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진짜 아래적은 의적이 아니다

Shain 2011. 3. 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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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지금 MBC는 상업방송과 공영방송의 기로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MBC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감 보다는 최근 개정된 방송관련법에 편승해 간접광고와 PPL을 부각시키는 드라마와 시청률을 단기간에 높일 수 있는 통속극 위주의 드라마 제작으로 구설에 자주 올랐습니다. MBC '욕망의 불꽃'은 분명 재미있는 통속극이지만 간접광고가 극대화된 문제작임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흔히 드라마 출연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면 '누구 뒷배로' 드라마에 끼어들었냐 하고 작가가 초반에 보여준 비판의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외압'을 받은게 아니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게 됩니다. 그 비판은 오로지 대한민국의 방송계 보여준 여러 사건들을 토대로 이뤄진 것이라 방송관계자들이 외압 따위 없노라 반박해도 믿기 힘들 것입니다. 기획사의 압력과 접대로 얻어진 배역도 분명 있었고 검열과 외압으로 변질된 방송도 분명 있었으니까요.

천둥을 좋아하는 금옥, 동녀와 삼각관계를 이루다


서민 드라마를 쓰기로 유명한 작가 김운경의 글을 검색해보면 제법 재미난 외압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KBS에 방영되던 '파랑새는 있다'의 원제목은 '파랑새는 없다'였다고 합니다. 셋집에 살며 그닥 부유한 직업군도 아니었던 주인공들, 차력사나 다방 레지나 밤무대 출연 가수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약간은 어두운 느낌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풀어가던 그 드라마, 타이틀 '파랑새는 없다'가 너무 암울하니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결국 '있다'로 바꿔버렸다고 하는군요.

드라마 '짝패'에 그런 외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현실과 맞닿아있는 건 사실입니다. 궁궐에 납품하는 물품에 뇌물을 달라 조르는 내수사 관원이 있고 포교가 부정한 밀거래에 가담하고 억울하다고 항의하는 상인을 행패를 부린다고 잡아넣는 모양새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입니다. 관군에 대적하던 천둥이 변절자처럼 장사꾼으로 성공한 모습은 어쩐지 '외압'이 연상되긴 하지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래적(我來賊)

드라마 시놉시스엔 분명 천둥이 의적이 될 거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죽은 것으로 알려진 강포수(권오중)은 신출귀몰하며 양반을 털고 백성에게 돈을 나눠주는 '아래적(我來賊)'의 두목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장꼭지(이문식)의 아들 도갑(임현성)은 청국에서 온 자물쇠를 유일하게 풀 수 있는 인물로 틀림없이 강포수의 수하일 것입니다. 문제는 동녀와 천둥이 지금 아래적과 무슨 관계냐는 것이겠죠.

동녀나 천둥이 아래적의 뒷배에 있으면서 모르는 척 상단의 행수인 체 위장하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면 10년전 강포수와 헤어져 그들의 소재를 전혀 모르고 있느냐 하는 부분도 의문이고 사라져버린 거지패의 껄떡(정경호), 말손(김경진) 등이 그들과 합류했는지도 궁금한 부분입니다. 같은 마을 출신으로 이생원에게 복수할만한 인물들이긴 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어 아래적과의 관계는 당분간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랫사람들이 몰래 천둥이 빌어먹던 거지패 출신이라 흉보는 걸 보고 천둥은 상심하여 고민합니다. 자신이 준 노리개를 금옥(이설아)에게 주고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등 어쩐지 자신에게만 냉담한 동녀 때문에 속상하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썩어버린 종놈근성이라며 나무라고 화를 냈지만 이건 조선 후기 사회가 스스로 벗을 수 없었던 생각의 굴레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은 '아래적(我來賊)'은 조선 영조시기 장한종이 지은 야담집 '어수신화(禦睡新話)'에 전하는 내용으로 일지매와 함께 서양의 '괴도 루팡'처럼 신출귀몰하는 도둑이었다고 합니다. 대담하게도 도둑질을 하고 '내가 왔다 간다(我來)'라는 표시를 남겼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견해도 있는데 중국의 '아래야(我來也)'이야기나 일본의 '지라이야(自來也)' 이야기 등 비슷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라는군요.

극중 '아래'는 동녀와 천둥의 개인적인 사연이 있어 '아래'라는 단어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고전에 전하는 아래적은 의적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재치있는 도둑이라 탈출할 때도 귀신같이 재빠르게 도망쳤다는군요. 무술이 뛰어나고 남다른 재주가 있는 천둥이라면 충분히 아래적의 자질이 있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천둥이 강포수와 헤어져 돈버는 장사치로 살게된 10년, 특별한 사연이 있는 '아래(我來)'가 도적의 이름이 된 이유, 과연 김진사와 친하게 지내는 천둥은 변절을 한 것일까요. 남다른 배포를 가진 달이(서현진)나 동녀가 아무도 모르게 강포수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일까요. 그간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무게있는 배우 김명수, 정찬의 변신

극중 김진사, 현 호조참 김재익(최종환)은 뒷돈으로 벼슬하고 뒷배로 승승장구하는 민씨가에게 딸을 주고 싶다는 아내 권씨(임채원)의 말을 무시합니다. 안동 김씨 일문으로 재물에 욕심이 많은 김진사에게 의외로 상황판단이 정확한 구석이 있습니다. 성초시를 죽인 것도 부패한 전임 현감(김명수)의 음모였습니다. 항상 무게있는 배역을 맡던 배우 김명수가 그런 간살떠는 양반 역할을 맡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는 양반 체면도 구긴채 거지꼴로 투전판을 전전하는 말종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노름꾼 노릇을 하는 사람이 한명 더 있으니 바로 조선달(정찬)입니다. 'SBS 토지'에서 룸페니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건 봤지만 이런식으로 주막집 주모에게 얹혀 큰소리치고 막나가는 기둥서방 역할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평소 깔끔한 이미지의 정찬하고 달리 의뭉스럽게 조선달 역할을 잘 하더군요.


유달리 망나니 양반네에게 약한 막순(윤유선)은 노름꾼 조선달에게는 애를 끓이면서도 평생을 뒷바라지한 쇠돌(정인기)의 애정을 본척만척하고 있습니다. 큰년(서이숙)에게 위로를 받은 쇠돌의 애처로운 눈물. 도둑질로 업을 삼은 장꼭지와 작은년(안연홍) 만큼이나 흥미로운 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기장수를 배신하는 건 바로 그 어미였다고 하니 막순은 귀동(이상윤)에게든 천둥에게든 악역이 될 인물입니다.

찌그러진 갓에 때에 쩔은 두루마기를 입고 투전판에서 양반 대접은 커녕 밥도 못 얻어먹는 전임 현감은 '끝발이 붙게 해달라'며 부처를 찾는가 하면 동학꾼들 주문을 외웁니다. 당시 동학이 천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박하는 주제에 한자성어를 읊어대는 양반네의 꼴은 보면 볼수록 당시의 시대상은 떠올리기 더럽지요.

내수사의 관원은 인정채(조선시대 관원에게 주던 뇌물)를 당당히 요구하다 반발하는 상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포도청 포교(공형진)는 관원과 결탁해 밀거래를 주도하던 그 시절, 이제 돈이라면 아쉽지 않은 상인이고 김진사의 호의까지 입고 있는 천둥은 이제 함께 '뜯어먹는 자'의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런 천둥이 의적으로 거듭나려면 앞으로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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