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대의를 선택한 세자 이호의 반격과 최원의 귀환

Shain 2013. 6. 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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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명'를 끌고 나가는 주된 모티브는 간절한 부성애와 지독한 모성애입니다. 내의원 의관이었던 최원(이동욱)은 딸 랑이(김유빈)를 살리기 위해 세자 이호(임슬옹)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의금부에 잡힌 아들을 구하려 장홍달(이희도)에게 증거를 찾던 최형구(고인범)는 밀지에 그려진 모란꽃 문양을 쥐고 죽었고 그 문양이 최원을 살렸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최원은 그 모란꽃 그림을 김치용(전국환)에게 내밀어 나 역시 밀지를 받았노라 거짓말했고 그 덕분에 천봉(이재용)이 올 시간을 벌었습니다.

조선 중종은 후궁과 자식들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부성애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상 중종은 12명의 부인에 9남 11녀를 낳았습니다. 원래 왕의 자녀들은 왕위를 이을 세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나이가 되어 궁밖에 나가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중종은 궁밖에 사는 공주, 왕자들이 한번씩 궁을 방문하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을 정도로 자식들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숙원 이씨('대장금'의 연생이 숙원 이씨)의 딸 효정옹주를 굉장히 예뻐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증거를 찾아 세자 이호 앞에 나타난 최원. 김치용은 위기에 처한다.

효정옹주의 남편 조의정은 부마임에도 옹주의 몸종 풍가이를 총애하며 아내를 소홀히 대했습니다. 효정옹주는 그런 남편을 추궁하는 중종에게 남편을 두둔했지만 중종은 오히려 어째서 여자가 투기도 하지 않느냐며 나무라고 풍가이를 귀양보냈습니다. 조의정은 귀양가는 풍가이를 다른 여종과 바꿔치기하고 몰래 만나며 여전히 공주를 박대했고 나중에는 공주가 출산하고 몸이 아플 때 의녀를 돌려보내 공주를 일부러 죽였다는 의심까지 받았습니다. 중종이 그걸 듣고 길길이 날뛰면서 저 놈을 죽여야 한다고 울고불고 난리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조의정은 유배를 가고 풍가이는 숙원이씨의 여동생이자 효정옹주의 이모인 상궁 은대의 명으로 내수사의 종들에게 매를 맞아 죽었습니다. 중종이 은대를 감싸려 했지만 신료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귀양보냈다는 참으로 '가족적인' 이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내용으로 중종 39년 즉 중종이 죽은 해인 1544년의 일입니다. 정이 많은 아버지였던 중종처럼 인종 역시 성격이 비슷해 경빈과 복성군이 사사될 때도 두 사람을 석방해달라 청을 넣고 누나 효혜공주가 죽었을 때도 시름시름 앓을 정도로 형제들 간의 우애가 좋았다고 합니다.

드라마 '천명'의 세자 이호는 실제 인종의 성격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아버지 중종(최일화)의 발톱을 손수 다듬고 끝까지 어머니 문정왕후(박지영)를 놓지 않으려 갈등했지만 자신의 죽음을 사주한 문정왕후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민도생(최필립)에게 위험한 탕약을 올리라 지시한 김치용의 처방전이 드러났고 짐독을 구매했다는 장홍달의 속사정까지 드러났습니다. 마지막에는 민도생이 직접 쓴 자술서까지 보게 되었으니 어머니를 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하는 상황입니다.

동생 대신 네가 죽으라는 문정왕후의 은근한 위협. 동생을 아끼는 이호를 협박한다.

극중에는 어린 경원대군(서동현)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문정왕후가 낳은 공주가 무려 네 명입니다. 효혜공주 때문에 시름시름 앓을 정도였으니 문정왕후와 등을 돌리면 다섯 형제와 척을 져야하는 상황입니다. 본성이 따뜻한 세자 이호의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테지만 문정왕후를 버리지 않으면 가뭄과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버려야합니다. 천문에 밝은 이호가 비가 내릴 시기를 가려 기우제를 지내고 백성들 앞에서 비가 내리게 하는 기적을 보였으나 그것 만으로 세자의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역사란 것은 기록 만 놓고 보면 위대하고 웅장한, 비범한 인물들의 남다른 이야기같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기록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원이 딸을 위해 목숨을 걸고 거칠(이원종)이 가족을 위해 복수를 꿈꾸고 장홍달이 수양딸인 홍다인(송지효)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임꺽정(권현상)이 자신이 마음에 둔 소백(윤진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듯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겁니다.

그러나 천봉이나 세자 이호는 '대의'라는 명분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 최원이 동참하길 바랐습니다. 사실 드라마에서 경원대군이 먹었던 풀뿌리죽은 밥알 하나 건지기 힘들었던 그 시대의 끼니 보다 훨씬 훌륭한 것입니다. 그 보다 보잘것없는 식사를 먹고 버티던 백성의 염원을 이호는 버릴 수 없었고 자신의 근간인 가족을 포기하면서까지 백성을 구제하고 스스로 일어서고자 합니다. 반면 최원에게 제 조부의 그릇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천봉의 말은 최원의 욕망은 아직 가족에 대한 사랑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는 말이죠.

'딸'을 선택한 최원과 달리 '대의'를 따르기로 한 세자 이호가 불안해 보이는 이유는?

최원이 딸을 지키려는 마음은 '대의'에 비하면 별것 아닌 것같지만 어떻게 보면 역사는 작은 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왔습니다. 반대로 딸을 구하고 싶은 동기가 '대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용기의 밑바탕인지도 모릅니다. 세자 이호가 큰 뜻을 품고 핏줄까지 포기하며 백성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음에도 불안해보이는 것은 이호에게는 최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핏줄에 대한 집착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한 문정왕후의 모성은 제 자식을 살리려 끝끝내 인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역사 속 명종은 효성이 지극하고 어머니 문정왕후를 무서워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회초리를 맞았다고 전합니다. 드라마 속 경원대군은 랑이와 격없이 어울리며 풀뿌리죽을 먹고 형을 살리겠다며 스스로 납치당하는 형제애도 보여줍니다. 동생을 버리라는 말에 힘겨워하는 이호를 보니 기우제를 지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인 세자 이호가 어쩌면 자신의 핏줄인 경원대군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호가 유일하게 끊을 수 없는 인연이 형제의 인연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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