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우리는 아직도 홍길동이 필요할까?

Shain 2011. 1. 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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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대 의적은 연산군 때의 홍길동, 명종 때의 임꺽정, 숙종 시기의 장길산입니다. 당시 민간에서 비호하던 '의적(義賊)'들은 혼란한 조선 사회를 반영하면서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존재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 문정왕후의 독재로 비난받은 명종 시기,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내세운 당파 싸움이 한참이던 숙종조의 민생이 그닥 평탄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1월 31일 방영된다고 했었던 'MBC 짝패'의 방영이 2월 7일로 미뤄졌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안동 김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거지들 사이에서 자라 의적이 된 남자 천둥(천정명)입니다. 천둥과 바뀌어 안동 김씨의 아들로 키워진 귀동(이상윤)은 포도대장이 됩니다. 의적은 백성들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고 포도대장은 관의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니 관계가 심상치 않죠.


'의적(義賊)'이란 표현 만큼 특이한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악인의 재물을 훔쳐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게 나눠주는 이들의 행위는 이율배반적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과거의 윤리와 다른 가치관이 적용되는 현대에는 '악을 응징하기 위해 악을 이용한다'는 방법론이 허용될 리 없습니다. 반면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악인을 제도 안에서 처벌해야한다는 문명화된 처벌이 가진자 중심의 도덕같기도 합니다.

세계 각국엔 나라별로 유명한 의적들이 존재합니다. 의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국의 로빈훗, 우크라이나의 네스토 마흐노, 밴디드퀸 폴란 데비 등 국가가 어려울수록 의적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물론 그들의 유명세나 영웅성은 국민들에 의해 실제 보다 더욱 과장되거나 높이 평가되는 면은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의적은 일개 도둑에게 기대를 해야할 만큼 민중의 삶이 망가졌다는 걸 반증한다는 것입니다. 



허균의 호민론과 홍길동전

시대를 떠들석하게 했던 의적 홍길동의 이야기를 글로 옮긴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즉 '천하에 두려워할 자는 오직 오직 백성뿐이다'라는 뜻입니다. 허균은 가혹하게 백성을 대하는 윗자리 사람들을 엄중히 나무라며 어찌해서 이런 현상이 가능한지 설명합니다. 허균은 백성을 항민, 원민, 호민으로 나누며 이중 호민을 몹시 두려워해야할 존재라 합니다.

항민(恒民)은 시키는대로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자입니다. 원민(怨民)은 윗사람이 바라는대로 하되 탄식하며 원망하는 백성들입니다. 호민(豪民)은 때가 되면 떨치고 일어나 호령하여 원민들을 끌어모으는 사람입니다. 항민과 원민은 그리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나 호민은 나라를 뒤엎을 수도 있는 윗사람이 반드시 두려워해야할 존재라는 것이죠. 허균은 덧붙여 윗사람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호민이 없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1998년 방영된 SBS 홍길동 (김석훈)


홍길동이 활빈당을 이끌다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은 읽으면 실제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임꺽정의 이야기를 떠오릅니다. 임꺽정은 당시 농민 봉기를 지배층에 대한 저항으로 끌어올린 상징적인 인물로 그가 일으킨 반란은 상당히 오랫동안 조선을 뒤흔듭니다. 명종실록의 편찬자는 임꺽정같은 도적의 성행을 수령의 수탈이 원인이라 보고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형편이라 기록했습니다.

백정 출신의 임꺽정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관청을 습격하고 부자들을 털 때 마다 백성들은 환호하고 그들의 존재를 숨겨주며 관군의 이동을 알려줍니다. 조선을 뒤엎고자 했던 임꺽정은 왕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임꺽정의 모습을 소설로 구현한 사람이 홍명희입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의적의 존재는 '인간시장' 등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지요.



민중사극, 우리들의 이야기?

3대 의적 이야기는 몇차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속시원하게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때로는 가슴아프게 권력을 가진자들에게 희생당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늘 큰 인기를 끌곤 했습니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사람들이 속시원하게 생각하는 약자들의 반란은 늘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 테마입니다. 'SBS 대물'도 일면 의적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일부 반영했을 것입니다.

권력과 재물을 가진자가 백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호민'이 없기 때문이라는 허균의 말처럼 현대사회에는 호민과 그를 따르는 원민이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이 즐기는 대중 문화의 많은 부분이 서민이나 민중에게 시선을 돌리기 보다 왕과 재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요. 하소연할 곳 없는 서민들의 삶은 누가 보아줄 지 갑갑하기만 합니다.
 



의적과 민중들의 이야기인 'MBC 짝패'는 장길산도 홍길동도 아닌 창작된 의적의 이야기지만 왕과 왕비도 아닌 신하도 아닌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 합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이 창작된 후 수백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의적 홍길동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과 기대는 아직 버려지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새롭게 표현될 의적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호민'이 될까요.

캐스팅에 난항을 겪던 드라마는 급하게 제작에 들어갔지만 이미 10회 이상의 대본이 집필되어 안정적으로 촬영되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면면이 한눈에 기대하게 만드는 초스타급 캐스팅은 아니지만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들을 제대로 뽑아낸다는 작가의 안목을 기대해봐도 될 듯합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도적 홍길동의 존재는 절대 자유롭지 못합니다. '의적(義賊)'이란 말의 뜻처럼 '의로운 도둑'이란 표현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모순인지도 모릅니다. 도둑질 자체가 의롭지 못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출귀몰하는 홍길동처럼 제도와 윤리를 초월해 '국민의 편'을 들어주는 존재가 등장하길 바라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즐겨 보는 수퍼히어로들이 사실은 현대판 홍길동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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