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의자왕은 632년 무왕 재왕 시절 태자가 되었고 그 때의 나이가 30대에서 40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상당히 늦게 태자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 선덕여왕은 같은 해에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 무열왕 김춘추가 차례로 왕위에 오를 동안 백제의 왕은 계속 의자왕이었습니다. 자식이 여럿이긴 했지만 의자왕에겐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 즉 태자가 확실히 있었던 상황입니다. 반면 후사가 없었던 선덕여왕에게는 조카 김춘추가 잠정적 후계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모 선덕여왕을 만나는가 했더니 어머니의 꿈을 꾸게 된 의자
다음으로 후계자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영웅을 가려내고 경계하는 법입니다. 왕들은 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권력을 한결같이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고 했던가. 제왕들은 친아들인 왕자의 권력 조차 위험하게 생각하는 법인데 하물며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곱게 지켜볼 리가 없습니다.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역모의 의도는 없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백성들이 왕 보다 더 찬양하는 영웅들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백제 태자 의자 계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임진왜란에 전공을 세운 의병장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후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멀리 북쪽까지 피난갔던 임금 선조는 정말 충신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을까. 그 진실은 둘째치더라도 임금이라는 자가 공을 높이 평가해주기는 커녕 사소한 죄를 추궁하려 했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나약한 인간 선조에게 제일 두려웠던 것은 백성들이 자신은 조롱하고 이순신은 추앙한다는 진실이었습니다. 그 두려움 앞에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장들의 공을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어제 박원순이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최종 후보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음에도 1위를 할 수 있었던 그 저력을 '안철수 신드룸'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존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깨끗하고 유능한 이미지의 신인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것이고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들이 더욱 호응을 받았다는 분석인 것이죠. 아마 기존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에게는 이런 안철수를 내심 경계하는 마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무왕은 계백의 본심을 의심하고 죄를 묻고 싶어 한다
서곡성의 신라군들이 그동안 백제의 땅을 침략해 거열성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없었고 또 그곳 귀족의 횡포가 심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계백은 군장으로서 그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했고 백제의 국경을 확장했지만 백제 조정은 그 공을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신라에 사절단으로 간 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 또 군령을 어긴 죄를 묻겠다고 합니다. 무왕은 계백에게 다른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 하며 신라에서 평화동맹을 맺어 공을 세울 수 있었던 의자의 전공을 계백이 가로챈 것이라 말합니다.
계백에 대한 질투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은고의 연정
문제는 의자 역시 타고난 계백의 영웅성을 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늘 자신이 아껴주고 구해주어야할 존재처럼 여겼던 무진의 아들, 의동생이지만 계백 옆에는 흥수(김유석), 성충(전노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계백의 진정성을 따르고 믿는 무리들은 의자에게는 주군이라 하지만 계백을 더욱 믿는 것도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와 무진의 목숨을 밟고 일어선 의자에게 계백은 빛과 같은 존재처럼 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엇 보다 계백은 의자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은고(송지효)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반응형
'한국 드라마 이야기 > 계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백, 용의 비늘을 건드리면 목숨을 잃는다 (6) | 2011.10.12 |
---|---|
계백, 의자의 비열한 계책으로 은고는 망국의 요부가 되나? (3) | 2011.10.11 |
계백, 이순신 조차 피해갈 수 없었던 괘씸죄의 덫 (3) | 2011.10.04 |
계백, 딸의 죽음 때문에 백제를 멸망시키는 김춘추 (2) | 2011.09.28 |
계백, 행회의 영묘는 왜 은고를 위해 자결했을까 (1) | 2011.09.27 |
계백, 역모죄에도 교기와 사택황후가 살아난 이유? (3) | 2011.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