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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는 '선덕여왕'에 등장한 신라 왕자들

Shain 2009. 9. 1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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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왕의 자녀 중 아들이 있을 경우 정궁의 아들은 '대군'으로 후궁의 아들은 '군'으로 봉하곤 했다. 이들 중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은 어릴때 '원자'로 봉하였다가 후에 '세자'로 책봉하게 되는 것이다. 화랑세기에도 비슷한 왕자의 구분이 존재하는데 바로 태자, 왕자, 전군의 구분이다. 정확한 구분은 아니나 태자는 조선 시대의 세자, 왕자는 대군, 전군은 군에 해당하는 존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공주는 외려 조선시대와 다르게 옹주와 차별을 두지 않았다.

태자와 왕자는 정궁(황후)과 왕 사이의 자손이고 전군은 왕과 후궁 사이, 왕후와 갈문왕 또는 왕족 사이의 자손이다. 왕후도 후궁인 궁주도 신분이 제한되었던(골품을 어겨 미실과의 인연을 거부한 까닭으로 진지왕이 폐위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그 시대에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직계는 꽤나 엄격하게 따졌던 듯하다. 조선시대에 왕의 자손이기만 하면 왕권을 주장하거나 물려받았던 경우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삼맥종이란 이름의 진흥왕

백정공 진평왕


어제 방송된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드디어 성골의 의미와 정치적 입지에 대한 설명이 잠시 등장했다. 왜 성골 직계인 덕만공주가 다른 왕자들 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지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비록 정확한 학설이기 보다 드라마적 허구가 보태어진 내용이지만). 진평왕에게 보로 전군을 비롯한 다른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들은 '전군'의 신분으로 '골품이란 것은 왕위와 신위를 구별하는 것이다'라는 화랑세기의 구분에 따르면 자격이 부족하다.

눌지왕이 부계상속 만을 강조하며 여자에게 왕위를 주지 않은 것은 분란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란 드라마 중 문노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공주가 왕위 계승 다툼에 끼어들면 신라가 내분에 휩싸인다는 말도 결과만 놓고 보자면 맞는 말이다. 김유신이 항상 제 2인자로 신라 왕족 간 권력 다툼에 끼어들지 않아야한다는 드라마 속 설명도 잘 맞아 떨어진다. 신라는 여러 부족의 연합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전엔 통일은 커녕 내분의 위험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사륜(금륜)태자였던 진지왕

지소태후의 아들인 세종전군

 
성골 만이 왕위를 이을 수 있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 조선시대였다면 당연히 왕권 다툼을 했을 만한 신라의 왕자들이 진골로 자신의 자리를 만족하고 포기했다는 것. 왕족에 대한 신격화가 유달히 심한 신라였으니 가능한 것일까. 어찌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다. 오늘은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왕자들'을 한번 되짚어 볼까 한다. 시간이 나면 공주들도 모아볼테지만(할머니 공주까지) 비담 '왕자'의 광기어린 눈을 보니 왕이 되지 못한 왕자들이 의외로 많단 생각이 떠오른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이 최소한 왕족, 즉 진골이다. 서민에서 뽑거나 했던 낭도들 시녀들을 제외하곤 신라 왕족과 혈연이 닿은 사람들이라 보면 되는데 기록되지 않은 왕자나 높은 왕족도 그들 중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골품의 특성 상 벼슬이 있으면 대부분 진골이란 이야기다. 신라인의 '가족끼리 비릇한 이름짓기' 습관이나 한자 사용을 알 수 없어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된다.

진지왕의 아들 용수전군

진지왕의 아들 용춘전군


우선 전군들의 이름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볼 점들이 있다. 화랑세기에 전군들은 대부분 이름의 끝이 '종(宗)'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드라마는 비담의 태명을 '형종(炯宗)'이라 설정하고 있다. 하종(夏宗), 수종(壽悰), 옥종(玉宗), 보종(宝宗) 등의 이름이 그러하다. 왕자이자 태자인 사륜(舍輪, 혹은 金輪)과 태자였던 동륜(銅輪)의 이름은 그렇지 않다[각주:1]. 용수(龍樹) 전군과 용춘(龍春) 전군도 원래 성골일 가능성이 있던(진지왕 금륜이 왕이었을 때는) 사람이라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한다.

세종(世宗)은 어머니 지소태후가 이사부와 사통해 낳은 아들로 전군이 되었고, 수종은 진흥왕과 미실 사이의 아들로 전군이 되는게 당연히 맞지만 하종은 진흥왕의 자녀를 낳은 미실을 위해 '가자(假子)'로 삼아 전군이 된 케이스고 옥종 역시 마복자로 진흥왕의 양자 비슷하게 전군이 된 사람이다. 보종은 진평왕의 아들인 줄 알고 전군으로 자랐지만 나중에 자라고 보니 설원을 닮아 친아버지에게 보내진 전군이다.

어머니 덕에 왕자가 된 하종전군

어머니 덕에 왕자가 된 보종전군


전군의 지위가 남발된 감이 있지만 어차피 왕위계승을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전군이 있다 한들 이상할 것도 없다. 성골에 비교할 수 없는 허울 뿐인 왕자로 왕위계승권도 없이 왕족의 처지만 유지하던 조선의 옹주와 마찬가지 신분인 셈이다. 실제 삼국사기엔 '종'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미실의 남편인 세종은 지소태후의 지위가 성골에 가깝고 진흥왕의 친 동생이라 아들 하종과는 대우가 달랐던 듯하다.

이름의 유행인지 작명 원칙인지 당시의 상황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성골, 직계 태자와 왕자에겐 왕명이 될 이름을 주고 전군들에겐 '종'이란 이름을 준게 아닐까 싶다. 법흥왕의 이름도 원종(原宗)이다. 진흥왕 이름은 '삼맥종(彡麥宗) 또는 심맥부(深麥夫)'라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적혀 있다. 갈문왕 입종의 아들로 정식 '태자'의 자리는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군의 지위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던 사람은 이외에도 태종(苔宗) 이사부와 황종(荒宗) 거칠부(居柒夫) 등이 있다.

혹시 나도 전군? 화랑 임종

진짜 왕자일까?! 상대등 비담


상대등이었던 '노리부(弩里夫)'도 이 추측에 의하면 전군일 가능성이 생긴다. 임종(林宗), 술종(述宗), 산종(山宗), 숙흘종(肅訖宗) 등도 같은 추측으로 전군의 지위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진평왕 때는 수을부(首乙夫, 삼국사기)라는 이름의 상대등도 있었다. 상대등이 이사부, 거칠부, 노리부, 세종, 수을부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건 상대등 자리가 최고 왕족에게 주어진단 점과 맞아 떨어진다. '왕자'일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상대등 알천의 왕족 지위는?

노리부(弩里夫)


이는 선덕여왕 이후에 조금 달라진 경향이 있는데 여왕에게 색공한 을제(乙際)나 수품(水品)에게 진덕여왕 시기엔 알천(閼川)이 상대등에 등용되었다. 이름과 신분이 아예 무관한 것인지 그들의 신분이 비교적 낮아진 것인지 이름을 쓰는 관습이 변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골품을 중요시하고 성골을 우선시한 건 드라마 속 문노의 말처럼 왕권 유지를 위한 것이지만 수없이 많아진 왕족을 권력에서 멀어지게 할 필요가 있을, 그런 시기가 선덕여왕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황종(荒宗) 거칠부(居柒夫)

태종(苔宗) 이사부


재밌는 건 오늘부터 등장하는 김춘추는 왕자도 전군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화랑세기 역시 김춘추를 춘추공이라고만 표시하고 있고 삼국사기는 이찬 용춘의 아들이라고만 적고 있다. 그는 왕족이긴 하지만 전군도, 태자도, 왕자도 아니었던 신분인 것이다. 애초에 알천에게 제일 먼저 왕위가 갔었던 사실 만 봐도 조금은 혈연이 먼 쪽이었다 여겨진다. 신라의 변화이면서 진골의 변신이다. 그 이후 김씨성을 이어가는 부계계승이 확고해졌고 신하들 중에서도 성씨를 가진 자들이 다수가 되었다.


  1. 진흥왕에겐 태자가 한명 더 있다. 정숙태자는 진흥왕의 이부동모 형제인 숙명공주에게 태어난 왕자다. 그러나 잘 알려진대로 숙명은 원광법사의 어머니로 다른 연인을 사랑했고 평소에도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정숙태자는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는 이유로 태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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