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알통크면 보수' 진보와 보수를 체격으로 분류한 MBC

Shain 2013. 2. 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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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유행하는 '혈액형별 성격'은 재미삼아 읽어보는 심심풀이에 불과하지만 1900년대 초반에는 진지하게 연구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우수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해야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그 근거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던 시절이었고 그 과정에서 혈액형 우생학이 탄생했습니다. 우수한 품종을 교배해 품질좋은 농산물을 만들어낸다는 '우생학'이 일부 인종과 혈액형의 우월함을 과장하기 위해 이용되었다는 것은 슬픈 인간의 역사입니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 만큼 원시적인 것도 없죠.

어제 2월 18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과거의 '나치 우생학'을 떠올릴 만큼 웃기는 보도가 방송되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하면 '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다' 내지는 '알통의 굵기가 신념에 영향을 끼친다'로 요약될 수 있는데 방송을 보는 순간 어이가 없더군요. 외국의 연구결과를 인용해서 주장을 설명할 때는 그 근거를 정확히 밝혀 오해가 없도록 해야하고 또 태어난 유전자가 정치성향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나치 우생학'처럼 무분별한 차별의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야하는데 '알통 굵으면 보수'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가 막혔습니다.

이미지 출처 : MBC


물론 개인의 신념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타고난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 모두에게 지배받은 동물이니 백퍼센트 환경에 의해 가치관과 신념이 결정된다는 주장도 바르지 않고 백퍼센트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MBC가 근거로 선택한 연구는 분명 유전자와 정치관이 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세워 연구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환경이 끼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유전자의 영향력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 연구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MBC는 다소 복잡하고 전제조건이 있는 연구결과를 자신들의 보도 목적에 맞춰 왜곡한 쪽에 가깝습니다. 과학자들은 '알통이 크면 보수'라고 단정할 만큼 단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알통이 큰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자신의 체력을 갖출 만큼 부유하다는 조사 결과나 신체적으로 건강한 유전자가 한 사람의 적극성이나 소극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경향성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람들의 성향과 신체조건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통계낸 결과를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백인은 우월하다는 나치 우생학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알통 둘레 4센티로 구분된 진보와 보수(이미지 출처 : MBC)


MBC에서 보도한 어제의 뉴스는 진화심리학자 Leda Cosmides의 연구에 근거한 것으로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왜곡되기 쉬운 연구입니다. 생물적인 특징이 문화,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가 있다고 파악하는 이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정치, 사회같은 환경적인 원인을 정치적 갈등의 근본 이유로 파악하는데 비해 힘이나 외모같은 신체적인 요소가 인간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힘이 쎈 사람은 힘이 쎈 만큼 많이 가지고 지키려고 하는 반면 힘이 약한 사람은 힘으로 무언가를 차지하려 들지 않는다고 파악합니다.

이런 연구의 유용성이나 연구 자체의 의의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공중파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MBC입니다. 학문적인 연구결과를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문제와 연관시킨 점은 상당히 무책임했습니다. 여러 환경적인 변수와 연구의 한계도 고려되지 않은 사례를 예로 들어 '알통 크면 보수'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엔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연구가 실시된 미국이나 유럽과 다른 환경을 가진 나라입니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의도 분명치 않았고 TV에서 사례로 든 재분배가 무엇이냐 하는 점도 충분히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적용을 시도한 것입니다.

도대체 왜 MBC는 투표 결과의 차이와 갈등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했는가(이미지 출처 : MBC)


같은 소득 수준인데도 알통이 4cm 더 굵다는 이유로 재분배에 반대하는 한 시민은 보수가 되고 알통이 더 가늘다는 이유로 재분배에 찬성한 한 시민은 보수가 되는 분류법도 좀 웃겼죠. 외국의 케이스를 증명하기 위해 단 하나의 사례를 가져온 것도 잘못된 태도지만 두 사람이 정치 성향이 반대인데도 '재분배' 자체에만 다른 의견을 보였을 가능성과 알통 4cm가 정치적 경향성을 가를 만큼 유의미한 수치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근거로 든 연구와는 별개로 황당한 보도 방식이었습니다.

무엇 보다 이런 '학문적 연구'가 9시에 방송되는 공중파 뉴스에서 보도할 내용이었냐 하는 점은 논란거리가 될만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투표 결과는 국민들의 의견이 51%와 48%로 갈렸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여전히 일부에서는 선거 결과를 두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의 방송으로 MBC는 갈등의 원인을 '진보와 보수는 타고난다'고 분석한 셈입니다. 즉 사회 갈등의 원인을 생물학적인 것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생각과 환경의 차이는 교정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 차이를 고칠 수 있는 정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회 현상의 원인을 생물학적으로 파악하는 게 방송의 책임일까? (이미지 출처 : MBC)


거기다 본 연구의 '의사결정의 경향성'을 신념으로, 또 그 선택을 진보와 보수라고 명명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제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된 내용,  방송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알통 크면 보수'같은 방식으로 보도한 것처럼 어제 방송을 비약하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고 '부유한 사람들은 보수다'라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명색이 공중파 방송이라는 MBC가 이런 위험한 해석이 가능한 연구결과를 과장되게 보도한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 파업 이후 보도 기능이 망가진 MBC의 현실이 처참하다 못해 끔찍하군요.

많은 네티즌들은 어제의 방송을 '게이머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PC방 전원을 내렸다'는 작년의 뉴스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폭력성'이라는 사회 현상의 근거를 비과학적으로 파악한 당시의 보도는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반면 어제의 보도는 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그 해석과 연구결과를 단정적으로 요약하여 '알통 크면 보수'라 주장한 부분은 학문을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한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혈액형 심리학을 TV에서 본 기분입니다. 과연 MBC는 일부 연구자들의 데이터를 이용해 어떤 주장을 펼치고 싶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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