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김장하다 말고 고창 고구마와 오징어 구워먹기

Shain 2013. 11. 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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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에 안하던 짓 - 스마트폰으로 사진찍기

저는 평소에 음식 사진을 잘 찍지 않는 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예쁜 음식점에 가더라도 스마트이나 카메라를 꺼내놓는 경우가 없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요란 떠는 걸 싫어하는 가족 분위기 탓도 있습니다.
특히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을 모두 모아놓고 벌어지는 김장이벤트(?)에서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건 유난히 눈치가 보이더군요. 어머니를 비롯한 손님들이 쟤가 지금 뭐하니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여긴 작은 시골 마을이라 김장을 할 때는 집집 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해주는 분위기고 서른 포기를 하든 백포기를 하든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가 우르르 일을 해치웁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고 한시바삐 김장을 끝내고 간만에 노래방이라도 갈까 하던 아주머니들은 별스런 짓을 하는, 김장에 별로 보탬도 되지 않는(?) 이 집 딸이 신기하셨던 모양입니다. 눈빛으로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묻는 통에 얼른 자리를 피했네요.

양념이 발리기전 무사히 찍은 고창 황토배기 배추 1인가구 김장 분량은 될 듯.

평소에도 저희 집엔 눈이 어두우신 할머니들이나 면사무소 서류처리를 못하는 분들이 종종 찾아오시는데 그때나 김장 때나 찾아오신 분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사 말곤 거의 없습니다. 김장을 돕기엔 제가 빠르지 못하고 어르신들 하시는 이야기에 끼어들기엔 연배가 너무 차이나서 눈치껏 간식이나 챙겨드리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빨리빨리 챙겨드리는 정도죠.

아무튼 TNM 체험단 자격으로 보내준 고창 황토배기 배추와 고구마 사진찍기가 이 정도로 어려웠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파손없이 무사히 도착했어요. 절임배추 꼼꼼한 포장 비닐 좀 보세요.

▶ 연탄보일러가 이럴 땐 좋더라
제가 '체험단' 신청에 낼름 지원한 이유는 다른 집에서 재배한 고구마와 배추를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무, 배추, 고추같은 기본적인 채소들을 모두 집에서 기르고 가끔 심심하면(?) 당근이나 마늘도 길러먹는 집이라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하나같이 이 근처에서 재배되거나 알음알음으로 구해진 것들입니다.
간식으로 먹는 감자, 고구마, 밤 이런 것도 직접 키워먹거나 얻어온 것이고 과일은 기본으로 재배합니다. 그러니 다른 집 채소 맛이 가끔 궁금해요.

특히 올해는 고구마 농사를 짓지 못해서 사먹어야나 하던 참이니 맛뵈기가 반가울 수 밖에 없었죠.
김장 당일날 도착한 황토배기 배추. 우리 배추도 맛있지만 고창 배추는 뭔가 고소한 맛이 나는게 가정에서 기른 것과는 큰 차이가 있더군요.
같이 포장된 고춧가루는 쓰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직접 길러 햇빛에 말리고 빻은 고추가루 양이 충분해서 황토배기 배추랑 같이 온 고춧가루는 아직 보관중이랍니다.


연탄보일러에 구운 고구마 빛깔이 참 좋다(찬조출연 : 옆집에서 딴 오가피)

고구마는 첫인상은 약간 말랐다 싶었고 혹시나 이거 물컹한 호박고구마 아냐 하는 싶었네요. 여기는 땅이 고구마 재배에 적당치 않다고 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구한 종자가 밤고구마 종자라 대부분 겉이 붉은데 고창 고구마는 색이 옅은 편이더라구요. 정석대로라면 맛탕을 해서 맛을 봐야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고구마를 구워보기로 했습니다.

이 동네는 집이 드문드문 있고 바람이 쎈 편이라 겨울이 무척 춥습니다. 기름 보일러 만으로 난방을 하면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들고 돈 생각하다보면 한겨울에 굉장히 춥기 때문에 많은 주택에서 이중난방을 하거나 심야전기를 씁니다.  나이많은 분들이 많아서 보온이 무척 중요한 까닭에 연탄 보일러, 나무 보일러같은 걸 기름보일러와 함께 쓰는 집이 많습니다.

연탄불로 난방을 해도 온도가 낮으면 기름보일러가 돌아가는 방식이라 충분히 따뜻하고 행여 연탄불이 꺼지더라도 기름 보일러가 자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편리하죠. 그리고 연탄보일러 위쪽은 가끔씩 이렇게 군밤이나 군고구마를 구을 때 아주 유용합니다. 처음 연탄보일러를 설치했을 땐 보일러실에 들락달락하며 고구마 굽는 재미가 솔솔했어요. 오늘은 아버지께서 석쇠도 준비 안했는데 오징어 한마리를 얹어두시네요.

다른 지역 농산물을 먹을 일이 별로 없는 동네. 길러본 사람 입맛에도 맛있다는군요.

▶ 김치냉장고만 봐도 든든하다는 어머니

김장은 빠르게 간식은 게눈 감추듯이.
사람 숫자를 생각하지 못하고 급하게 굽다 보니 양이 이렇게 모자랄 줄 몰랐는데 손님들이 다 드시는 바람에 부랴부랴 나머지 고구마를 씻어서 다시 구었습니다. 체험단이라고 해놓고 하마터면 고구마 맛도 보지 못할 뻔 했습니다. 확실히 집에서 기른 것 보다 부드럽고 호박고구마 반, 밤고구마 반 섞은 맛이네요. 집에서 대충 기른 것과 전문가가 기른 건 이렇게 다른가봐요.

올겨울에 먹을 김치는 장독대로. 내년까지 먹을 김치는 김치냉장고로.
드디어 무사히 2013년 김장이 끝났습니다. 어머니는 몸살이시고 저는 별로 한 것도 없이(고구마 굽는 거 말고는) 기침을 하게 됐습니다만 일년 내내 먹을 김치 보니까 뿌듯하긴 하네요. 체험단 덕분에 다른 집에서 키운 고구마를 먹어봤다는 거. 흐릿하지만.. 어쨌든 사진도 찍었다는 거. 그런데 두번은 못할거같네요.

보기만 해도 흐뭇한 냉장고 안의 김치들. 김치가 살아 숨쉽니다.

부모님에게 이 체험단의 취지를 말씀드렸더니 같은 농사짓는 입장이라서 이해가 간다고..
내년에 우리 포도랑 복숭아는 어떻게 안되겠느냐고.. (쿨럭 아버지 저 그런거 못해요)..
어머니가 나날이 농사를 힘들어하시니까 배추같은 건 내년에 고창에서 구해보는게 어떨까 싶네요.
고구마를 한박스 사시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까다로운 아버지 입에도 맛이 있었나 봅니다.
김장날에 맞춰 배송 날짜 알려주신 양모모님과 정성껏 배송해주신 생산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본 체험단은 황토배기유통의 지원으로 작성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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