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결혼하면 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 남편

Shain 2012. 4. 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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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0년전만 해도 남자와 여자가 차별받고 자랐단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아무렇게나 대충 지어 불러도 남자아이는 항렬자를 써서 '크게 되라'는 뜻을 담은 거창한 이름을 지어주곤 했습니다. 남자아이에겐 빨래와 설거지를 비롯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지만 여자아이는 당연히 김치도 담그고 밥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며 반강제로 거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외동딸, 외동아들이 많은 시대니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면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김치는 커녕 집청소도 못할 만큼 바쁜 여성들이 다수이고 대부분의 식품을 사서 먹는 가정도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어머니 세대는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를 사먹으면 동네 사람들에게 흉잡힌다고 했답니다. 요샌 아무리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시켜도 고추장 담가먹지 않는다고 야단치진 않으니 그나마 세상이 좀 나아진 것인가요. 그럼에도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지 않거나 빵을 준다는 문제로 한소리 듣는 며느리들이 있다는 걸 보면 여전하다 싶기도 합니다. 맞벌이 부부의 아침 식사 준비를 어느 한 쪽에게만 맡긴다는 건 합리적이지 못한 주문입니다. 솔직히 시집살이의 본질은 '며느리의 도리'라기 보다 왜 내 스타일대로 하지 않느냐는 못마땅함인 경우가 많죠.

윤희가 시누이들에게 통닭을 빼앗기자 대책을 마련한 방귀남.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묘사되는 차윤희(김남주)의 시집살이는 묘하게 현실을 잘 짚어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 하는 묘한 재미가 있습니다. 잃어버린지 30년이 지나 이제 남이나 다름없는 아들 방귀남(유준상). 하루도 아들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그리워했으니 아들에 대한 애틋함은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생각도 살아온 방식도 다른 그 아들의 '아내'를 길들이려 하는 건 영 보기 껄끄럽습니다. 남과 다름없는 사이인데도 같이 목욕탕가자고 할 만큼 스스럼없이 행동할 수 있는 건 시댁 어른들의 특권인 걸까요.

노련한 드라마 PD 차윤희는 막장 시누이 노릇을 하려드는 말숙(오연서)의 코를 잡아 비트는 등 속시원하게 시집살이에 대처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아무리 시누이가 나쁜 짓을 해도 그런식으로 '화끈하게' 대응하면 며느리가 더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 남편과 시누이는 피를 나눈 가족이고 나는 남편과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올 때도 있다고 합니다. 방귀남의 말대로 며느리는 원정경기 온 선수고 시누이들은 홈그라운드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이니 처음부터 패널티가 있는 게임에서 시비가 가려지겠느냐 뭐 이런 말입니다.



결혼한 자식은 친한 이웃일 뿐이다

시집살이를 비웃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입니다. 얼핏 보면 시어머니나 시누, 며느리 모두가 여자이기에 왜 그들끼리 싸우는지 이해가 안간다 싶겠지만 지난주 제사상 차리는 장면에서도 보았듯 가족 간에는 갈등할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얼굴도 본적 없는 할아버지의 제사임에도 할머니 막례(강부자)와 집안 여자들은 하나같이 제사 음식을 차윤희가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남편의 가족이니까 제사를 지내야겠단 생각은 들어도 애틋한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며느리들은 누구는 일을 하네 안하네 신경전을 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제사를 지내야하느냐 마느냐 하는 부분은 논외로 치더라도 많은 현대인들이 제사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사라는 집안행사를 짐스러워하는 게 며느리들이 이기적인 탓이라 말하지만 남편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아내가 하루종일 전부치고 밤늦게까지 제사상을 차리며 나중에는 그 많은 가족의 설거지까지 해야하는 힘겨움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만 이런 고생을 하는게 아닌가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눈치보는 윤희를 계속해서 격려하는 방귀남.

방귀남은 비합리적인 이 상황을 직접 해결하고 나섭니다. 아내 윤희가 회사일 때문에 늦어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걱정하자 팔을걷어부치고 손수 전을 부치고 제사 음식을 마련합니다. 제사상에선 형식적인 큰절로 그치는게 아니라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편지까지 낭독합니다. 왜 내 할아버지인데 며느리가 음식을 마련해야하느냔 당연한 질문은 보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만듭니다. 귀남은 윤희를  자연스럽게 가족 안으로 끌어들이기 보다 의무를 강요해 압박하던 가족들에게 제사의 본질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고 부모와 함께 사는 부부도 많지만 결혼은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부모로부터 '분가(分家)'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가정에 대한 결정권을 부부가 갖게 된다는 뜻이며 다른 무엇 보다 자신의 가정을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아들 부부도 결혼했으면 부모와 독립적인 판단을 할 줄 알아야하듯 부모 역시 자녀가 이젠 성숙한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이 드라마 속 상황 즉 잃어버린 아들이 이웃집 남자가 되어 나타난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이 아들은 처음부터 남이었기에 그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굳이 편을 나누자면 와이프편이란 말로 시누이를 제압한 방귀남.

이웃끼리 아무리 친해도 깊은 속이야기나 아내에 대한 험담까지 나누는 건 예의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가족들끼리는 종종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생활'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해지려면 목욕탕에 함께 가야한다느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느니 또는 식생활이나 생활 습관까지 간섭하며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며느리'가 그냥 앞집에 사는 이웃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텐데 시어머니는 종종 결혼한 아들은 며느리 편이란 사실을 잊는가 봅니다.

여우같은 며느리 차윤희는 가끔은 능글능글하게 가끔은 새초롬하게 이 시집살이를 받아들이며 소신껏 행동합니다. 그런 윤희가 시누이 코를 잡아 비틀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건 남편의 사랑과 전폭적인 지지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귀남은 시댁 때문에 눈치보며 거짓말까지 하는 윤희에게 계속 신경을 씁니다. 일숙(양정아), 이숙(조윤희), 말숙을 모아놓고 와이프가 사람들 눈치보고 주눅드는 건 싫다고 하는 방귀남. 특히 못된 짓만 골라하는 말숙에게 '까불지마'라고 일침을 날리는 방귀남 덕분에 윤희가 더욱 시댁에 잘할 수 있는 것이겠죠.

엄청애, 아들은 며느리 편이란 걸 받아들여야할 지도.

시집살이란게 한번 뱁새눈을 뜨고 보기 시작하면 그냥 하는 말도 달리 들리는 법입니다. 세탁기 고장났다며 며느리에게 탈수를 부탁하는 시어머니, 엄청애는 그 핑계로 한번 더 아들집에 오려는 것이겠지만 윤희는 그 말이 혹시 세탁기 새로 사달란 뜻이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차윤희의 친정어머니 차만희(김영란)도 휴일에 아들집에 와 있다는 사돈 엄청애를 삐딱하게 생각합니다. 윤희가 한번 시댁 식구들에게 밉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영원히 시댁과 며느리는 가까워지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방귀남이 시댁과 거리를 잘 잡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윤희가 더욱 엄청애에게 잘 할 수 있는 셈입니다.

극중 며느리 윤희의 태도 중 가장 잘 하는 것은 아무리 불쾌해도 시댁과의 관계를 단절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며느리의 이런 '자세'를 전제로 시어머니 쪽에서는 차라리 결혼한 순간부터 자식은 가끔 놀러오는, 친한 이웃집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갈등을 줄이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굳이 편을 가르자면 아내 편'이라는 방귀남의 말대로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 고부 간이 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수 있을테고 그렇게 차츰차츰 쌓인 정이 오히려 더 단단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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