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170억으로 연출한 '출생의 비밀'과 국정원의 '신파극'

Shain 2013. 3. 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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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자잘한 구설로 언론에 오르내려서 그렇지 이다해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입니다. 장혁도 '뿌리깊은 나무(2011)'나 '추노(2010)' 등으로 연기력을 검증받은 배우입니다. 나이먹을수록 카리스마가 강해지는 오연수나 환갑이 다 되어도 광기어린 열정을 잘 표현하는 김영철, 자제된 연기가 매력인 김승우나 능청스러운 캐릭터에 최적인 이범수 등 KBS '아이리스 2'의 연기자들은 대부분 훌륭한 배우들입니다. 편견이 생기기 쉬운 아이돌 스타가 영입되긴 했지만 그 역시 드라마와 잘 섞여 있어서 굳이 함량 미달이라고 지적할 정도는 아니구요.

한국 드라마는 역시 배우 빼면 남는게 없습니다. 경쟁작인 MBC '7급 공무원'의 주연도 꽤 괜찮은 연기자들입니다. 장혁 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자질과 매력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주원이나 개성있는 로코 여주인공인 최강희, 능력있으면서도 사랑에 바보인 공도하 역 황찬성, 자기 캐릭터를 잘 잡는 편인 김민서도 좋은 배우입니다. 장영남, 안내상, 임예진, 독고영재, 이한위, 김미경 같은 개성파 조연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리스 2'처럼 진지한 분위기가 아닌 가벼운 로코물로 기획된 이 드라마에는 최적화된 연기자들입니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곳 없는 드라마 '아이리스2'와 '7급공무원'.

수목드라마 3파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방송 3사의 드라마 시청률은 고만고만합니다. 무엇 하나 팍 치고 올라오는 드라마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시청률이 뚝 떨어지는 드라마도 없습니다. 최근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호평을 받고는 있습니다만 시청률은 10퍼센트 초반으로 타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어떤 드라마가 한번 1위를 했다고 해서 그 다음 주에도 그 순위를 지키란 법이 없습니다. 첩보, 로코, 멜로로 장르가 달라 장단점도 다르니 쉽게 우열을 가르기 힘든 드라마들입니다.

그런데 다음주부터는 미묘하게 시청률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일단 '아이리스2'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이라는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이란 카드를 꺼내들며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어제 방영된 6회는 유난히 이다해의 캐릭터가 잘 드러난 에피소드였습니다. 머리에 총을 맞은 정유건(장혁)은 레이(데이비드 맥기니스)에게 납치되고 그가 살아있을거라 믿으며 NSS 테스크포스 A팀 팀장을 맡은 지수연(이다해)은 독하게 아이리스의 뒤를 추적합니다. 거친 액션 연기도 포기하지 않은 이다해의 매력이 잘 살아났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리스2'는 '뉴제너레이션'이란 부제에 걸맞지 않게 전작 '아이리스'의 복사품같단 평가를 많이 받았습니다. 외국 드라마의 경우 시즌 1과 시즌 2를 나눌 땐 이야기의 연속성은 그대로 가져오되 이야기 플롯이나 캐릭터는 따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리스2'는 몇몇 등장인물이 시즌1과 같이 등장하고 아이리스에 대응하는 NSS라는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모자라 NSS 요원으로 일하는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나 실종된 남자 주인공의 외국 활동 등을 모두 전작과 유사하게 설정했습니다.

170억 대작 첩보물에 어울리지 않는 '출생의 비밀'과 '기억상실증'을 꺼내든 '아이리스2'.

전작의 현준(이병헌)과 승희(김태희)가 사랑하는 사이였고 현준이 실종된 사이 진사우(정준호)와 승희가 가까워진다는 내용처럼 '아이리스2'의 연인 수연과 유건이 사랑하는 사이인데 유건이 실종된 사이 서현우(윤두준)와 수연이 가까워집니다. 현준이 일본에서 사토 에리코(유민)와 친하게 지낸 것처럼 유건 역시 에리코와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몇가지 세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거의 똑같은 것입니다. 거기다 어제 방송된 내용으로 유건의 기억상실증이 추가됐고 정유건의 친아버지가 백산(김영철)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안고 가게 되었으니 도무지 기대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의 특징은 한 장르의 드라마로 멜로, 추리, 액션, 코믹, 의학, 첩보물까지 가능한 종합드라마를 만드는 것입니다. 10퍼센트의 시청률으로도 충분히 제작사가 먹고 살 수 있는 미국 보다 드라마 시장도 작은 나라니 취향이 다른 시청자들을 모두 끌어들이려면 어쩔 수 없다고는 치는데 '아이리스2'는 그게 너무 심했습니다. 치정극이나 멜로 드라마에서나 먹힐 법한 기억상실증과 출생의 비밀은 굳이 170억 대작이 아닌 저예산 아침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비싼 PPL까지 감수하면서 굳이 그런 코드를 섞어야했는지 의문이더군요.

로코물 특유의 코믹함과 달달함을 살리지 못하고 신파극이 되어버린 '7급공무원'.

'아이리스2'와 같은 스파이 이야기면서도 다소 유쾌한 시선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연출하던 '7급공무원'도 좀 이상해졌습니다. 주인공들 대부분이 거짓말을 하고 서로 속고 속이는 구조라 때로는 거짓말 때문에 코믹한 상황이 연출되고 두 남녀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속이는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옷장 안에서 공도하(황찬성)가 튀어나오고 김서원(최강희)의 부모에게 한길로(주원)와 도하가 얻어맞는 장면은 정말 배꼽잡을 만큼 웃겼죠. 진지한 상황에서도 대충대충 넘어가는 김원석(안내상)이나 버럭버럭하는 장영순(장영남)도 흥미로웠군요.

문제는 그 코믹한 상태가 오버해서 이제는 신파극이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길로가 서원을 속이고 있다는 것과 서원이 길로를 이용해 먹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거짓말하는 두 남녀의 상황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두 사람이 진지하게 '너를 속이는게 너무 슬프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이건 뭔가 아닌데 싶은 겁니다. 특히 길로의 집에서 서류를 훔쳐내기 위해 총까지 들이댄 서원이 울먹이는 장면이나 서원이 본래 국정원 직원이었다는 걸 아는 길로가 서원의 정체를 의심하는 장면은 너무 슬프게 연출했더군요.

이 드라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코믹함과 진지함을 적당히 섞는게 관건인데 마치 연인까지 속여야하는 국정원 직원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처럼 연출되니 답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는 비밀이 밝혀지고 쫓겨났던 한길로도 국정원 요원으로 인정받았지만 서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길로는 '그 동안 지겨웠다'며 이별을 선언합니다. 드라마에 호감을 가지고 두 배우에게 매력을 느꼈던 입장에서도 긴장과 로맨틱을 적절히 연출하지 못하는 전개가 지겨운 것이 사실입니다. 차라리 국정원 직원을 속이는 미래(김수현)와 JJ(임윤호)를 활용해 거짓말의 재미를 배가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입니다.

설마 국정원 직원들의 애환을 그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로맨틱 코미디가 신파극이 되버리면 그 매력을 상실해버리고 아무리 멋진 배우가 나와도 시선을 끌어당기기가 힘든 법입니다. 첩보 드라마면서도 막장극 코드를 선택한 '아이리스2'와 로맨틱 코미디면서도 국정원 직원의 '인간극장'을 선택한 '7급공무원'의 한계는 바로 그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빈틈이 느껴지는 대본으로는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라도 그 매력을 살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170억 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아이리스2'의 경우 첫회 보다 시청률이 급감했는데 '출생의 비밀'이 등장한 후에는 더 줄어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조인성, 송혜교 두 배우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영상과 누가 악인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점점 더 호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포털 사이트에서 세 수목드라마 중 가장 평점이 높은 드라마도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며 이번주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멜로물 취향이 아니라 '7급공무원' 쪽에 점수를 주던 쪽이지만 어떤 드라마든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를 선택하면 점수가 깎이기 마련입니다. 비싼 비용을 들이고도 '병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참 아쉬운 '한판승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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