소장정격을 이용해 세자의 위기를 헤쳐나갈 것으로 보입니다만 자신의 부술(해부학)을 근거로 이명환에게 세자의 상처는 지혈되지 않을 것이라 예언한 최형욱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매골승(埋骨僧)이라는 희한한 직업으로 치종청에 접근한 이 남자는 사암도인(주진모)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로 한때 사암도인의 제자였다가 쫓겨난 인물이라고 합니다. 음침하게 시신을 해부하고 그 시신을 물에 떠내려 보내 길거리 아이들에게 발견하게 하는 장면을 보니 보통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인물인가 봅니다.

백광현의 시술은 지혈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 예상한 최형욱. 이명환은 그를 이용할 궁리를 한다.

매골승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역사적 인물이 있죠. 바로 고려의 신돈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조선 시대 만큼 천시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매골승이 무조건 최악의 신분이라 단정하기는 힘듭니다만 조선 시대의 매골승은 활인서같은 의료기관에서 일하며 전문적으로 시신 처리를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종교적인 역할과 실무를 동시에 담당한 특별한 직업이지만 관념상 백정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고 보면 되겠지요. 조선 시대 승려들은 도성 안을 출입할 수 없었으나 시신의 장사를 지내주고 위로하는 역할 때문에 무녀와 매골승 만은 관청에 소속되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최형욱은 시신을 위로하고 깨끗하게 처분해주는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에게 시신은 자신의 부술을 시험할 수 있는 재료일 뿐이고 '치종지남'의 외과술을 익힐 수 있는 도구로 보입니다. 시신을 수습하여 염을 하고 묻어주는 일 따위는 관심이 없다 보니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마치 조선 시대의 기담을 한편 보는 것 같습니다. '어우야담'이나 '용재총화'같은 조선 시대 서적에는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끔찍하고 오싹한 사이코패스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민간의 소문을 중심으로 적은 이야기들이겠지만 때로는 슬래셔 무비같은 이야기가 실리기도 하지요.

한때 사암도인의 제자였다는 최형욱. 그에게는 생명이나 시신에 대한 존중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의원하면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고 병자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직업이기에 윤태주처럼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울부짖고 괴로워하는게 보통입니다. 극중에 등장하는 실존인물 이형익(조덕현)도 사실 백광현 못지 않은 유명세로 궁중에 들어온 의원이었습니다. 현대에는 그 기술이 전하지 않으나 침술 중에서도 번침의 대가로 유명하고 인조의 총애가 두터워 소현세자를 죽였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왕실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의'에서는 조소용(서현진)과 김자점(권태원)의 부추김을 당한 인조(선우재덕)가 이형익을 이용해 소현세자(정겨운)를 죽인 것으로 연출되었고 그 과정에 이명환이 관계한 걸로 설정했습니다.

드라마 속 이형익과 이명환은 사리사욕을 위해 의술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그들이 의술을 하는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살인도 모함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나 최형욱은 그 단계를 넘어 의술을 하나의 게임으로 여기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인명의 소중함 같은 건 이미 그에게 버려진지 오래입니다. 애송이 백광현이 세자를 무사히 수술할 수 없다는 예언은 백광현이 자신 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자만심 때문이지 세자를 걱정하거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서는 아닌 것입니다. 이형익과 이명환의 실력도 뛰어넘는 사이코패스가 출현한 것입니다.

외과기술로는 백광현 보다 앞선 최형욱. 백광현의 성장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치종지남'은 당시 외과술 이론을 담은 최고의 책이었고 극중에서는 최형욱 보다 임언국의 치종지남을 잘 알고 익힌 사람은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백광현의 외과술을 뛰어넘는 의원이 나타난 것이며 이명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성조(김창완)의 힘을 빌어 내의원에 최형욱을 추천할 것입니다. 다른 유명한 의원들처럼 천거를 통해 내의원에 입성한 최형욱이 잠시만이라도 백광현의 의술을 위협할 것임은 분명한 일이구요. 사암도인이나 소가영(엄현경), 수의녀 장인주(유선)의 도움으로도 탁월한 의술 만은 한동안 넘어서기 힘들 것입니다.

음침한 분위기의 무서운 삿갓남 최형욱. '의술은 인술'이라는 말의 뜻은 의술은 병을 고치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목숨을 구하고 생명을 구하는 훌륭한 일이란 뜻입니다. 최형욱은 그런 백광현의 신념에 정면도전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백광현을 넘어선 자이니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도전 보다 훨씬 두렵습니다. 백광현이 최형욱을 넘어서는 과정이야말로 백광현이 '조선 최고의 한방외과의'가 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 봅니다. 사실상 그동안 펼쳐진 복수나 성공같은 '마의'의 주변적인 이야기 보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