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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과 '암탉'의 탁월한 정권 장악

Shain 2009. 8. 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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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여주인공, 점을 치고 하늘의 계시를 받아 혹세무민하는 미실은 병권까지 장악한 정치인이다. 부드러움과 잔인함을 동시에 갖춘 미실, 그 미실의 아들로 설정된 비담은 살벌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 비담은 미실이 의지하고 따르던 진흥왕을 배신하려 했듯 아버지와 마찬가지인 문노를 배신하게 될 지 모른다. 두 모자(?)의 세번째 공통점은 혼란스러운 신라를 손에 쥐고 흔든 외척이란 점이다.

삼국사기에 적힌 신라사 중 '암탉'이란 표현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첫번째 여왕, 선덕여왕이 신라를 말아먹었다는 뉘앙스의 단어 '암탉'. 똑똑함을 강조한 여왕임에도 진덕여왕에  비해 김부식의 평이 박하다.  전해오는 속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표현의 유래는 한나라 사서라 한다. 외척이 발호하고 왕후들의 권력이 강해지며 나라에 내분이 일어난 것을 두고 닭의 변화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 한다. 김부식은 여자들의 권력이 강해 분란이 일어나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늘의 뜻을 묻는 미실. 대원신통은 신라초기부터 이어진 제사장 가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삼국사기의 기록 만으론 두 여왕이 왕 자리에 오르긴 했으나 다른 외척이나 여성 권력은 눈에 띄지 않으니 '암탉'이란 표현은 둘 중의 하나로 해석이 될 것같다. 허수아비 왕이었다는 선덕이 신라를 뒤집을 정도로 능력있고 막강한 권력자였거나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다른 여성권력자가 존재했다는 뜻은 아닐지. 신라의 성별 권력 관계가 최소한 김부식의 사상과는 달랐다는 반증일게다. 암탉이 새벽을 알림(원래 새벽에 우는 닭은 수탉이다)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 적은 부분을 살펴보자.


의도된 것인지 삼국사기엔 다른 왕후와 공주들에 대한 이야기도 흔치 않다. 미실이 존재했던 인물이라 쳐도 3대에 걸쳐 왕의 후궁을 지낸 여성이니 배제될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 선덕여왕은 정치적이고 지혜로운 면모가 기록되어 있지만 종종 무능력한 왕이란 평가를 받고 있고 진덕여왕은 아예 존재 자체가 김유신과 그 수하들의 꼭두각시같은 느낌을 풍긴다. 유달리 외진, 진덕여왕릉이라 알려진 곳도 기록과 달라 왕릉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하니 김부식의 평가가 옳던 그르던 현대인의 관점상 강력한 제왕의 느낌은 풍기지 않는다.

권력자들, 혹은 왕들은 백성의 민심을 얻고 싶어할 때 '하늘의 뜻'을 빗대는 경우도 많았지만 중국의 사상이나 종교, 기이한 소문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독교를 떠오르게 하는 이차돈의 순교, 법흥왕 때 허용된 불교는 원효의 세속오계와 더불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호국종교가 되었다. 중국의 '성씨' 문화를 도입한 진흥왕 등은 신라가 모계에서 부계사회로 전환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비단 신라 뿐 아니라 많은 왕조에서 많은 중국식 가치가 정권을 차지하는 기반으로 이용되곤 했다. 유교를 비롯한 많은 사상이 왕들을 위한 또는 왕에 대항하는 명분이 되었다.

선덕여왕릉, 출처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선덕여왕이 죽을 때 도리천에 묻어달라 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소문을 이용한 사례로는 서동이 노래를 지어 선화공주를 모함해 혼인을 성사시켰단 이야기도 유명하고 선덕여왕 말기, 비담의 난 때 별이 떨어지자 연을 날려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단 소문을 낸 일도 적혀 있다. 선덕여왕은 유난히 능력을 강조하는 일화가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쉰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것으로 짐작되는 그녀의 노련한 정치 술수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선덕여왕은 여성이란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항해 지혜와 미모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것같다.

알천과 김유신, 김춘추는 많은 사서에서 집중 할애하는 인물들이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영웅'들이다. 김유신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메다꽂은 알천과 국사를 논의했단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고 중국에 사신으로 드나들며 신라를 위해 일하던 김춘추는 영리한 책략가다운 면모를 자주 보여준다. 김유신은 충성과 대범함으로 왕에 못치 않은 권력까지 가지게 된다. 삼국유사엔 유신, 춘추와 선덕여왕이 정치적 결합을 하였음을 알려주는 문명왕후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우리가 잘아는 김문희와 김춘추의 결혼이다.

삼국유사엔 처녀가 아이를 가져 김유신이 문희를 태워죽이려한 것처럼 나오지만 김유신이 맺어준 춘추와 문희는 첩이 아니고는 결합할 방법이 없던 것으로 짐작된다. 두 사람은 혼인을 통한 정치적 동맹이 필요한 사이였지만,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춘추는 이미 부인이 있었던 것같다(김춘추의 아버지는 대원신통 김용수, 부인은 보종의 딸 보량궁주라 함). 또 왕족인 춘추와 선덕여왕의 사촌인 유신 등 양쪽 집안의 정치 상황이나 권력관계로 혼인이 힘드니 두 사람은 선덕여왕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신라 남산 부근엔 신성하게 여겨진 지역이 많다. 시기별로 신라왕들이 신궁에 제사를 지냈단 기록이 남아 있다. 최근 주장에 의하면 신라의 근원이란 나정은 우물이 아니라 지역명일 가능성이 있다 한다.


선덕여왕은 알천, 비담을 비롯한 신하들을 잘 지휘하며 신라를 다스린다. 앞선 왕들이 했던 것처럼 종교 부흥을 위한 사찰 건설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삼국사기 조차 숨기지 못한 그녀의 지략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상당히 뛰어났거나 정치적으로 과장되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가장 특이한 게 지귀설화(志鬼說話)이다. 여왕의 미모에 반해 상사병에 걸리고 자연스럽게 불이 붙어 죽었다는 지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50대의 할머니(김부식도 그리 적었다)였다는 점이다.

당시의 인간수명이 몹시 짧았던 것을 고려하면 아름다운 여왕을 보고 미모에 반하기엔 몹시 늙어버린 상황이었으니 덕과 미모, 인정을 강조하기 위해 퍼트린 이야기가 아니겠느냐는 것(공주 시절이라 해도). 사서에 적힌 수상쩍은 이야기들은 탁월한 위정자들의 정치 능력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태종무열왕과 김유신 등은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치며 신라 최고 권력자가 되어간다. 진덕여왕은 몰라도 최소한 선덕여왕 만은 그 상황을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게 이용한 것 같다.

MBC 선덕여왕이란 드라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소문과 하늘의 뜻 만으로 정권이 장악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나 사상적 명목이 권력을 가지는 기반이 될 때도 있고 혈통의 우위를 두고 왕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 쟁쟁한 신라시대의 결전의 과정을 드라마로 상상해 본다는 건 어쩐지 조금 우습기도 하고 과장스럽기도 하지만 신라시대에 정권을 장악한 선덕여왕이 정치적으로 탁월한 인물임은 깎아내릴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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