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백제가 많이 고프다

Shain 2010. 11. 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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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주장은 너무 앞서나갔고 어느 주장은 너무 축소한 듯 해서 적정선을 맞추기 힘듭니다. 그 짧은 시기 안에 요서와 백제 두루 정복했다는 근초고왕은 그 뒷 이야기가 상세하지 않은 관계로 그 영웅성을 어디까지 묘사해야할 지 제작진도 고민이 아주 많았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는 어떻게 묘사하는게 정답일까요.

그동안 불만족스러운 점을 여러 부분 봤길래 드라마가 여전히 '불친절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가지 이 드라마의 장점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시대 고증' 입니다. 사서에 의한 고증이나 성씨 등을 비롯한 역사 고증은 '이건 아닌데' 싶지만 소품이나 지역 배경, 복식 등은 꽤 만족스럽습니다. 왜 복장이 일본색이냐고 하는 분들도 많지만 당시의 그림을 살펴보면 제법 비슷한 느낌인게 사실입니다.

KBS 사극에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런 식의 자본이 필요한 고증입니다. 3개 방송사의 '장희빈' 시리즈에서 큰 가채 머리와 허리까지 오는 한복선이 구현된 건 KBS '장희빈' 뿐입니다. 가채가 금지된 건 영조 이후였고 한복 저고리가 짧아진 것도 조선 후기이지만 대부분의 방송국은 예산 상의 이유 등으로 그 부분을 잘 구현하지 않습니다.


KBS 근초고왕 제 2화에서 재현된 백제 풍경. 풍납토성이 보인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고증, 인정한다

어제 방송분을 보셨다면 고구려의 왕, 사유(고국원왕)가 눈빛으로 신하들을 제압하는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고국원왕 시기의 고구려는 전연을 비롯한 침입을 자주 받아 왕의 시신을 빼았길 정도로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의 신하들 역시 상당한 권력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왕 중심의 질서는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반면 백제는 갈라진 두 개 세력이 왕권을 두고 다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비류왕이 계왕 쪽의 눈치를 계속 살피지요.

고구려는 개국 초기부터 강력한 왕권을 수립합니다. 공을 세운 소서노 일족들을 쫓아낸 것은 배신하지 않고 깔끔하게 권력 문제를 조율하기 위한 방안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유리왕, 대무신왕을 거쳐 조금 복잡하긴 해도 왕권이 점점 더 강력해졌습니다. 신라와 백제는 이와 달랐기에 'MBC 선덕여왕'에서 묘사하는 대로 대원신통 계열이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고 'KBS 근초고왕'처럼 계왕이 왕위를 꿈꾼다는 설정을 넣기도 합니다.


안악 3호분 벽화와 KBS 근초고왕의 고국원왕. 시쳇말로 '싱크로율' 제법 높다.



그리고 각종 연예기사에서 광고하는대로 종이가 아직 유입되지 않은 백제를 고려해 문에 창호지 대신 마를 발랐다던가 건물의 단청을 없앤 문제, 각종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근거로 갑옷을 디자인하는 등 제법 많은 부분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고국원왕의 '백라관'은 황해남도의 안악 3호분 안의 벽화를 구현한 것입니다. 안악 3호분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치 않지만 북한은 '고국원왕'이 무덤 주인이라 주장하고 있거든요.

백제 시대의 많은 문물이 일본과 교류된 것으로 보아 어쩔 수 없이 일본 자료를 참고하는 경우도 있고, 시청자들의 눈이 기존 사극 속 갑옷이나 문물에 익숙해져 그런 점들을 못 알아보기도 합니다. 이미 대하사극 카페엔 갑옷에 '목보호대'가 과연 있었느냐를 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나 그 점 역시 최근 발굴된 가야지역 무덤을 참조한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근거를 기반으로 창작된 디자인이란 것이죠.



고증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있다

극중 고구려 군사들도 그렇고 고구려의 조정에서도 백잔(百殘)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백제 잔당' 또는 백제 잔적(殘賊)을 뜻하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뿌리를 뒀으니 이 말이 ‘백제 아잔(阿殘)’  즉 ‘백제 친척’이라는 말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고구려가 백제에 적대적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공식 문서에 상대국을 비하하는 말을 적었느냐는 충분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백제의 귀족회의는 남당이다. 고구려의 사신이 오자 비류왕은 부여준을 남당에 부르지 않는다.



이런 점들은 그래도 사서에서 찾아지는 내용이라 논란은 있어도 드라마 시청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대용입니다. 근초고왕 때의 좌평이었다는 진고도와 진정의 이야기도 뭐 삼국사기와 완전히 어긋나고 진씨 일가가 왕에게 우리 죽을테니 떠나겠다고 울먹이는 것도 삼국사기와 완전히 다르지만(진씨는 무척 강력해서 꾸준히 왕비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포스팅한 대로 제1왕후와 제 2왕후를 칭하는 언월[각주:1]과 소숙이 뜻하는 바는 전혀 알길 없는 창작이고, 이번에 등장한 진씨의 근거지인 사오리성(황해도 토산)과 해씨의 근거지인 초성리성(경기도 연천)의 구분은 어디서 나온 건지 알 길이 없군요. 그런 백제의 지명은 한자를 백제식 이두로 해석한 것일까요? 좀 더 친절하게 창작된 세계를 설명해줄 수는 없는걸까요.

 

무녕왕릉의 단룡문 환두대도. 백제의 칼은 몹시 화려했다.



극중에서 백제 어라하의 권한을 상징하는 일월검이 등장합니다. 백제에서 제일 유명한 칼[각주:2]은 드라마 오프닝에도 등장하는 '칠지도'입니다. 일본에 하사한 칼로 알려져 있죠. 같은 형태가 일본, 백제 양쪽에서 발견되어 백제사 연구의 큰 논란 거리 중 하나입니다. 확실한 건 백제 시대의 다양한 종류의 화려한 칼들이 상당히 발달했고 꽤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협에서 나온듯한 이름의 일월검인 것도 약간 실망이지만 모양도 남아 있는 유물에 비해선 약간 초라하더군요. 백제는 검 보다는 '환두대도'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백제의 왕이 태자에게 내린 일월검은 실제 전장에서 전투용으로 쓰였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훨씬 화려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각주:3]? 고증한 노력에 비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극중 비류왕이 태자 부여찬에게 부여한 일월검, 태자 역시 잡혀갈 때 이 검을 먼저 동생에게 준다.




고국원왕, 부여구, 부여화의 앞날

백제 태자 부여찬은 사극 속 전형적인 못난이 코스를 차근차근 밟고 있고, 고국원왕은 악당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여우같은 부여화는 아버지 말대로 연인의 무덤을 파놓고도 같이 애인에겐 요서로 가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나투의 꿈을 꾸고 태어난 아이 부여구, 주몽의 현신이란 평을 받는 부여구와 소서노의 현신이라는 부여화의 운명은 적이자 동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후의 내용은 부여구에게 왕위를 주고 싶어하는 비류왕 때문에 비류왕은 해비해소술, 부여준과 부여찬에게 살해되고 부여구가 그 누명을 쓰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반역죄로 죽을 뻔하지만 할아버지 흑강공 덕분에 탈출하고 어머니는 자결합니다. 그뒤 다시 돌아와 부여화를 비롯한 백제 왕실을 차지하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칠지도와 일본과의 관계, 요서 지방에 대한 해석 등 입장을 달리하면 백제사에 대한 해석은 확 뒤집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은 창작이 될 수 밖에 없고 시청자들은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소설을 읽듯 생소한 내용을 접할 수 밖에 없게 되죠. KBS 근초고왕을 보려면 시청자에게 좀더 많은 설명을 해줘야하고  좀더 친절한 장치를 마련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 2010년 11월 27일 방송중에서 완월당(翫月堂)이라고 바로 잡았습니다. 시청후 소리만 듣고 적은 내용인데 혼란 빚어 죄송하고 바로잡습니다 [본문으로]
  2. 칼, 검, 도 다 다르게 분류가 됩니다만 일괄 '칼'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백제 유물 중 검은 흔치 않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3. 고구려의 환두대도는 상대적으로 화려하기 보단 단순한 실용적인 모양이 많다고 한다. 만약 소서노나 온조왕에게 물려받은 사연있는 거라면 모를까. 비슷한 시기의 칠지도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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