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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에 2002년 대선 등장한 이유

Shain 2010. 12. 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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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방영된 'SBS 대물'은 아직까지 25%의 평균 시청률을 넘기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물은 초반 '외압' 논란도 그랬지만 외부의 시선을 참 많이 의식하고 있는 드라마란 생각이 듭니다. 국회의사당에 해머가 등장하고 일명 '떡검' 논란이 반대로 재현되는 등 모든 장면에서 등장하는 현실 소재의 사건들이 화제 유발을 목적으로 인용된 듯한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부득부득 이 드라마가 '현실'과 무관하다고 강조해 보지만 첫 등장에 보여준 여성 대통령 서혜림(고현정)의 머리형과 복장이 모 정치인과 매우 유사했던 것까지 지적하고 나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권 여당인 민우당의 명칭과 로고까지 도마에 오른 적 있을 정도죠. 전체적으로 보면 물론 아무 의미가 없지만 서혜림이 박근혜와 노무현 둘 중 누굴 더 닮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의미론 드라마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특정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이 여성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집권 여당이 야당으로 바뀌었을 뿐이고 정몽준이 야당 대표(그것도 무려 복지당)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젊은 이미지의 정몽준이 나이든 노회한 정치인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지만 그 부분은 미미합니다.
 
정치 드라마가 현실에서 각종 소재를 가져온 것도 아슬아슬한데 그 모델이 된 '정치인'들이 날선 대립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요즘 과거 정치사의 행보를 그대로 옮겨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박근혜를 모델로 했다는 악평을 피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 뿐일까요?



대물은 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묘사했는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서혜림은 아프가니스탄 피납자 미망인으로 전국민에게 알려졌지만 정치 경력이 전무합니다. 우리 나라는 모든 국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피선거권을 가진 인물로 당선이 되자면 일정 수준의 자본과 지명도가 있어야 합니다. '대물'을 만화같은 드라마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원작 탓이기도 하지만 그 부분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혜림의 정치인 입문 과정이 강태산(차인표)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고 남해도지사 당선 역시 하도야(권상우)의 상대편 후보 협박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처럼 정말로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조배호(박근형)가 강태산의 배신으로 원한이 쌓이지 않았더라면 혁신당은 창당하지 못했을 거고 장세진(이수경)이 강태산과 조배호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다면 도움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 모든 것이 서혜림이란 인물이 가진 타고난 흡인력이기도 하지만 '운명'이나 '운' 없이는 불가능하단 걸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리고 그 운을 결정하는 건 '사람들의 마음', 즉 국민이 감동받고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뿐입니다. 서혜림의 행보는 오로지 '국민'의 마음과 행동력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엔 그런 행보를 보여준 대통령이 아쉽게도 단 한사람 뿐이죠.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아무도 대선에 나갈 거라 예상도 하지 못 했던, 민주당의 변방에서 핵심세력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국회의원을 하던 노무현 국회의원.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며 보여준 울분으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눈물짓게 만들던 국회의원. 그렇게 대세에 반발하며 정치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사람은 단 한명입니다. 국민들이 후원한 노란 돼지저금통과 자원봉사자, 노무현 인형 판매란 기현상을 보여준 사람도 그분, 단 한명 뿐이죠.

2002년 당선이 확정된 그 밤, 많은 사람들이 당선을 축하하며 역 앞에서 광장에서 춤을 추며 즐거워했고 배신자 정몽준을 손가락질하기도 했습니다. 강직하고 강한 이미지의 상대편 패배자는 출구조사를 통해 당연히 당선되리라 여겼지만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신인 정치인 서혜림이 당선되는 방법, 그 모델로 삼을 만한 역사는 우리 나라에 노무현 대통령 말고는 없습니다.

하필 서혜림은 '굴욕 외교'를 핑계로 강태산에게 탄핵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노란 정장을 입고 첫 등장한 여성 대통령, 탄핵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에서 또다시 우리 나라 유일의 '대통령 탄핵' 사건이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 드라마로서의 대물은 여전히 미숙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노란 리본이 매어진 길로 돌아올 대통령이 이번에는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역시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

현실에서 모델을 가져오긴 했지만, 서혜림은 현실 속 모델에 비해 큰 고난을 당한 편은 아닙니다. 사회에서 정치인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는 미망인이자 여성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처럼 학력 등을 문제로 언론의 조롱을 당한 적도 없고 배우자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굳이 비난할 문제가 이닌, 정책 이외의 문제를 물고 넘어진 정당과 언론인들이 많았지만 서혜림은 그 부분에선 아직까지 무난합니다.

대신 그 역할을 맡은 탤렌트가 입는 '명품옷'은 현실과 드라마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입은 옷이 액세사리까지 합치면 억대를 넘어서는 가격이라는군요. 비행기 안에서 입었던 옷도 몇백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녀의 당선과정은 그리운, 한 대통령의 모습인데 그녀가 입은 옷은 '비싸고' 화려한 옷으로 구설에 올랐던 영부인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과거 유명했던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가 떠난 대통령궁에는 핸드백 888개와 구두 1060켤레가 남겨져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화로 4000억원 가량의 보석도 있었지만 국가에 몰수되어 있었지만 작년 되돌려달라는 신청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대통령의 품격과 패션은 칭찬할만 하지만 사치는 국제적 망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장면의 진실은 바로 드라마 PPL이겠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국민 앞에 선 서혜림. 감격스러울 만큼 놀라웠고 국민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2002년 12월을 기억해 내셨나요? 여성 대통령이라는 존재 만큼이나 낯설고 반가웠던 그분이 지금 이 드라마를 본다면 정치 콘텐츠의 방향성을 재미있게 지적해줄 지도 모릅니다. 살아 있다면 '아직 살아있는 나를 두고 드라마를 만들진 말라'는 원칙을 말해줬을 거란 상상도 해봅니다. 참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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