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TV 드라마에서 완전히 사라진 '네' 발음 어떻게 하나

Shain 2012. 8. 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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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불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곡 '여러분'은 본래 79년 발표된 노래로 서울국제가요제 대상 수상곡입니다. 각종 콘서트 무대에서 윤복희의 솔로곡으로 훨씬 더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함께 가수 활동을 하던 윤복희의 오빠 윤항기가 작곡을 하고 국제가요제에는 두 사람이 듀엣으로 참가를 했습니다. 웅장하고 서사적인 그 노래의 첫 부분은 어지간한 가수가 불러서는 좀처럼 그 느낌이 잘 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이 노래는 어느 수준 이상의 경력있는 가수가 불러야 노래의 진짜 매력이 살아나는 것같더군요.

그 노래의 첫 가사는 이렇습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라는 가사입니다. 윤복희는 상대방을 지칭하는 '네' 발음과 일인칭을 지칭하는 '내'를 구분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발음이라고는 못해도 '네'와 '내' 발음에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죠. 노래가 발표된 것은 79년이고 80년대까지만 해도 '네'발음과 '내' 발음을 정확히 구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인은 발음을 정확히 해도 듣는 사람이 헷갈려 했지만 그래도 두 발음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구요.

1979년 발표된 윤복희의 '여러분'과 2011년 발표된 임재범의 '여러분'


나는 가수다' 앨범을 들어보면 최근에 노래를 부른 임재범은 '네'와 '내' 구분이 윤복희 보다는 선명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약간 웅얼거리듯 불러 더욱 그랬겠지요). 윤복희가 공식프로필상으로 1946년생이고 임재범은 1962년생인데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80, 90년대까지는 그래도 '네'와 '내'는 구분해 발음하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사투리나 개인적인 발음습관 때문에 정확히 발음은 못한다 쳐도 두 단어가 다른 단어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라는 2인칭 대명사에 '가'가 붙은 '네'가 표준어이고 '니'는 바르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추적자'의 배우 손현주와 김상중은 '네'라는 발음 대신 '니'라는 발음을 쓰고 있습니다. '추적자 4회에서 손현주는 아내가 구치소로 찾아와 합의서를 쓰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니 남편! 수정이 아빠! 나만 믿어!'라는 대사를 합니다. 또 강동윤 역의 김상중은 13회에서 혜라(장신영)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돼라 그럼 니가 원하는걸 뭐든지 얻을 수 있을꺼야'라는 대사를 합니다. '네'라는 발음을 하지 않고 '니'라는 발음으로 상대방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에 강기태 역으로 출연한 안재욱도 상대역 이필모에게 '니가'란 표현을 씁니다. 80년대 초에 데뷰한 전광렬 역시 '니 자리'라는 표현처럼 '네' 에 가까운 '니' 발음을 합니다. 이는 사극 '무신'에 출연 중인 김주혁도 마찬가지로 극중 노예 출신 별장 김준 역을 맡은 김주혁은 대사 중에 '네'라는 발음 대신 '니'라는 발음을 자주 사용합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 중인 강부자도 며느리에게 '네 입'이란 표현 대신 '니 입'이란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중견배우들에게는 '니'가 아무래도 일반적인 경우인가 봅니다. 이미 드라마 속에서는 '네' 발음이 과거에 사라진 셈입니다.

발음이 선명한 '추적자'의 두 주연배우도 '니'라는 발음을 쓰고 있다.


반면 올초에 방영된 드라마 '내일이 오면'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하석진은 극중 연인인 은채(서우)와 대화할 때 '네'나 '니'라는 발음을 하지 않고 꾸준히 '너가'라는 표현을 씁니다. 과거에는 '네' 발음과 '내' 발음이 구분가지 않는다고 했었고 한때는 '니'라는 발음이 틀린 것은 알지만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투리인 '니'를 썼다고 하던데 이제는 아예 그 발음 조차 하지 않고 '너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1982년생인 하석진은 김상중이나 손현주 또래보다 무려 스무살이나 어린 배우로 역시 사용하는 단어에 큰 차이가 있나 봅니다.

사실 드라마 속에서는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표현이나 상황이 꽤 많기 때문에 일일이 이런 걸 구분하긴 힘듭니다. 예를 들어 '유령'에 등장하는 젊은 형사 변상우 역의 임지규는 권혁주(곽도원)에게 '팀장님 덕분에'라는 표현을 써야할 곳에 '팀장님 때문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이라는 말이 필요할 때 '완전히 틀린'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 이외에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어머님'이나 '아버님'을 존댓말로 쓰는 드라마들이 많으니 사람들 중에는 '어머님'이 친어머니를 부르는 존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노래 가사 속에서도 7, 80년대 또는 90년대까지도 '네'라는 표현을 쓰는 노래가사가 많았고 일부 가수들은 '네'와 '내' 두 발음을 정확히 구분해서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니가'라는 표현을 기분나쁘다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두 발음을 구분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많았구요. 반면 2000년대 이후 나온 노래들 중에는 '네가' 대신 '너가'라는 가사 또는 '니가'라는 가사를 쓰는 노래들이 상당히 많이 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네'는 문자로만 구분할 뿐 이미 아주 예전에 사라진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며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내일이 오면'의 하석진은 '너가'란 표현을 쓴다. 강부자는 '니 입'이라고 발음한다.


국립국어원 트위터의 공식 입장을 보면 이렇습니다. '네'와 '내' 발음이 같냐는 트위터리언의 질문에 국립국어원은 "‘네’와 ‘내’의 발음은 다릅니다. 현실적으로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음운적으로, ‘ㅔ’는 ‘ㅐ’보다 입을 덜 벌리는 소리입니다."라는 공식 답변을 내어놓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구분하는 걸 애써 교육하지 않아서 발음이 사라진 것이라 주장하고 또다른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발음에 구분하기도 쉽지 않은 소리를 애써 구분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자장면'이 표준어로 지정되어도 '짜장면'으로 쓰는 사람이 더욱 많은 것처럼 이것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TV 드라마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요. 위에서 지적한 대로 드라마는 잘못된 언어습관이나 문화를 은연중에 사회에 퍼트리곤 합니다. 한때는 그런 부분 때문에 TV 드라마 출연 배우들에게 성우에 가까운 발음 교정을 요구하는 시청자들도 많았습니다. '도가니'의 장광처럼 실제 성우 출신 연기자들은 분명한 발음과 감정연기로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구요. 또 배우의 기본 자질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선명한 발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요즘도 많습니다. TV 드라마도 배우들을 훈련하거나 선택할 때 그 부분에 대한 잠재적인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네' 발음으론 명확한 의사 전달도 힘들고 '네'가 구분하기 힘들어 '니'라는 발음을 쓰는 사람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구분하지 않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선명한 대사 전달도 드라마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고 또 그렇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니'가 표준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가수나 배우들의 '너가'라는 표현까지는 아직까지 껄끄러운게 사실이네요.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일부는 그 언어의 표준을 지켜가야 고르게 발전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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