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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진 '백년의 유산' 막장 논란, 진짜 막장이 문제일까

Shain 2013. 5. 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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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주말드라마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극이라는 특성과 그 시간대 경쟁 드라마가 없다는 이점 덕분에 주말극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이 50퍼센트 가까운 최고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시집살이라는 흔하디 흔한 소재를 코믹하게 잘 버무린 동시에 KBS 주말극이라는 장점을 톡톡히 활용한 결과였습니다. 최근 MBC '백년의 유산'이 주말극 시청률 1위를 차지하기는 했습니다만 40퍼센트를 예사로 넘던 KBS의 아성을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위 '막장' 드라마가 주말극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에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백년의 유산'은 기존 막장 드라마들이 흔히 써먹던 인기 공식을 거의 하나도 빼놓지 않고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출생의 비밀'은 안 써먹나 했더니 어제 방송된 내용으로 봐선 극중 백설주(차화연)이 양춘희(전인화)의 아들인 이세윤(이정진)을 몰래 빼돌린 것 같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김주리(윤아정)가 주먹을 불끈 쥐는 걸로 봐선 '복수'도 끼워넣을 작정인가 봅니다.

주말극 시청률 1위를 차지한 '백년의 유산'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10명 중의 3명 이상이 시청한다는 '백년의 유산'을 보면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확실히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쉽게 다음 장면이 예상될 정도로 뻔하고 단순한데 희한하게 알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지독하게 못된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가 가끔은 귀엽고 유치하게 사랑을 호소하는 엄기옥(선우선)이 짜증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속물스런 국수집 두 며느리들도 '저 여자들 참 얄밉네' 싶다가 뒤돌아 생각하면 어디서 본듯한게 익숙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과연 웰메이드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장점이 많은 드라마냐 그러면 그건 또 아닙니다. '백년의 유산'은 일종의 '소프오페라'로 깊이있는 철학 보다는 순간적인 재미를 화려한 볼거리 보다는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훨씬 매력있는 통속극일 뿐입니다. 음식으로 치면 각종 향신료와 자극적인 소스를 많이 사용한 인스턴트 혹은 정크푸드고 어른인 나는 가끔씩 즐겨도 아이들에게는 먹이고 싶지 않은 음식입니다.

사실 비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나라나 이런 장르는 조금씩 다 제작합니다. 흔히 왜 한국은 '미드'나 '영드'처럼 퀄리티 높은 드라마를 제작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한국에 소개되는 미드나 영드가 우수한 것일 뿐 그들 나라에도 막장 드라마는 만들어집니다. 우리 나라처럼 주로 아침에 방송된다는 점까지 똑같죠. 특히 미드 '종합병원(General Hospital, 1963)'이나 '달라스(Dallas, 1978)'같은 경우 흉보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중인 대표 '소프' 그러니까 '막장' 드라마입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유사한 스타일의 드라마를 방송하는 MBC.

이런 '소프'는 꽤 인기가 좋아 '소프'와 미스터리, 블랙 코미디를 결합한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 2004)'같은 드라마를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막장'은 동서양은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속성이 있습니다. '백년의 유산'의 시청률이 30퍼센트나 되는 것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는 기호식품이 있는 것처럼 이런 드라마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특정 연령층이나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런 오락물이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죠.

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막장 드라마' 자체 보다는 볼 것이 없다는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채널로 돌리든 볼 것이 막장드라마 밖에 없고 너도 나도 할 것없이 막장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점이 시청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MBC같은 경우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 일주일 내내 비슷한 타입의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어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곤 합니다.

얼마전에 종영한 '사랑했나봐'와 이번주에 마지막회를 방송한 '오자룡이 간다', 그리고 주말극 '백년의 유산'과 '금나와라 뚝딱'은 첫 시작은 달라도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로 전개되곤 합니다. 재벌, 삼각관계, 시집살이, 권선징악, 출생의 비밀, 복수라는 키워드를 계속해서 조합, 반복하다 보니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침드라마는 종편, 공중파할 것없이 대부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백년의 유산'이 막장인게 문제가 아니라 늘 같은 드라마를 만드는 방송국이 문제 아닐까?

조합이 극에 달하다 보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수퍼맨, 만능 캐릭터가 탄생하기도 하고 '아내의 유혹(2008)'에서 선보였던 냄비에 맞고 기절하는 수준의 도무지 말이 안되는 장면도 연출됩니다. '백년의 유산'이 그나마 흡입력있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때로는 '명품 막장'이란 우호적인 평을 받고 있는 것은 방영자나 김철규(최원영)같은 캐릭터와 영리하게 섞어놓은 덕분이죠.

방송국은 PPL을 유치하기 쉽고 쉽게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제작 비용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방송국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청률이 바닥이던 MBC가 굳이 뉴스 시간을 옮기고 다수의 '막장'에 올인한 것도 그런 면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장르는 '옳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닌 선택과 취향의 문제입니다. 진짜 문제는 다양한 장르를 골라 제작할 책임이 있는 방송국 쪽에서 막장 드라마 밖에 방송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누구라도 같은 메뉴의 식사를 일주일 내내 먹으라고 하면 불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습니다. '막장 드라마' 자체도 문제일 수 있겠지만 드라마 장르 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비슷한 드라마를 방송하고 시청률 상승 효과를 노리는 방송국의  '꼼수'가 바뀌어야할 부분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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