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의 임연 이 XX 이거 정말 마음에 드네

Shain 2012. 7. 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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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 2010)'의 주인공 에녹 너키 톰슨(스티브 부세미)의 모델은 미국의 유명 부패 정치인이자 암흑가의 대부였던 '에녹 너키 존슨'입니다. 관광도시 애틀란틱 시티의 전설적 인물로 금주령 하에서도 술을 유통시키는가 하면 가짜 양주를 팔아 엄청난 이익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시카고, 뉴욕 등을 주름잡던 유명 갱스터들 즉 월드 시리즈 승부 조작으로 유명한, 미국 조직 범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아놀드 로스스타인이나 영화 '대부(The Godfather, 1972)'의 모델이 된 갱두독 알 카포네, 이탈리안 마피아 보스 럭키 루치아노 등이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입니다.

'보드워크 엠파이어'는 우리 나라 드라마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위의 드라마입니다. 성적인 묘사나 잔인한 폭력, 살인 장면은 이미 미성년년자 관람가 등급을 넘어갑니다. 실존인물들의 악행을 묘사하다 보니 부담감을 느꼈는지 제작진은 '에녹 너키 톰슨'이라는 가명을 사용합니다. 명예훼손이나 범죄 사실의 미화, 왜곡을 피하기 위한 '꼼수'인 셈입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굵직굵직한 미국 조직 범죄의 대명사들이다 보니 한국에서 같은 내용을 제작하자면 윤리적으로도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와 한드 '무신'

대중을 기만하고 사람을 죽이고 막대한 검은 돈을 긁어모은 악당 주인공과 개성강한 캐릭터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드라마 '유령'의 권혁주(곽도원) 형사 표현을 빌자면 '아 이 XX 이거 정말 마음에 드네'란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수없이 많은 돈을 긁어모으고 보여주는 사기꾼의 씁쓸한 표정하며 사람을 죽일 때 움찔거리는 그의 표정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거기다 조직폭력배들의 역사와 그들의 무기가 권총에서 자동소총류를 이용하게된 이유 즉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설명까지 보태지니 시대 고증도 만점입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마음에 드는 건 드라마의 비틀어진 유머 코드입니다. 돈과 이권에 살인도 불사하는 갱스터들 간의 이야기다 보니 선악구도나 악당들의 '알고보면 그랬다'는 식의 어설픈 변명은 처음부터 배제하고 시작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못된 놈이고 착한 사람이 등장하면 가치관이 삐뚤어진 특이한 인물이거나 상황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이야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그냥 '착한' 사람일 뿐이죠. 절대 착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세상 비틀기가 어떻게 보면 유쾌하고 어떻게 보면 씁쓸합니다.

알고 보면 코믹한 최충헌과 최준문 사이의 에피소드.

사실 MBC 드라마 '무신(武神)'의 등장인물들도 웃기자면 한없이 웃킨 캐릭터들입니다. 큰 아들 최우(정보석)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죽은 최충헌(주현)에게는 처첩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여종 '동화'였는데 알고 보니 동화는 최준문(윤철형)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습니다. 자신의 부하와 속된 말로 동서지간이 된 최충헌은 여자를 빼앗은 대가로 최준문을 상장군 벼슬까지 올려줍니다. 사서에 실린 이야기라 그렇지 생각해보면 참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점을 친다며 알랑거리던 김덕명(안병경)과 함께 최고의 코미디가 될 수 있었던 설정입니다.

또 점을 봐준다며 최우의 집에 들락거리던 최산보(이남희)도 무신정권의 '희극'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걸핏하면 바다에 사람을 던져죽이고 칼로 베어죽이던 그 무서운 사람들이 부인 단속에는 서툴렀는지 풍요로움에 겨워 타락한 것인지 최산보같은 점쟁이가 고위층 부인을 희롱하고 반란을 꿈꿀 만큼 큰 권력을 누렸습니다. 최충헌에게 김덕명이 있었다면 최우에게는 최산보가 있었습니다. 최우의 영웅성과 올곧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최산보의 이야기는 희극이라기 보다 김약선(이주현)의 죽음을 불러온 광기어린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준의 영웅성이 강조되어 해학성을 잃고 말았다.

무엇 보다 마음에 안드는 건 김준(김주혁)과 안심(홍아름)의 불륜입니다. 제가 알기론 김준의 아내는 최우의 첩이었던 안심 말고도 셋이 더 있습니다. 극중에서는 일편단심 월아(홍아름) 뿐이었고 최우의 딸인 송이(김규리)의 유혹에도 꿈쩍않는 남자로 묘사되지만 김준은 의외로 권력을 위한 혼인을 했거나 여색을 밝힌 것같습니다. 같은 노예출신 최양백(박상민)과도 사돈관계였습니다. 감히 주군의 첩을 넘보다 귀양을 가고 주군이 흔쾌히 그 첩을 김준에게 내어준다는 사서 속 기록을 그렇게 비장하게 연출할 필요가 있었는지 솔직히 의문입니다.

흔하디 흔한 통속적 불륜이 될 수도 있었던 안심과의 관계가 첫사랑 월아의 개입으로 '안타까운 사랑'으로 변모한 건 김준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무게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 권력자 아버지 최우와 그 후계자인 김약선 등 모든 권력을 가진 송이의 불륜이 그렇듯 비극적인 것도 김준이 최우를 뒤흔들어놓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입니다. 덕분에 개망나니로 묘사된 만전(백도빈)과 만종(김혁) 형제의 운명도 운명적인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똑같이 못된 짓을 하고 다녔는데 월아를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전(최항)이 조금 더 낫다니 생각해보면 웃긴 일임에도 웃기지가 않습니다.

안심과의 불륜 조차 통속적이지 않다. 이게 다 김준 너 때문이야.

'무신'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그래서 해학성(諧謔性)입니다. 김준과 안심의 불륜도 송이와 김준의 수작도 조금 더 유연하게 묘사할 수 있었고 최우와 과부 대씨부인(김유미)의 관계도 조금 더 명랑하게 묘사할 방법이 있었을 거라 봅니다. 아니 본래 무신정권이 여몽전쟁 시기에 보여준 행보 중에는 그런식으로 쓴 웃음이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집쎈 대집성(노영국)이 자신의 명에 불복한 최춘명(임종윤)을 죽이라 고집부린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 속에서 김준과 최우가 비범한 영웅인 양 무게를 잡고 있으니 '너무 폼을 잡는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준을 죽인 임연(안재모)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부인을 겁탈한 고을 수령을 죽였다는 이 캐릭터는 뭐가 그리 시원시원한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김준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싹싹하게 굴고 만전의 수하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등 등장하자마자 극의 유쾌함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각종 사극에서 꼭 필요한 역으로 뼈가 굵은 배우 안재모의 역량이니 가능한 캐릭터란 생각도 듭니다. 승려 출신으로 매사에 진지하고 무거운 김준의 빈곳을 채워줄 인물로 왜 진작에 등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보기만 해도 유쾌해지는 캐릭터 임연. 무신 최고의 조커?

'보드워크 엠파이어'가 그랬듯 사극의 재미는 어쩌면 등장인물의 선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현실적인 영웅이 등장하던 사극은 이제 시대착오적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권혁주 형사의 표현을 한번 더 빌려 '이 XX 이거 정말 마음에 드네'라는 최고의 평가를 임연에게 내려주고 싶습니다. 그동안 '무신'이 월아의 죽음이나 백성들의 고통으로 우울하긴 많이 우울했지요. 송언상 장군 휘하에서 몽고군을 물리치던 대정 임연. 노예 출신 권력자 김준의 운명을 도모할 임연이 '무신'의 마지막을 휘어잡을 최고의 조커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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