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이순신 조차 피해갈 수 없었던 괘씸죄의 덫

Shain 2011. 10. 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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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과 백제의 의자, 이모와 조카로 설정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나 했더니 결국 의자(조재현)는 선덕여왕을 만나지 못하고 백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실제 두 사람이 조카와 이모 사이라 쳐도 시기적으로 백제와 신라가 무력 충돌을 자주 하던 때이니 평화로운 접견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제작진으로서도 의자왕에 필적할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을 등장시킨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요. 결국 의자의 신라 방문은 백제의 숙적 김춘추(이동규)를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모양입니다.

의자왕은 632년 무왕 재왕 시절 태자가 되었고 그 때의 나이가 30대에서 40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상당히 늦게 태자 자리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데 선덕여왕은 같은 해에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 무열왕 김춘추가 차례로 왕위에 오를 동안 백제의 왕은 계속 의자왕이었습니다. 자식이 여럿이긴 했지만 의자왕에겐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 즉 태자가 확실히 있었던 상황입니다. 반면 후사가 없었던 선덕여왕에게는 조카 김춘추가 잠정적 후계자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모 선덕여왕을 만나는가 했더니 어머니의 꿈을 꾸게 된 의자

한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탄탄히 유지해야할 책임도 있지만 권력을 이양받을 후계자도 확고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왕정국가에서 왕권이 존속된다는 건 국가의 흥망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후계자의 권력이 왕의 권력을 위협한다거나 대립할 경우에는 오히려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후계자들은 제왕의 철학을 전수받기 이전에 납작엎드리는 법부터 배우는 법입니다.

다음으로 후계자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영웅을 가려내고 경계하는 법입니다. 왕들은 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권력을 한결같이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고 했던가. 제왕들은 친아들인 왕자의 권력 조차 위험하게 생각하는 법인데 하물며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곱게 지켜볼 리가 없습니다. 그의 충성심을 시험하고 역모의 의도는 없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백성들이 왕 보다 더 찬양하는 영웅들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백제 태자 의자 계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임진왜란에 전공을 세운 의병장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후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멀리 북쪽까지 피난갔던 임금 선조는 정말 충신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을까. 그 진실은 둘째치더라도 임금이라는 자가 공을 높이 평가해주기는 커녕 사소한 죄를 추궁하려 했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나약한 인간 선조에게 제일 두려웠던 것은 백성들이 자신은 조롱하고 이순신은 추앙한다는 진실이었습니다. 그 두려움 앞에 선조는 이순신과 의병장들의 공을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어제 박원순이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최종 후보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음에도 1위를 할 수 있었던 그 저력을 '안철수 신드룸'이라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존 정치권에서 볼 수 없었던 깨끗하고 유능한 이미지의 신인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것이고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들이 더욱 호응을 받았다는 분석인 것이죠. 아마 기존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에게는 이런 안철수를 내심 경계하는 마음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무왕은 계백의 본심을 의심하고 죄를 묻고 싶어 한다

위정자들은 인재를 등용해 국정을 운영할 책임이 있지만 그 인재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을 경우 본능적으로 자신의 권력부터 사수하려 합니다. 드라마 '계백'에서 무왕(최종환)이 처음 계백(이서진)을 경계한 이유는 계백이 의자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이유, 즉 아버지 무진(차인표)을 죽이는 의자를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에서 떨어진 멀리 거열성 군장으로 보내버린 계백은 오히려 스무명 남짓한 군사로 천명이 넘는 신라 군사를 격파하고 신라가 점령했던 서곡성을 차지하고 돌아왔습니다. 칭송받을 수 밖에 없는 남다른 능력을 보인 것입니다.

서곡성의 신라군들이 그동안 백제의 땅을 침략해 거열성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없었고 또 그곳 귀족의 횡포가 심해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계백은 군장으로서 그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했고 백제의 국경을 확장했지만 백제 조정은 그 공을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신라에 사절단으로 간 의자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죄, 또 군령을 어긴 죄를 묻겠다고 합니다. 무왕은 계백에게 다른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 하며 신라에서 평화동맹을 맺어 공을 세울 수 있었던 의자의 전공을 계백이 가로챈 것이라 말합니다.

계백에 대한 질투를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은고의 연정

말하자면 무왕의 입장에서 계백의 죄는 '괘씸죄'라 할 수 있는데 왕인 자신 보다 계백의 이름을 더 크게 환호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심기가 불편하지 않을 제왕은 물론 없을 것입니다. 그가 세운 전공이 곧 나라의 이익이고 왕의 명예이기는 하지만 딴 마음을 품고 왕을 몰아내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수도 있습니다. 무왕은 그런 권력자의 생존 법칙을 자신의 후계자 왕자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 간에도 권력을 위해 반목할 수 있는 왕가이다 보니 당연한 문제일 수도 있겠죠.

문제는 의자 역시 타고난 계백의 영웅성을 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늘 자신이 아껴주고 구해주어야할 존재처럼 여겼던 무진의 아들, 의동생이지만 계백 옆에는 흥수(김유석), 성충(전노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계백의 진정성을 따르고 믿는 무리들은 의자에게는 주군이라 하지만 계백을 더욱 믿는 것도 같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와 무진의 목숨을 밟고 일어선 의자에게 계백은 빛과 같은 존재처럼 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무엇 보다 계백은 의자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은고(송지효)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군왕이 될 자가 여인으로 인해 자신의 수하를 질투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은고는 험난한 의자의 인생에서 유일한 안식이 되어주던 존재였습니다. 한 사람의 권력자로서 의자는 은고와 계백을 갈라놓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한편 계백의 의붓형 문근(김현성)은 계백 앞을 떠나 당나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백제의 멸망에 당나라가 깊숙히 관여하고 보니 문근이 당나라군과 함께 돌아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백제의 장군 계백, 그의 정치적 고난이 이제 시작되려나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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