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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젠틀맨 이상우가 저렇게 변할 줄 몰랐어

Shain 2013. 12. 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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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우리 나라에서 방송된 MBC의 '질투'는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로 평가됩니다. 트렌디 드라마는 경제적인 상황이나 가족 간의 갈등, 사회 문제같은 현실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대체적으로 젊은 드라마 주인공들의 생활 스타일, 삼각관계 등을 부각시킨 감각적인 드라마로 이후 우리 나라 드라마의 대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내용 또한 재미있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서민 드라마가 쇠퇴하기 시작했죠. 최근엔 젊은층 위주의 트렌디 드라마가 중년층으로 옮겨와 중년 남녀의 불륜이라는 소재를 새롭게 해석하는게 유행 이더군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는 3, 40대 부부의 불륜이라는, 다소 진부하다면 진부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결혼한지 몇년된 부부라면 한번쯤 서로에게 소홀함을 느끼기 마련이고 그럴 때 마다 혹시 내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른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불륜'은 그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주제이고 드라마 소재로서도 상당히 자극적인 편이죠. 왜 하필 이 드라마는 부부의 '불륜'을 선택했을까요.

중년층을 위한 트렌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스스로를 '촌놈'이라는 김성수는 표현에 서툴다.

일단 제목이 '따뜻한 말 한마디'인 걸로 봐서 (이유는 달라도) 두 부부가 공통적으로 헤어지기 싫어한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부부가 싸울 때, 상대에게 서운할 때 하는 말이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주냐'라는 거죠. 그 말에는 헤어지고 싶다 내지는 상대방이 너무너무 밉다가 아닌 아직도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미련이 담겨 있습니다. 더 잘 할 수도 있는데 왜 이러느냐는 원망인 셈 이죠. 결혼생활을 지키고 싶으면서도 배우자에게 위로를 건내지 못하는, 그런 갈등의 연속이 이 드라마의 주제가 아닐까 싶었던거죠.

아무튼 남편의 바람 때문에 고통받았으면서도 바람을 피우는 나은진(한혜진)의 캐릭터나 안정된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나은진을 갈망하는 유재학(지진희), 그런 둘을 경멸하며 아무도 몰래 나은진을 괴롭히는 송미경(김지수)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흥미롭습니다. 특히 나은진과 김성수(이상우)를 뒤에서 들이받은 미스터리한 차량과 유재학과 나은진을 미행하는 정체불명의 남자는 이 드라마를 스릴러로 만들어주고 있네요. 일단은 둘의 불륜 장면을 사진으로 보고받은 송미경이 가장 의심스럽지만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불륜을 저지른 후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협박당하는 나은진. 가족들이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무엇 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드라마에서 '젠틀맨'으로 유명했던 이상우의 변신 입니다. 겉모습은 잘 생기고 부드럽고 세련된 은행 인사부 과장이지만 시골 출신인 김성수는 가끔씩 '여자가'라는 말을 내뱉고 아내가 임신 우울증으로 자신에게 소홀하자 같은 은행 직원과 바람을 피울 만큼 '촌놈'이기도 합니다(드라마 홈페이지에 김성수의 캐릭터를 '촌놈'으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고향에선 신동 소리를 들으며 김성수를 떠받들었고 장남이라 부모형제들에게 대접받았는데 아내 은진은 그렇지 않은게 불만인듯합니다.



왜 남편이 아니라 상간녀를 괴롭히는지 알아?

 

어릴 때부터 드라마에서 흔했던 장면 중 하나가 남편의 내연녀를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잡는 본처의 모습이었습니다. 친정 식구들이나 친구들까지 동원해 내연녀를 두들겨패고 동네방네 망신을 줘서 쫓아내는 본처는 마치 야차의 화신인 듯 무서웠습니다. 때로는 간통죄로 남편과 내연녀를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내연녀가 낳은 남편의 아이는 무조건 내가 키우겠다며 악을 쓰기도 했죠. 불륜은 남녀 모두의 책임인데 왜 가족인 남편을 단속하지 않고 내연녀를 때리는 걸까 - 한때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평소에는 점잖고 교양있던 주부도 남편의 상간녀 앞에선 없던 힘이 솟아오르고 '년'같은 쌍스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게 됩니다. 평소 남편과 자신 사이에 어떤 불화가 있었던 간에 눈앞에 있는 여성은 자신의 가정을 깨트린 가정파괴범이고 원수일 뿐입니다. 어떤 경우엔 본인이 남편에게 잘못한 것까지 모두 내연녀에게 책임전가 하곤 하죠. 부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간에 불륜은 무조건 죽을 죄라는 이야기입니다.

평소엔 완벽하면서 남편의 상간녀에겐 '년'이란 표현을 쓰는 송미경. 왜 상간녀만 괴롭힐까?

남편이 아닌 남편의 내연녀를 '족치는' 심리에는 남편에 대한 애증도 애증이지만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심리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특히 내연녀로 인해 아빠를 빼앗겨야하는 자식들이 있는 경우 아내는 더더욱 필사적이 됩니다. 남편을 간통죄로 엮어넣고 처벌하면 가정이 붕괴되고 내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왜 바람피운 남자가 아닌 여자들끼리 물고 뜯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가정 밖의 사람이 타겟이 될 수 밖에 없겠더군요.

그런데 '따뜻한 말 한마디'의 김성수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자신은 바람을 피워도 되지만 아내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마초인 이 남자는 한번 바람을 피우고 이제는 아내의 자리가 절실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숨겨진 사랑 한번 표현한 적없는 무뚝뚝한 이 남자는 술마시고 들어와 아내 앞에서 펑펑 울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애정표현에 서툰 사람입니다.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는 일부터 자신의 서러운 감정을 해소하는 것까지 모두 아내가 해줘야할 일인데 이혼을 하잡니다.

 

 

 

 

 

김성수는 이미 한번 바람피운 '전과'가 있어서 아내에게 함부로 하지도 못합니다. 몇년전 일에 왜 아직까지 앙금을 갖고 있냐며 아내를 탓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이혼은 절대 원하지 않는 상황이란 거죠. 그런데도 따뜻하게 말을 돌려 하지 못하고 아내의 마음을 알려 들지도 않고 나도 억울하다며 하소연합니다. 은진이 유재학과 불륜 사이란 걸 알게 되고 역으로 자신이 바람핀 배우자를 원망하는 입장이 되면 김성수는 뭐라고 할까요?

세련되지 못한 이 남자는 아내의 불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상우의 변신이 관전포인트.

 

사실 '결혼의 여신'이나 '신들의 만찬', '마의' 등에서 여성의 입장을 모두 이해하고 배려하는 부드러운 순정남 연기를 했던 이상우가 자신의 속마음 조차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어떻게 보면 찌질이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을 연기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캐릭터 자체가 세련되지 못한 남자라는 설정이니 은진의 불륜을 알게 되면 지금 보다 훨씬 더 거친 모습으로 막나가게 될지 모르죠. 말 한마디로 은진의 심장을 콕콕 찌르는 송미경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독할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무리 불륜이란 소재를 새롭게 다뤘다고 해도 소재의 특징상 질리거나 불편한 감정이 들 때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알려진 이상우가 산전수전 다 겪은 유부남 역할을 한다는 건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 되네요. 이미지 변신이라면 변신이랄까. 잡고 싶은 마음도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아내에게 큰소리치는 이 남자 생각 보다 잘 어울려요. 어쩌면 네 사람의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포인트가 김성수에게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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