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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인정의 불행 원인은 캔디 컴플렉스

Shain 2011. 5. 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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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어갑니다. 국내 최고의 '로열패밀리'들도 그들 만의 고통과 속사정이 있고 평범하게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이야기는 그 어느 것 하나도 단순하거나 평범하지 않습니다. 남들에 비해 고통을 적게 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조차 생전 처음 겪어보는 힘든 경험 때문에 '면역'이 되어 있지 않아 더욱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49일' 속의 젊은 주인공들에게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 만의 고민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송이경(이요원)에게 빙의된 신지현(남규리)을 알아내기 위해 퇴마사까지 부른 강민호(배수빈)를 보니 지현이 빙의된 이경을 사랑하면서도 악착같이 지현네 재산을 차지하겠다고 기쓰는 민호가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민호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신인정(서지혜)의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한강(조현재)과 신지현, 그리고 서우(배그린)는 그들을 당당히 비난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을 '당연히' 막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 앞에 남은 건 비난 뿐이거든요.

출연 중인 '서지혜'는 드라마 '49일'의 결말에 반전이 있을 거란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서지혜를 중심으로 바라본 반전이라면, 지금으로써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주인공 신지현을 살려준 눈물이 '의외의 인물'이 흘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신지현의 가족을 망하게 만들겠다는 그녀의 원한, 강민호의 독기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충분히 선명하게(등장인물들 중에서는 가장 자기 변명이 적었던 캐릭터가 두 사람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까닭에 약간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일말의 동정이 가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합니다.

불우한 과거를 가진 캐릭터, 혹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주인공이 밝고 아름답게 세상사를 헤쳐간다는 내용의 드라마. 재벌집 아들과 결혼한다는 '신데렐라 컴플렉스'를 양산하는 것도 드라마지만 소위 '캔디 컴플렉스'라고 부를 수 있는 밝고 명랑하고 어떤 역경에도 우울해지지 않는 '캔디'들을 탄생시키는 것도 드라마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가 예전엔 통했지만 요즘은 그런식으로 살다간 정신병 걸리기 딱 알맞은 시대인 듯한데 희한하게도 드라마 속에서는 그런 '캔디'를 더욱 편하게 생각합니다. 밝은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겠죠.



망가진 '캔디'들의 슬픔을 모르고 사는 신지현

첫회에 신지현이 등장했을 때 저 역시 서지혜의 짜증스런 마음을 일부 이해한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의 결혼식, 약혼식 준비로 바쁜 부잣집 딸은 자신의 스케줄이나 결혼식 일정을 혼자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칠칠맞고 꼼꼼하지 못했는데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민폐를 끼치면서도 웃고 떠들고 친구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웨딩드레스를 너희들, 특히 신인정이 입으라 이야기할 때는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똑똑하고 야무진 자신의 친구가 가난하다고 그 이야길 한 건 아니겠지만 그녀의 몸엔 무의식중에 배려가 빠져 있습니다.

그게 지현의 죄냐고 묻는다면 철학적으론 죄가 맞다고 할 사람이 있을테고(모르고 저지른 죄도 죄라는 입장) 무지로 저지른 일은 죄가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지현은 '착해서' 남들의 가난함을 알아보는 눈은 있지만 그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한강과 자신 앞에 나타나 타로카드 점을 보던 송이경과 송이수(정일우), 헤어진 소매단과 오천원짜리 한장도 벌벌 떨면서 내놓는 모습을 보며 둘이 어려운 처지란 것을 한눈에 알아보지만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는게 신지현입니다.


송이수와 송이경은 고아로 자랐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항상 노력하고 서로를 사랑해주던 멋진 '캔디'들이었습니다. 매일 잠이 모자랄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대고 도시락을 싸서 서로에게 먹여주는 이 따뜻한 두 사람은 극한의 고통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는 중에 이수는 죽고, 이경은 모든 인생을 버린 듯 캔디처럼 살기 보다 망가진 인형처럼 살게 됩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그런 초인적인 일 따위는 할 수 없는 송이경이 된 것입니다.

강민호를 만나서 자신이 부잣집딸이란 거짓말을 하기 전까지 신인정 역시 '밝은 모습'은 아니라도 늘 노력하는 캔디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냐 늘 귀가 시간이 늦었고 장학금 타기 위해 공부하는 그녀는 사치를 부릴 여유도 연애를 꿈꿔볼 시간도 없었는데 '돈문제'를 의논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다 괴한들에게 납치까지 당합니다. 늘 힘겹게 사는 그녀에게 세상은 절대 넉넉하지도 않고 인정많은 곳도 아닙니다. 신지현의 엄마(유지인)는 더부살이하는 자신의 처지를 잊지않도록 틈틈이 각인시켜 줍니다.

아직까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다는 점 이외엔 그닥 밝혀진 적 없는 강민호의 인생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처지의 그가 미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최고의 인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했을까요. 치매에 걸려 종종 과거의 기억을 되돌이켜 보곤 하는 민호의 엄마, 거친 시장 바닥의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어머니를 보며 강민호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고생하며 살아본 적 없는 지현에게는 사랑한단 감정을 느껴본 적 없지만 치열한 삶을 살아본 흔적이 있는 송이경이나 신인정에게 사랑을 느낀 이유, 어쩌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인정과 민호에게는 부모님 문제로 갈등하는 부잣집 아이 한강이나 친구들에게 옷을 사주는 착한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한 신지현의 고민이 하찮게 여겨졌을 수도 있습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의 투정을 보며 더욱 더 자신의 처지를 비참하게 여기게 되는 마음, 유난히 자신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강민호는 그런 한강 보다 자신이 더욱 여유롭고 튼튼한 정신력을 가졌다는 걸 은연 중에 보여주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속마음을 감췄던 인정과 민호가 어떤 과정으로 나쁜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됐는지는 아직 변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인정과 민호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지현의 엄마는 남의 집에서 학교 다니느냐 눈치보는 인정에게 음침한 구석이 있었다고 쏘아부칩니다. 물론 만화 속 캔디처럼 백작집이든 공작집이든 아무대나 가서도 고집부리고 눈치 안보는 성격도 있겠지만 지현 엄마가 일라이자나 닐도 아닌데 전혀 '배려'도 안해주고 상대방에게 맞춰주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민호와 인정은 스스로 노력해서 삶을 얻어낸 사람들이기에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받기도 싫었을 것이고 '가난한 학생'이란 시선에 시달리기 싫어 더욱 자신들의 외면에 신경쓰고 살았겠지요.

그런 인정을 도와주겠다며 자신이 새로 사온 명품옷을 입으라고 건내주는 지현이나 시시콜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한강 앞에서 인정은 늘 차분한 척 미소를 띠고 있었을테고 민호는 너그러운 척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속으로는 그런 고민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을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워 당장 내일이 아쉬운 처지의 그들에게 한심한 이야기로 비칠 수도 있는 내용이었을테니까요. 결국 '캔디'가 되기 위해 늘 따뜻하게 보이려 노력한 것들이 오히려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 물론 그런 처지에서 그런 고민을 하고 좌절하는 모든 사람들이 남의 회사와 돈을 빼앗으려 음모를 꾸미는 건 아닙니다. 분명 두 사람은 친구를 배신한 도의적인 범죄, 계약금을 빼돌린 법률적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49일 여행에서 돌아온 신지현이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두 사람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약간의 측은지심이 들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과오는 자신이 책임지는, 그런 결말이 되어야 두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이 지켜지는 게 아닐지, 애처롭게 강민호의 뒤만 쫓는 신인정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민호가 죄값을 받고 감옥에 가거나 죽음을 맞게 될 지, 한강과 신지현의 사랑이 이루어질 지 그 부분은 뭐 예상 밖의 일이 되겠지만 한강과 지현, 인정, 민호, 이수, 이경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린 사람들입니다. 굳이 한 쪽을 악의 축으로 몰아 비난하고 싶지 않은 기분. 지현이나 한강 보다는 오히려 나머지 네 캐릭터에게 관심이 가기도 합니다. 이수나 이경같은 죽음까지 넘나드는 순정파들에게 행복한 결말이 되었으면 싶은 기분이랄까. 뭐 묘한 느낌이 드는 캐릭터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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