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더러운 세상

Shain 2011. 4. 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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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것같은 희한한 일이지만 이상한 반점이 유전되는 경우가 없잖아 있다고 합니다. 꼭 붉은점같은 것이 아니라도 개구리 발가락이나 발톱이 2개인 새끼 발가락 등 부모가 자식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들이 생기곤 한답니다. 그러나 귀동(이상윤)을 전적으로 유모의 손에 맡겨 키운 아버지 김진사(최종환)은 아들이 나와 참 다르다고는 느껴도 그 아이가 남의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천둥(천정명)이 엎드릴 때 보였던 선명한 붉은점, 유모 막순(윤유선)이 거지 움막을 떠날 때 버리고 왔던 아기가 천둥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는 김진사는 아이를 왜 바꿔치기 했냐고 막순을 추궁합니다. 태어나자 마자 어미를 잃어 가엽게 여겼던 아들, 아버지는 자신의 친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해 거지패에서 자라게 내버려두고 도둑 취급할 뻔 했고 아들은 아버지를 스승의 원수라며 칼을 겨누기도 했습니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출생의 비밀을 안고 아버지는 후회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어찌 가까이 있는 아들을 못 알아봤을까 자책하기도 할 것이고 문중의 어른들에게 아이를 바꾸자 하기도 난감할 것입니다. 이제는 이씨 종가의 유일한 아들이 된 천둥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친아들처럼 길러운 귀동과 천둥의 충격은 어떻게 해야하나 괴로워할 것입니다. 더이상 막순을 죽인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귀한 집 아들로 태어나 김진사처럼 천민들의 힘든 삶을 모르고 자랐을 수도 있던 천둥, 자신의 은수저를 귀동에게 빼앗긴 천둥은 길에서 다친 왕두령패의 수하들을 돕다 공포교(공형진)와 마주치게 됩니다. 포도부장과 종사관에게 강포수(권오중)의 얼굴을 아는 민두령(송경철)의 부하를 데려가려던 공포교는 천둥을 추궁하다 그에게 돈을 뜯어내려 도둑놈으로 몰아 가둬버립니다. 의적들도 도둑이라 비난했는데 다친 사람을 도와준 천둥을 도둑으로 몰다니 웃기는 세상입니다.



천민으로 자라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들

드라마에서 자주 활용하는 뻔하디 뻔한 출생의 비밀이지만 이 드라마 '짝패'에서 이용되는 출생의 비밀은 주인공 천둥이 천민들의 세상과 양반들의 세상을 모두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유전자를 가진 천둥은 어린 시절부터 글읽기를 좋아했습니다. 단정한 얼굴과 온순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밥을 동냥할 때마다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사회에서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전부가 아니란 걸 온몸으로 깨닫게 됩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양반들은 태생적 한계가 선명하게 눈에 보입니다. 이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괴로워하는 귀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속물처럼 돈과 신분을 중요시 여기며 친분의 기준으로 삼는 동녀(한지혜)는 타고난 핏줄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양반가 규수이고 평소에는 어질고 인정많은 김진사는 성초시(강신일)와 '개혁'을 해야하느냐를 두고 대립한 골수 양반입니다. 안동김씨들의 돈과 지위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붓들아범(임대호)을 비롯한 천민들의 사정을 듣고 현감(김명수)에게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던 귀동은 포교가 되어 썩은 세상을 바꿔보겠노라 마음 먹었지만 그가 하는 '올바른' 일들은 호조참판이 된 아버지를 믿고 벌이는 객기로 평가받을 뿐입니다. 다른 현감들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 한몫 벌어보려던 현감은 더욱 말할 것 없습니다. 이제서야 비첩 삼월(이지수)을 두고 깨닫는게 있는 듯 하지만 못난 노름꾼에 불과합니다.

공포교에 의해 도둑으로 몰린 천둥과 공포교에게 분노하는 귀동

자신이 포도청 포교라는 이유로 공포교는 상인인 천둥을 마구 잡아다 두들겨 패고 옥에 가두며 포졸은 매질을 약하게 해주겠다고 헐장금(歇杖金)과 차사례(茶事禮)를 요구합니다. 옥에 들어갔더니 같이 잡혀온 천민들은 포졸들과 똑같은 질서로 죄인들을 서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양반네들에게 당한 것도 지긋지긋할텐데 그 악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으니 숨이 막히고 갑갑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둥과 귀동이 살고 있는 조선 후기의 아슬아슬한 상황, 포교들은 민란의 수괴인 강포수를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지만 당시 그들이 민란을 진압하고 다스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부분엔 긍정적인 대답을 하실 분들이 그닥 없을 것입니다. 일단 법과 제도를 존중하고 순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도 억울하게 백골징포를 당할 수 있고 도둑으로 몰려 옥에 갖힐 수 있던 그런 시절, 양반으로 살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그런 일들입니다.

젊은 천둥은 민란을 선동한 강포수를 비난하며 사람들을 죽게 하지 말라 했었습니다.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시기, 아직은 세상의 이치가 올바르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었던 그 젊은 시기에는 무리하게 그 이치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착한 시기'를 지나면 세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 부패한 세상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시청자들은 천둥에게 그 반대의 길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자기가 당한 일을 남에게 저지르는 막순

가장 안쓰러우면서도 기가 막혔던 장면은 자신 역시 곳간에 갖혀 마님에게 학대를 당했던 기억이 있는 막순이 덴년을 신방에 가두고 열쇠를 채우는 장면입니다. 주인 어른이 원하는대로 비첩이 되었단 이유로 얻어맞고 불로 지져지고 갇혀서 용변도 제대로 못 보았던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도 삼천냥이나 주고 산 여종이 도망가는 꼴은 못 보겠답니다. 덴년은 그런 상황에도 순응하고 자신은 밥도 많이 안 먹는다며 늙은 신랑을 보고도 허튼 소리 한번 안하고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모든 악행의 근원이 된 막순은 참으로 가여운 인생입니다. 자신이 짓밟혀 산 세월, 그 설움을 물려주지 않으려 아들을 바꿔치기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나쁜 남자이지만 양반인 조선달(정찬)을 기둥서방으로 두는가 하면 한재산 떼어먹겠단 속셈으로 천둥을 친아들이라 하고 짐승같은 이참봉에게 끌고 갑니다. 막순은 덴년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이 있을 만도 한데 자기가 당한 일을 남에게 그대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자신들 역시 약자이면서 다른 약자를 짓밟는 사람들

고생하고 자란 천둥더러 기특하다 하고 바르다 하는 양반네들의 그 점잖은 행실과 여유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들의 노비들을 밟고 일어선 신분제의 특혜를 누렸음이고 나라를 부유하게 해야하는 책임에 게을렀던 까닭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짓밟힌 약자들은 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어 또다른 약자에게 같은 짓을 저지르는 이 더러운 구조, 어디서 많이 본 것같지 않습니까?

다행스럽다면 다행스러운 것은 작가가 평범한 그들의 모습을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못나디 못난 전임현감도 도둑질하는 장꼭지(이문식)도 아직까지 의적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천둥도 원수를 갚으려 했지만 마음이 약했던 동녀도 바보처럼 막순만 바라보며 인생을 허비하는 쇠돌까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모든 걸 알아버린 김진사, 쇠돌이 막순의 위기를 알고 김진사를 해꼬지하는 것은 아닌지 이대로 비밀을 감추고 살 것인지 다음주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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