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옛날 옛적 그 드라마

빨치산을 쫓는 남자의 일생, 임권택의 '짝코'와 MBC 특집극 '동행'

Shain 2013. 6. 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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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쯤 임권택 감독 영화 컬렉션 DVD로 발매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1936년생인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데뷰한 후 '씨받이(1986)', '장군의 아들(1990)'을 비롯한 여러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가 하면 '취화선(2002)' 등으로 국제 영화제에서도 잘 알려진 유명감독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초기 영화 중에 제가 전혀 보지 못한 작품도 있고 잘 알지 못하는 내용도 있어 어제 임권택 감독 영화 컬렉션을 주문했습니다. DVD에 실린 영화는 '왕십리(1976)', '족보(1978)', '짝코(1980)', '만다라(1981)'입니다.

행려병자 수용소에서 마주친 30년전 원수 짝코(김희라)와 송기열(최윤석).


컬렉션에 포함된 영화들은 임권택 감독의 이름을 한번쯤 들어본 사람이라도 낯선 작품들이죠(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짝코'는 영화 좀 봤다는 사람도 생소한 작품이라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반공영화'로 분류되어 19회, 20회 대종상영화제 반공영화상, 특별상 반공영화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개봉된 것은 1983년이고 대중적인 인기는 끌지 못한 모양입니다. 특히 한국 영화사에서 국책사업으로 제작된 반공영화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었던 시절이 그때입니다.





'빛과 그림자(2011)'라는 시대극에서 '국책 반공영화'를 잠깐 묘사한 적이 있지요. 당시에는 인기 외화를 극장개봉하려면 일정 숫자 이상의 반공, 계몽, 국책 영화를 제작해야했고 그런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에 한해서 외화 수입 쿼터를 주었습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영화(혹은 합작영화)가 제작된 것은 품질 보다는 제작편수를 채워야했던 시대 상황 때문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반공영화도 제작하게 된 것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짝코'도 그런 국책반공영화 중 하나이나 검열과정에서 10분 이상 삭제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저는 최윤석, 김희라 주연의 영화 '짝코'를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DVD가 도착하면 한번쯤 감상할 수 있겠지만 TV에서 특선영화로 몇번 방송했다는데도 그때는 어려서 이런 제목의 영화 조차 기억 못했죠. 하지만 '짝코'와 같은 내용의 드라마를 TV에서 본 기억은 있습니다. 1999년 MBC에서 설날 특집극으로 방송된 '동행'은 영화 '짝코'의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씨(영화 '씨받이'의 작가이기도 합니다)가 집필한 드라마였습니다. 영화 '짝코'가 제작된 것이 1980년이니까 무려 '짝코'는 무려 19년 만에 TV 드라마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영화는 유명 빨치산 대장이었던 짝코 백공산(김희라)의 뒤를 쫓는 전직 경찰 송기열(최윤석)의 이야기로 두 사람이 늙여 행려병자 수용소에서 다시 만나는 내용입니다. 드라마도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백공산의 이름을 동만(유인촌)으로 송기열의 이름을 일규(이덕화)로 바꾸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는 유길촌 PD로 당시 배우였던 유인촌의 큰형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인촌과 이덕화라는 중견배우의 힘으로 되살아난 '짝코'는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와는 조금 다른 시대상을 표현합니다.

1999년 드라마 '동행'으로 다시 태어난 영화 '짝코'. 시대상이 조금 다르다.


영화 '짝코'에서 평생 짝코의 뒤를 쫓으며 빨갱이 잡는 일에 집착하던 기열은 행려병자 수용소에서 똑같은 신세가 된 짝코를 보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짝코는 짝코대로 과거를 회상하며 도망치며 사느냐 사람처럼 살 수 없었던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짝코의 뒤를 쫓으며 훔쳐본 짝코의 인생, 우여곡절끝에 기열은 짝코를 고발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보려했지만 경찰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지친 두 사람은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함께 오릅니다. 그렇게 원수처럼 서로를 경계하던 짝코와 기열이 마지막 순간에 초라한 동반자가 되어 함께 한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이 상황이 조금 바뀝니다. '짝코'가 제작된 1980년은 여전히 북한과 날카롭게 대치하던 시기였으나 드라마 '동행'이 제작된 99년은 故 정주영 현대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한을 가고 금강산 관광도 이뤄지던 시대로 빨치산의 뒤를 쫓는 드라마 속 일규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여기 빨갱이가 있다'고 소리치고 절규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입니다. 동만은 '금강산 관광도 가고 소떼도 북에 가는 세상에 지금 와서 빨치산 운운이 웬말이냐'이냐항변하고 일규는 '엄연히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우리는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보여준 처절한 인생은 도대체 6.25라는 참상이 왜 시작된 것이 돌이켜보게 합니다. 6.25 전쟁은 정말 이데올로기 갈등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나요?  기열(일규)는 빨갱이를 척결하겠다며 백공산(동만)의 뒤를 쫓았으나 그의 집념은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백공산(동만)이 빨치산이 되고 도망자가 된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드라마는 시대가 달라진 만큼 결말도 조금 다르게 변형시킵니다.

드라마 '동행(1999)'

영화 '짝코(1980)'



이념의 허무함을 깨달은 일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평생을 원수처럼 지내던 동만은 그런 일규를 부축하며 고향으로 데려갑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평생 이를 갈고 분노했던가 그 허망함에 지푸라기처럼 쓰러진 일규는 마치 오랜 친구에게 의지하듯 동만에게 기대고 동만은 일규에게 죽지말라며 울먹입니다. 죽는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고 동정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를 거치면서 분열하고 대립했던 두 사람의 비참한 개인사를 보면서 우리 민족이 어쩌다 이런 비극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본래 김중희씨의 짧은 소설이 원작이었습니다.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 '짝코'에서 삭제된 10분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요. 임권택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영화에서 짝코와 기열이 갱생원에서 탈출하기전 '6.25가 열강들의 대리전쟁이었다'는 내용의 좌담 프로그램이 TV에서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피차 희생자였음을 강조하는 내용의 좌담 프로그램을 보고 두 사람은 서로가 피해자임을 깨닫는 부분이라는군요. 이 부분이 검열에서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전쟁의 이유. '우리가 왜 싸우기 시작했을까?'


'국책 반공영화'라는 선입견 때문에 저평가된 영화지만 신군부가 서슬퍼렇던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임권택 감독이 '짝코'에서 보여준 주제성을 결코 하찮지가 않습니다. 1980년에 제작된 '짝코'가 분단 30년이 된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했다면 1999년 제작된 '동행'은 분단 50년이 된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다시 14년이 지난 2013년에 '짝코'를 다시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시대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6.25가 일어난 것도 벌써 63년전. 분단이 고착화되고 대립이 강경해질수록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6.25는 점점 더 잊혀져갈 것입니다.

이제는 어쩌다 전쟁이 시작되었고 어떻게 주변국들이 우리 나라에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부분은 점점 잊혀져 가겠지요. 앞으로는 어쩌다 싸우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 따윈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노무현 전대통령의 'NLL 평화교섭'을 엉뚱하게 해석한 정치권의 왜곡 사건을 보면 '우리는 같은 피해자'라는 영화 '짝코'의 핵심을 잘라낸 80년대가 다시 찾아온 것같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땅에서 다시 피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감정적인 동질성 회복은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영화 '짝코'는 전쟁을 모르는 우리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고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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