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먹물과 꼴통이 무식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방식

Shain 2012. 1. 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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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뢰하가 조태수 역으로 떡 하니 나타났을 땐 이거 정말 제대로 가는구나 싶더군요. 연예계가 한때 '주먹'들에게 휘둘렸단 소문을 못 들어본 사람들은 없어도 그들이 어떤 식으로 연예 사업에 간섭하는 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무대 공연, 밤무대 출연을 하자면 취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도 힘 깨나 쓰는 사람들이 필요했지만 전설의 정치깡패 '임화수'같은 사람들은 아예 연예인들을 협박, 폭행하며 그 이익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노상택(안길강)이 불러들인 조태수(김뢰하)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입니다.

지난번에서도 몇번 설명했듯 일부 연예인들은 공연 중에도 테러를 당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 부득이하다고 해야할지 자의적이라고 해야할지 '주먹'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극중 강기태(안재욱)와 노상택을 섞어놓은 듯한, 실존하는 '연예계의 대부'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몇 개의 나이트클럽이나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며 일천억원대의 엄청난 재산을 모았지만 90년대초 조폭의 자금줄이란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조태수를 시켜 손미진과 강기태를 협박하려는 노상택.

그는 결국 주류업자 살인 청부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징역형을 구형받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유명 여가수와의 비밀 결혼이 드러나기도 했고 또 조폭들과 연예계의 관계가 드러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예계의 대부'라 불리던 그와 함께 했던 연예인들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대단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주일이나 조용필 역시 그의 프로덕션을 거쳐간 대스타 중 한명이니 연예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할 겁니다.

신정구(성지루) 단장이 강기태에게 들려준 70년대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간첩으로 조작해버리겠다는 방첩대의 압박에 공연을 포기해버린 신정구는 빛나리 쇼단 운영에 대한 의욕 조차 잃고 맙니다. 강기태 집안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강기태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 권력이 그 '희망찬 시대'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금지곡 처분 당한 노래를 아무리 목청껏 불러도 억울하고 갑갑한 심정을 다 풀어낼 수 없던 그런 시대, 꼴통이든 먹물이든 그 시대의 무거움을 이겨내긴 너무도 벅차 보입니다.



장철환에게 반기를 든 수혁, 깡패에 맞서는 기태

중학교 의무교육이 2002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의무교육이 정착된 건 80년대입니다. 그나마 70년대 후반부터는 고등학교 진학률이 꽤 높아졌지만 그 이전까지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극중 조명국(이종원)도 자신은 국민학교만 나왔다며 대학까지 졸업한 차수혁(이필모)에게 종종 그런 부러움을 드러내곤 하지요. 한자를 잘 모르는 장철환(전광렬)도 가끔 자신이 무식하다며 차수혁을 '먹물'이라 합니다.

'먹물'은 '공부깨나 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고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극중 강명희(신다은)는 대학까지 갔어도 기생집에서 놀기 좋아하던 강기태가 딱히 대학을 다녔다는 말은 없습니다. 차수혁이 월남에서 돌아올 때 반갑게 맞아준 것으로 보아 군대도 다녀왔는지 의문입니다. 당시에는 국민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은 짧게 군복무를 마치게 해주었고 독자인 경우도 면제 대상이었는데 홀어머니와 사는 차수혁은 돈을 모으고 싶어 자원해서 월남에 다녀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이상 채홍사 노릇은 못하겠다며 장철환에게 사표를 낸 차수혁

차수혁은 자신에게 장학금을 주고 군대에서 편한 보직으로 빼준 장철환을 따라 권력을 쫓습니다. 장철환은 종종 그에게 '생각이 너무 많다'며 불만을 드러냅니다. 군인 출신 장철환은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 식의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이것은 옳다 저것은 그르다'를 따지기 전에  그 일이 필요하면 반드시 해야하는 무모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딱히 조선시대 유학자처럼 앞뒤 꽉 막힌 성격이 아니라도 장철환의 막가는 행보는 '먹물' 차수혁을 괴롭게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유신 독재의 시대, 그때의 대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두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시위를 통해 저항하거나 모르는 척 묵묵히 학교에 다니거나. 자신 만의 생각을 가진 지성인이기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그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던 시대였습니다. 배운 사람의 책임을 몸소 실천하기엔 나약했고 침묵하기엔 양심이 허락치 않던 그런 시절에 아버지나 다름없던 강만식(전국환)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장철환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차수혁을 끊임없이 괴롭힐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영화를 찍지 않느냐는 중정 김부장의 질문과 손미진의 대답.

권력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꼴통' 강기태는 맨몸으로 시대에 맞섭니다. 그의 작은 힘으로 권력을 뒤엎을 수도 없고 노상택의 압력을 감당할 수도 없겠지만 때로는 송미진(이휘향)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도 만나는 법입니다. 이정혜(남상미)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유채영(손담비)처럼 빛나는 스타도 만나고 자신이 책임져야할 빛나리 쇼단의 홍수봉(홍진영)같은 예인들과 함께 '우리'라는 이름으로 우뚝 선 그는 그 암울한 시대를 향해 주먹을 들기로 합니다. 조태수를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쩌면 중요치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철환이 탐내는 이정혜를 지켜주기 위해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는 차수혁의 선택은 그의 인생에 있어 최악의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장철환은 오히려 이정혜를 차지하겠노라 각오를 다지고 '채홍사 노릇하기 힘들다'는 수혁을 괘씸하게 여깁니다. 중정 김부장(김병기)와 손미진 사장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나나 장철환같은 무식한 놈들이 정권의 실세라는 게 부끄러운 현실이다'는 말처럼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그 시절을 차수혁이 버틸 수 있을까요.

빅토리아에서 조태수와 맞닥뜨린 강기태.

유채영은 유채영대로 기태의 사랑을 받으면서 노상택의 비호를 받는 이정혜를 싫어하게 됩니다. 빛나리 쇼단 단장 강기태는 이제 겨우 장철환을 향해 작은 주먹을 들었을 뿐인데 그의 사랑이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카바레에서 연기하는 안재욱의 춤솜씨가 제법이더군요. 언제 따로 연습이라도 한 건지 궁금하네요. 또 이주일과 나훈아를 반반씩 섞어놓은 듯한 홍수봉 역의 손진영도 유쾌했습니다. '빛과 그림자'는 이런 재미가 솔솔해서 요즘 보는 재미가 배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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