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대를 이어 주인을 문 개 홍복원과 홍다구

Shain 2012. 8. 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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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년 몽고는 황족 예꾸를 앞세워 다시 고려를 침략합니다. 몽고의 다섯번째 침략입니다. 최우의 뒤를 이어받아 무신정권의 수장이 된 최항은 1257년 몽고의 8차 침입중 병사합니다. 그뒤를 이어 최항의 아들 최의가 그 자리를 이어받지만 최의도 1258년 김준을 비롯한 무신들에게 제거당하고 최양백도 그때 명을 달리합니다. 이를 '무오정변'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인들의 눈에는 권력자들 사이의 단순한 권력싸움에 불과해 보이는 이 갈등은 고려의 왕권, 몽고와의 전쟁 그리고 무신정권의 흥망과 관련된 큰 사건이었습니다.

드라마 '무신(武神)'은 노예에서 무신정권의 정점이 된 김준(김주혁)을 중심으로 모든 사건을 전개하고 있기에 최우(정보석)의 천출 아들이자 망나니였던 최항(백도빈)이 김준의 수작 때문에 죽는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김준은 최우의 딸인 송이(김규리)를 휘저어놓고 만종(김혁)을 비롯한 최우의 자식들을 죽게 하는 등 최우 정권을 흐트려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몽고의 침략에도 꾸준히 권력을 탐한 최씨들과 무신들의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김준이 지나치게 영웅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김윤후와 홍지, 여몽전쟁의 가장 큰 승리는 이 두 사람의 공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중에서도 배고픈 강화도 백성들을 위해 도방의 곡식을 풀자 최양백(박상민)이 제안하자 최항이 거절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무오정변 후 김준은 고종(극중 이승효)의 허락을 얻어 이공주(극중 박상욱)를 비롯한 공신들에게 최씨 집안의 곡식과 재물을 나눠주었는데 그 양이 상당합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전쟁하다 죽는 그 혼란의 와중에 최씨 집안이 얼마나 많은 재물을 긁어모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으로 그들에 대한 '영웅화'가 과연 올바른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김준은 과연 최씨들과는 달랐나 따져볼 부분이기도 하구요.

승려 출신 방호별감 김윤후(박해수)는 충주성을 목숨걸고 사수합니다. 후에 차라대(자랄타이)와 상주 저승골에서 결전을 벌이는 홍지(박동빈) 스님도 그 자리에 함께 합니다. 여몽전쟁을 통틀어 몇번되지 않는 승리를 이끈 주인공들이 이 두 사람입니다. 단호하게 노비문서를 태우며 나라를 지키자 읍소하는 김윤후의 모습은 현대인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최항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백성들은 피흘리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5차 몽고침공의 유일한 승리, 40일이 넘는 충주성 전투를 지휘하는 김윤후의 노력이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예꾸와 함께 충주성 전투에 나선 영녕공 준. 몽고황실과 결혼한 최초의 고려 왕족이다.


반면 김윤후에 맞서 예꾸(정흥채)와 함께 전투하는 홍복원(이원재)은 '주인을 문 개'답게 선봉에 서겠다 설레발칩니다. 고려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에는 미친 사람처럼 눈을 번득이며 사람을 죽이는 최항이란 인간도 성을 함락시키겠다며 병력을 쏟아붓는 몽고도 끔찍하지만 동족을 배신한 홍복원이나 전 추밀원 부사였던 이현(안홍진)이 더욱 징그럽게 여겨집니다. 홍복원은 태자(원종, 강성민)를 대신해 몽고에 인질로 간 영녕공 준(김지완)과는 처지가 다릅니다.

고려 왕실 최초로 몽고황족과 결혼한 영녕공은 다소 애매한 입장에서 전장에 끌려나왔습니다. 1241년 영녕공 준은 몽고에 인질로 갔습니다. 영녕공은 중간에 가짜 왕자임이 들켜 목숨이 위험해졌지만 몽고 황족과 결혼하여 몽고에 정착해 살게 되었습니다. 또 몽고의 5차 침략에 전후해 사자로 나서고 충주성 전투 등에 동원되었으나 전쟁을 막기 위해 왕손을 볼모로 보내라는 간절한 편지를 쓰는 등 나름대로 고려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아 몽고에서 여생을 보낸 그가 몽고의 충견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런 그가 '주인을 문 개' 홍복원을 죽게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까요.



고려 왕실과 대를 이어 앙숙이 된 홍복원 가문

홍복원의 집안은 잘 알려진대로 대를 이어 고려를 괴롭힌 역적 가문입니다. 본래 중국 유민 출신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찌 보면 고려인이었다기 보다 국경 근처에 정착해 살며 상황에 따라 국적을 바꾸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아버지 홍대순은 1218년 몽고가 침략하자 자진해 강동성을 열고 항복합니다. 1231년 몽고가 살리타이를 앞장세워 고려를 침략할 때는 '향도(嚮導)' 즉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그런 악행에도 불구하고 최우에게 대장군으로 임명받습니다. 원나라의 비위를 맞추고 싶은 최우의 뜻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홍복원은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여 몽고로 도망갔고 몽고에 귀화하여 몽고인이 되었으나 고려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닙니다. 동경총관이란 몽고 벼슬을 받아 살면서도 몽고 침략의 향도 노릇을 했음은 물론이고 중간 중간 강화도로 들어가 항복을 권유하는 사신 노릇도 합니다. 몽고에서 받은 벼슬은 고려에서 이주해간 40여개성의 유민들을 통치하는 일이었다고 하는군요. 영녕공 준도 몽고에 가서 홍복원의 집에 머물렀고 홍복원의 후손들도 대를 이어 고려에 등용되었습니다.

여몽전쟁의 대표적인 역적 홍복원과 이현.


홍복원은 고려를 괴롭히는 일에는 누구 보다 앞장서서 나서곤 했는데 최근 드라마 '신의'에서 묘사되는 기철(유오성)이 왕을 넘어서는 권력을 누리듯 이들 홍씨 집안도 대대로 왕족과 왕을 우습게 보고 가끔 기싸움을 벌이곤 했습니다. 특히 영녕공과는 유민들을 다스리는 문제로 때때로 대립하곤 했는데 고려의 왕족 출신인데다 몽고 황족과 결혼한 영녕공과 힘싸움을 하다 갈등이 빚어지게 됩니다. 홍복원은 영녕공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하고 영녕공을 저주하는 인형을 땅속에 묻거나 우물에 넣습니다.

한 고려인에 의해 이 소식이 몽고 황실에 들어가고 황실에서 진상조사를 하게 되자 홍복원은 영녕공에게 '주인을 무는 개'라며 나무랍니다. 고려에서 온 왕족 영녕공에게 잘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느냐며 난리를 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영녕공의 지위는 몽고황실의 사위로 홍복원 따위가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을 알게 된 영녕공의 처가 분노해 황실에 고변했고 황실에서는 힘쎈 장사 십여명을 보내 홍복원을 때려죽이게 됩니다. 황족을 '개'에 비유했으니 이른바 '황실모독죄'에 걸린 것입니다.

원종은 무신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원나라와 손을 잡지만 홍다구 집안이 더욱 큰 문제.


진정한 '주인을 무는 개'은 고려를 배신하고 몽고에 아첨하는 자신일테지만
권력을 믿고 왕족을 함부로 대하며 하대했으니 매를 맞아 죽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영녕군을 가짜 왕자였다며 예꾸 앞에서 비난하고 나서는 홍복원에게 예꾸가 주의를 주는 장면이 묘사되지요. 홍복원이 맞아죽자 그의 아들 홍다구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몰락했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원하는 집안의 핏줄을 타고났는지 홍다구 역시 다시 출세해 원나라에 인질로 온 충렬왕과 대립하며 사사건건 방해하고 나서는 인물이 됩니다.

몽고에서 태어난 홍다구는 고려사람이라기 보단 몽고 사람에 가깝지만 부친의 관직인 총관직을 승계하여 고려의 권력 문제를 두고 자연스레 충렬왕과 대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충렬왕 때는 이미 무신정권이 사라지고 왕권이 복위된 시점이었지만 원나라의 간섭이 심해 독자적인 고려의 왕권은 유지할 수가 없었죠. 홍다구는 그런 고려의 충렬왕에게는 일종의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원나라의 일본 정벌이나 삼별초의 난 때 마다 고려에 파견되었지만 고려에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충견 양쪽 모두에 시달린 고려 왕족. 그 때문에 김준이 죽는다?


고려 입장에서는 몽고인 보다 더욱 지독했던게 홍다구였던 것 같습니다. 홍다구는 원나라 세조(쿠빌라이 칸)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으니 함부로 제거하거나 무시할 수도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또 영녕공 준을 참소해 영녕공의 원나라 내 고려인들에 대한 권리를 뺏어가기도 합니다. 세조의 권력을 믿고 있었으니 왕족이라고 달리 허리를 굽혔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1차 일본 정복 때 고려 내에서도 약탈로 원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충렬왕은 기를 써서 홍다구가 2차 정벌에 동원되지 못하게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죠.

원나라 세력과 고려 왕실 무신정권의 힘겨루기는 결국 김준과 임연(극중 안재모)의 몰락으로 일단락됩니다. 거대한 세력에 휘둘리던 고려 왕실이 무신이라는 국내 세력을 몰아내는데는 성공하지만 홍다구 집안의 악행만은 피할 수가 없었죠.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운 건 홍다구의 사적인 '복수'입니다. 홍다구가 영녕공 준으로 인해 아버지 홍복원이 얻어맞아 죽고 그로 인해 고려인들에게 더욱 독하게 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고려에 들어와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홍다구는 삼별초들이 왕으로 추대한 승화후 온을 죽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홍복원을 죽게 한 영녕공 준의 큰 형입니다. 고려 왕실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지위를 낮추고 괴롭힌 홍복원이 원수이지만 홍복원의 집안은 고려와 고려 왕실을 원수로 삼아 대를 이어 '주인을 문 개' 노릇을 한 희대의 역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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