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우리는 왜 막장 드라마를 볼까

Shain 2011. 1. 25. 06:31
728x90
반응형
이 질문은 굳이 따져볼 까닭이 없는 지도 모릅니다. 논란이 되든 어쨌든 재미있기 때문에 시청한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이런 취미는 문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찾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가 마침 드라마였을 지도 모릅니다. 과도한 설정이나 연출 때문에 비난받는 많은 드라마들이 '막장 드라마'라면서도 시청률이 높습니다. 막장의 원조라는 미드, 웬만한 소프 오페라는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

물론 모든 대중 문화는 평등하고 존재하는 이유가 있기에 이런 비난받는 드라마가 아닌 '명품' 만으로 TV를 채울 이유는 없습니다. 저급 문화와 고급 문화에 대한 구분이 가능하다 해도 드라마가 '훌륭하다' 혹은 '아니다'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 개인적으로 달리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공통적인 '논란의 소지'는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 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불륜, 삼각관계, 재벌, 불치병, 출생의 비밀, 처벌받지 않는 범죄, 양심없는 주인공의 악행 등 사람들이 민망해하고 불편해하는 소재를 쓸 때 흔히 막장 드라마라 정의합니다. 덧붙여 그런 소재들을 활용해 뻔한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때 악평을 받습니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도 비슷한 설정이 있을 경우 '막장'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MBC 욕망의 불꽃'이나 '폭풍의 연인'은 막장 논란을 피해가지 못 했고 'SBS 엄마 웃어요'나 '신기생뎐'은 어김없이 도마에 오릅니다. 본디 막장이란 단어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표현 자체도 써서는 안되지만 속칭 '막장 드라마'를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는 옹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막장 드라마의 나쁜 점은?

이런 드라마들이 흔히 채택하는 설정이 이혼, 불륜, 범죄 등의 극단적 설정인데 의외로 이런 부분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몇가지 예로 'MBC 보고 또 보고'에 등장한 겹사돈 관계는 언니와 동생이 바뀐 문제로 불편할 수는 있어도 망측하다거나 비난받는 관계는 아닌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듯 호들갑을 떱니다. 혹은 특정 직업군은 바람을 피운다는 식의 편견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이혼' 문제를 지나치게 관대한 태도를 대하는가 하면 때로는 꼭 이혼해야할 상황에서도 이혼을 도덕적 범죄처럼 여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극중 인물들의 인생을 흥미 위주로 편집하다 보니 어떤게 상황에 맞느냐를 따지기 보다 우연이든 괴팍한 캐릭터에 의해서든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합니다. 


'드라마를 모방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 때문에 드라마가 비난받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비상식적인 드라마 속 인물이 행동의 모티브나 모델이 될 수는 있습니다.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 보다 감정적인 동조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성이 방송 3사 드라마 중 일부에 불과하면 괜찮지만 한국 방송 시장이 좁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진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논란이 된 드라마는 더 인기를 끌기 마련이라 케이블과 새로운 방송 사업자들도 경쟁에 뛰어들 것입니다. 각종 교양, 시사 프로그램을 축소시키고 드라마 컨텐츠의 다양성을 사장시키는 이 '전형적인' 드라마들은 드라마 발전을 저해합니다.



왜 막장 드라마를 볼까

책을 비롯한 각종 문화를 즐기는 이유는 만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지적 노동을 통한 만족일 수도 있고 카타르시스를 통한 만족일 수도 있는 이런 오락 영역 중 하나가 '통속극'입니다. 사람들은 창작된 타인의 삶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합니다.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고 희노애락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볼거리가 드라마입니다.

덧붙여 힘든 직장에서 돌아와 현실의 고달픔을 잊고 싶을 땐 골똘히 생각하는 오락거리 보다는 쉽게 몰입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드라마가 매력적입니다. 통속극 특유의 매력인 기구한 인생에 공감하다 보면 자신의 힘든 하루를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문화와 경제적 안정이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주제를 기피하는 사회 분위기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문제를 대화 주제로 선택하지 않는 건 불문율입니다.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연예인 가십이나 드라마에 익숙해야한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되도록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 이외에 또다른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상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의 인생을 '고급'과 '저급'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부자들이 좀 더 부유한 문화를 즐기고 고급스런 물품을 즐긴다고 해서 그 인생이 고급이 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대중 문화의 뜻이 다수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문화이고 보면 서민들의 오락물인 막장 드라마를 고급이 아닌 '하급'이라 단정하며 넘어갈 수 만은 없습니다.

고려말에서 조선조로 넘어오며 사장된 많은 '남녀상열지사'들이 혹은 조선시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공개되지 않은 저속하고 통속적인 문화들이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의 막장 드라마들이 그런 문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들의 이야길 다루기 보다 재벌층이나 중산층 가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겠죠. 자조적인 성격 보다 현실도피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도 또다른 차이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어떤 비난받는 주제로 드라마를 만들던 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야 마는 드라마 제작 능력의 발전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과다한 폭력으로 과거엔 누구도 시청할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스파르타쿠스'가 드라마로 방송 중인 건 그만큼 시청자의 정서가 무뎌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장인과 사위가 연적이 되는 내용의 '황금물고기'를 어떻게 시청할수 있을까 사람들은 비난했지만 시청률은 1위를 기록했습니다.

막장 드라마는 비난받아야하는 '길티 플레저'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현대인의 문제점과 욕망을 담아낸 작품일까요. 무의식 중에 시청하다가도 되돌아 보게 됩니다. 과열 분위기로 치닫는 '막장' 제작 열풍을 보며 누군가는 제동을 걸어야할 것도 같은데 아직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