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300'과 비교할만한 고려의 결사항쟁 그러나 최우는?

Shain 2012. 4. 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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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위기가 닥칠 때 마다 백성들이 저항의 중심이 되어 나라를 지켜낸, 그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침략이나 전쟁에서도 영웅이 된 민초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점은 왕이나 권력자가 아닌 평범한 국민들이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병들, 몽고 침입에 맞서 끝까지 항쟁한 삼별초나 승병 등 역사에 적히지 않은 '작은 영웅'들이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반면 권력층에서는 우왕좌왕 자신의 한 몸을 지키기에 급급해 침략에 대비하지 못하거나 비겁하게 변절을 하는, 지금 생각해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습니다.

지난주 드라마 '무신(武神)'에서 묘사된 철주성 전투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끝까지 싸우라 격려하다 죽어간 문대(전노민), 무장다운 최후를 맞은 이원정(김주영)과 이희적(최덕문), 그리고 함께 불에 타죽은 그들의 가족들은 처절한 고려인들의 항쟁을 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런 연출이 영화 '300(2007)'과 유사하다는 평을 했다고 합니다만 비장함 때문에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철주성 전투는 고려사에 적힌 내용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 철주성에 없었을 가능성이 높은 김준(김주혁)이 개입했다는 점, 이희적을 비롯한 그들의 대화가 창작이라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놀라운 김경손의 12인 결사대. 몽고군은 결국 귀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한다.

개경에서는 한달이 넘도록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습니다. 지원군을 바랄 수 없는 장수들이 소수의 병력으로 수만의 대군에 맞선다. 얼핏 '300'이라는 영화가 떠오를만도 하지만 사서를 읽어 보면 당시 북방을 막고 있던 군인들 대다수가 자신들이 결사대라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에 묘사된 내용이 더욱 처절합니다. 몽고군들은 몇날 몇일 동안 맹공을 퍼붓고 성을 기어올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지키는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전쟁에 이골이 난 살리타이(이동신)의 말대로 '이런 놈들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만했다는 것입니다.

몽고는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민족으로 넓은 평야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선 최강자입니다. 그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웬만한 부대는 힘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거기다 잔인하고 포악하게 적진을 도륙하기 때문에 침략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우리 나라의 북방은 거란을 비롯한 잦은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호전적인 기질이 강했습니다. 고구려가 오랫동안 북방을 지켜온 것은 그들의 호국 기질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성을 중심으로 뭉쳐 끝까지 사수하는 그들의 결사항쟁. 말을 타고 달릴 수 없는 몽고가 자존심이 상했을 만도 합니다.



몽골의 자존심을 건드린 귀주성 전투, 초적 보다 못한 대집성

극중 대집성(노영국)이 자신의 군대를 떠나는 김윤후(박해수), 홍지(박동빈)에게 '초적'이라 부르는 걸 들으셨을 것입니다. '초적(草賊)'이란 '초야의 적'이란 뜻으로 '난민(亂民)'을 말합니다. 지배층의 수탈에 저항하는 농민, 천민 등의 반란군으로 신라시대 때부터 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무신 정권 이후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곤 했는데 몽고의 침입 이후에는 그들이 외세에 저항하는 성격을 띠게 됩니다. 최우를 비롯한 개경의 집권층이 백성들을 뒤로 하고 강제로 강화도 천도를 강행하거나 또 다시 개경으로 돌아올 때 그들 무신 정권을 반대하는 항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무신' 첫회에서 승병들이 거란군을 상대로 배고픔을 참으며 전쟁을 벌이는 내용이 묘사되었으니 그들이 국난이 있을 때마다 적극 나섰던 사람들이라는 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을 참지 못해 국가에 반기를 드는 그들이 직접 칼을 들고 몽고군에 맞선 사람들입니다. 제 한몸 살기 바쁜 장군들이 입으로만 충성을 외칠 때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바로 그 당사자들이니 패전을 당한 멍청한 장군에게 비난을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김윤후와 대집성의 대화는 드라마 속 상황이지만 당시 무신집권부의 문제점을 정확히 꼬집은 장면이랄 수 있습니다.

김윤후에게 초적이라 부르는 대집성. 그럴 자격이나 있나.

상장군 대집성은 자신들을 구해준 승병을 '초적'이라 부르며 얕잡아 봐도 역사에 기록된 고려 백성들을 생각하면 대집성이야 말로 역사에 오명을 남긴 부끄러운 인물입니다. 극중에서 묘사된대로 1231년 8월 몽고군이 침입했지만 개경의 지원군은 9월이 넘도록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최우(정보석)의 사위이자 교정별감인 김약선(이주현)이 박송비(김영필) 장군에게 탄식하는대로 권력자는 원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인지 어리석은 대집성이 사위 오씨를 데리고 거들먹거리고 중앙군의 편제가 엉성해 한달이 넘도록 군대를 추스리지 못하는 모습에도 최우는 과감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탕꾸(윤동환)의 군대는 이미 개경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늦게 개경을 출발한 지원군은 북방으로 향하다 9월 말 몽고군의 기습으로 도륙을 당합니다. 당시 이자성(백인철)은 공식적인 상장군이었으나 정치적으로 우세인 대집성을 누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대집성은 평지 전투에 유리한 몽고군을 상대로 수성전을 펼치지 않고 군사들에게 밖으로 나가 싸우라 재촉하는 등 대참패의 원인을 제공합니다. 송길유(정호빈)나 최양백(박상민)이 그런 대집성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전공을 세우는 듯 묘사되지만 당시의 기록을 읽어보면 최우가 자신을 보호하는 군대를 북방으로 보냈는지 조차 의문입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장군들의 모습. 상장군 대집성과 정주분견장군 김경손.

대집성은 극중 등장하는 주숙(정선일)의 장인으로 당시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위 오씨가 전쟁중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1차 여몽전쟁(1931년 8월) 이후 과부가 된 딸을 최우의 아내로 밀어넣습니다. 사위는 죽었어도 딸이 대부인이 되는 덕에 대집성은 패전의 책임도 면하고 더욱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집권자로서 최우가 무시무시한 몽고군을 상대로 허리를 굽히고 항복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인지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의 항쟁을 독려하는 것이 고려를 위한 길인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최우에게 항몽정신이 있었다면 부패한 권력자부터 처단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편 박서장군(극중 문태원)와 김경손(김철기), 최춘명(임종윤)을 비롯한 북방의 장수들은 끝까지 몽고군의 애를 먹입니다. 함신진과 철주성을 거쳐 귀주까지 온 살리타이의 몽고군은 귀주성에서 발목이 묶입니다. 김경손의 12인 결사대는 몽고군을 기습하여 대혼란을 일으켰고 김경손은 화살을 맞은 몸으로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전투 현장을 지휘합니다. 1231년 9월부터 이듬해 1932년 1월까지 4개월 동안 공격했어도 귀주성의 사람들은 끄덕않습니다. 귀주성을 지켜낸 박서는 고려와 몽고 간의 강화가 진행되어 더이상 버틸 수 없자 1월에 물러납니다. 그들의 결사항쟁이 강화조건에 유리하게 작용했음은 물론입니다.

눈먼 호랑이가 되어가는 최우. 김약선은 고민한다.

백성들의 저항은 대단했습니다. 몽고는 광주성도 정복하지 못했고 충주성에서는 지휘관이나 장수도 없이 노군과 잡역 별초들이 자체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 한 몸 사리는 권력자들만 보면 패전하기 딱 알맞은 전쟁이었는데 백성들이 나라를 지켜낸 것입니다. 자주성의 최춘명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몽고군은 결국 자주성을 보지 못한채 물러가야 했습니다. 대집성은 최춘명을 처형하라 청하고 최우도 그에 동의했으나 몽고의 관리가 최춘명이 충신이라며 만류해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김경손이나 최춘명같은 충신에 대한 대접이 씁쓸하다 못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죠.

극중 대사를 빌자면 몽고의 한 노장수가 '이렇게 끝없는 맹공을 받고도 항복하지 않은 성은 처음이다. 장수가 누구인지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라고 했던 김경손은 결국 최항(만전, 백도빈)에게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9차례에 거친 침략 동안 수많은 백성들이 피흘리며 죽어간 여몽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으며 무엇을 위한 무신정권이었을까요. 고종(이승효)은 명색이 황제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안타까운 역사의 한장면입니다.

이것은 단지 여몽전쟁의 시작일 뿐이다.

광활한 아시아를 점령한 몽고군의 자존심을 다치게 한 백성들. 초적 보다 못한 한심한 대집성.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우는 눈먼 호랑이가 되어 죽어간 아버지 최충헌(주현)의 전철을 밟으려 하는 것일까요. 그런 장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김약선의 눈빛이 너무도 슬퍼 보입니다. 단순히 아내 송이(김규리)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기 때문이 아니라 무신정권의 부조리를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하는 고통이 더욱 큰 것도 같습니다. 여몽전쟁의 혼란 속에서 불거지는 그들의 갈등, 진정한 무인은 누구인가. 고려사의 한장면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재탄생한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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