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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드라마 속 미실을 닮았을 것이다

Shain 2009. 9. 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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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시기에 건축된 첨성대가 천문관측기구라는 건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과 그 라이벌이 유난히 별자리를 강조하고 별을 테마로 만든 오프닝을 사용하는 것 역시 그녀의 과학적 안목을 강조하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에 사용된 벽돌의 개수(음력 한해의 날 수, 366개)나 특이한 모양 등은 천기를 상징하는 구조물로서 딱 알맞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부 구조는 벽돌이 거칠게 튀어나와 관측용으로 적합하지 않고, 크기나 위치 등이 천문학과는 무관하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많다. 최근엔 선덕여왕이 신라 제 27대 왕임을 나타내는 상징물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등장했다. 천문학 관련 건물물이냐 단순한 상징물이냐를 두고 이렇게 많은 논란이 벌어진 건 어찌 보면 드라마의 긍정적인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첨성대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개인적으론 고대인의 천문학적 지식과 상식(드라마 소재가 된 정광력, 책력을 보라)을 높게 평가하는 편이기 때문에 완벽하진 않더라도 첨성대엔 고대 천문학 구조물로서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만한 능력을 갖춘 여왕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본 바 그 구조물을 상징물로서 사용할 수도 있는 배짱을 갖춘 인물이란 점에도 동의한다. 그녀는 '여왕'이기 때문이다.

소박하지만 단아하게 쌓은 저 구조물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에 비교할만한 그녀의 지략을 연상하게 한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단순히 허수아비 왕이었고 국정을 어지럽게 했다는 평도 만만치 않지만 여왕에게 박한 김부식 조차 그녀의 기록을 폄하하기 힘들었음을 우리는 사서를 통해 읽고 있다. 상대적으로 김유신의 기록을 강조했음에도 선덕여왕은 감유신의 주군이요 주인이었다.

미실의 행보에 오버랩되는 건 실제 선덕여왕이다.


드라마 중 정권을 향해 달려가는 선덕여왕에게 다른 방해물이 생겼다. 바로 김춘추의 등장인데 태자도 전군도 아닌 김춘추에게 조금 무리한 발상이 아닐까 싶지만 결국 한 핏줄이니 여왕의 지원군이 될 것이다. 가장 큰 라이벌인 미실은 하종의 딸 영모를 유신에게 주어 김유신을 손주사위로 맞을 것이다. 보종의 딸 보량궁주 역시 김춘추와 혼인하여 김춘추는 미실의 손주사위가 된다. 그녀의 책략을 보고 떠오르는 건 사서 속 선덕여왕이니 사실 드라마에서 표현한 미실의 모티브는 선뎍여왕 그 자신이 아닐까.


자신의 성스러움과 특별함을 강조하다

드라마에선 미실이 월식과 일식을 맞추고, 기우제로 비를 내리게 하며 천신황녀란 별칭을 얻어 자신의 종교적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민심을 얻는다. 그녀는 왕족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신관의 지위을 확보한 것으로 그려진다. 나라의 고위관직자들을 손에 넣고 주무른 그녀의 정치 능력과 별개로 백성들이 함부로 입방아 조차 찧기 힘든, 차원이 다른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부분은 화랑세기 기록과도 다르다. 반면 선덕여왕에게는 다른 왕과 달리 성조황고(聖祖皇姑)란 호칭이 부여되어 있다.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가 정략적으로 '성모 이미지'을 널리 알렸듯 '성스러운 피를 물려받은 여자황제'란 선덕여왕의 별칭은 많은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여왕이라 무시하지 말라는 대국민 경고의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유일한 성골인 특별한 왕족임을 강조하고 신궁에 제사지내는 주체임을 과시하며 황룡사탑같은 불교 건물 건축에도 공을 들인다. 드라마에 등장했듯 왕권을 강화하는 방법 중 하나는 왕족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성조황고란 별칭을 가진 선덕여왕은 유난히 혈통을 강조했다.


천지신명(신궁), 부처(어머니의 이름이 마야)같은 '신성한 존재들'이 자신의 뒷배임을 자랑하며 그녀가 함께 강조한 것이 바로 총명함이다. 덕만이 아름다웠음을 엿볼 수 있는 '지귀설화'와 현명함을 강조하는 '모란꽃 이야기' 등을 널리 퍼트려 선견지명이 있는 똑똑한 인물임을 만천하에 과시한다. 즉위 당시의 연령이 적잖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음에도 현명한 아름다움은 신격화의 중요한 요건이었던 듯 싶다. 삼국유사엔 자신의 '죽는 날'을 예언하며 무덤까지 지정해주는 거의 '반신'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정적과 신규 세력을 아우르는 정치적 인물

미실은 원화로서 자신의 남편과 애인, 동생, 아들을 차례로 풍월주 자리에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사촌과 문노를 결혼시켜 문노 역시 자신과 가까이 두었다. 드라마 상에서 덧붙여 설원랑이 병부령까지 진급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왕족 입장에선 모두 신규 세력이 그 자리에 오른 셈이다. 그녀는 기존 세력과 결탁해서는 쉽게 병권을 장악하고 정권을 창출할 수 없음을 안다. 그 병권은 색공과 더불어 미실이 여성으로서 궁궐을 장악하는 기본 기반이 되어 주었음은 두말할 것없다.

선덕여왕은 사서에 몇몇의 남편이 기록되어 있고 자신을 모신 을제를 상대등으로 임명했다. 병권은 미실 보다 효율적으로 장악이 가능했는데 진평왕 시기를 통해 각종 제도와 조직이 충분히 안정되었기에 보다 수월하지 않았나 한다. 장군 알천으로 하여금 백제와의 전쟁에 대비하게 하고 김유신과 김춘추는 화랑 풍월주로서 그녀를 보좌했다. 김유신 역시 가야계로 신라에 진입한 신규 세력이다. 조카 김춘추는 유신집안과 혼인하게 하여 김유신과 사돈을 맺고 그들은 한 팀이 된다.

선덕여왕의 기반 세력 김유신, 미실이 세종, 미생, 하종, 설원, 보종 등을 차례로 군사적 기반으로 이용했듯 선덕여왕은 알천과 김유신을 최측근으로 두었다.


그녀는 전반적으로 능수능란한 인물로 군사적 지지기반도 정치적 기반도 강력했던 듯하다(반란을 제외하곤 부정적 기록이 거의 없다). 선덕여왕 14년에 비담을 상대등으로 삼았는데 일년이 조금 지난 즉위 16년에 '여자가 왕'이란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비담이 평소에 여왕에게 호의를 보였을 리는 없다. 비담과 알천 등은 왕위를 위협하는 왕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담을 높은 관직에까지 등용한 선덕여왕은 정적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기본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드라마 속 선덕여왕은 미실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상태다. 미실 역시 황후가 되고픈 사심을 숨기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원한이나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그건 '정치적이지' 못한 법이니 지배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문노의 캐릭터는 그 부분을 잘 지적하고 있다. 드라마 속 미실 캐릭터는 심성은 악할 지언정 정치적으로 그 의도나 속셈을 제대로 숨기고 있고 옳지 않은 방법은 쫓지 않으니 이 모습이 바로 선덕여왕의 미래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참고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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