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엄청애 며느리가 차별하는게 서운하다구요?

Shain 2012. 8. 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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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아이가 30년 간 다른 부모밑에서 자라고 또 다른 나라에서 살다 보니 외국 문화에만 익숙하다면 아무리 피를 나눈 자식이라도 남처럼 느껴지는게 당연합니다. 실제 해외 입양되었다 수십년 만에 가족을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 시간과 문화의 거리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함께 살던 가족처럼 자주 보고 친하게 지내다가도 각자 생활 터전이 다르니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나중에는 가끔씩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수십년 함께 산 가족이 진짜 가족일까 피를 나눈 가족이 진짜 가족일까 고민도 되겠죠.

물론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유준상)을 30년전 잃어버린 아이로 설정한 것은 시집살이의 한단면을 조명하기 위한 극적 장치에 불과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은 전형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란, 엄마 말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흔한 '귀남'이 아니었고 자신의 부인 차윤희(김남주)를 떠받들다시피 위해주는 남편이었습니다. 아들 잃어버린 죄인이 되어 30년 동안 딸들도 귀하게 거두지 못하고 전막례(강부자)의 시집살이까지 홀로 견딘 엄청애(윤여정)에게 그런 차윤희는 밉살스런 요즘 며느리입니다. 윤희에게는 그렇게 꽁하게 자신에 대한 불만을 품은 엄청애가 어려운 구세대 시어머니일 뿐이구요.

귀남을 찾아온 양부모가 귀남과 더 친해보이자 섭섭해진 엄청애.

그러나 '넝쿨째 굴러온' 가족들이라는 주제에 알맞게 그들은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맞춰주고 때로는 위로하면서 앞집사는 아들, 며느리와 가족이 되보려 합니다. 입양되었다 부모를 찾은 많은 가족들의 뒷이야기에 비하면 정말 행복하고 다정한 해피엔딩입니다. 여전히 며느리는 눈치를 좀 보고 시어머니는 가끔씩 토라지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실제 '시집살이'에 비하면 별것아닌, 애교 수준의 갈등입니다.

문제는 방귀남을 '테리'라 부르는 양부모의 등장입니다. 그동안은 드라마 전개를 위해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드라마도 연장되었겠다 이제는 방귀남 유괴의 비밀도 풀렸겠다 귀남의 양부모가 또한번 엄청애의 마음을 섭섭하게 합니다. 30년동안 엄마 아빠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 서운하기는 해도 친부모인 방장수(장용)나 엄청애가 어떻게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훌륭하게 키워준 걸 감사히 여겨야죠. 그런 걸 알면서도 엄청애는 기어코 차윤희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하고 맙니다.



불편하게 행동하면서 서운하다는 엄청애?

방귀남의 양부모와 친부모는 스타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인종이 다른 여러 고아들을 입양해 키운 양부모(길용우, 김창숙)들은 매사에 유쾌하고 발랄한 태도를 보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남을 도와주고 출국 수속을 밟는 그들은 타고난 자원봉사자들 같습니다. 아들 하나를 잃고 자신들의 상처를 극복해낸 그런 부모들이기에 귀남을 30년 동안 잘 바쳐주고 다독여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입양을 하나의 생활 문화로 생각하고 있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라 며느리에게 핫팬츠도 선물합니다.

반면 엄청애와 방장수는 전형적인 한국의 노년 부부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방장수는 엄청애에게 약간은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남편입니다.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죄로 그렇게 행동한 면도 있지만 아들은 귀남 딸은 일숙이라고 이름짓는 그런 문화 속에서 귀남처럼 다정하기만 한 남편 노릇을 했을지는 의문입니다. 엄청애는 착한 사람임에도 그런 스트레스를 숨기고 참고 살다 이제사 '만만한 며느리'에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그러죠. 딸들에게 털어놓는 것과는 좀 다른 '윗사람'의 속마음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어쨌든 귀남을 키워준 건 다른 사람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차윤희에게는 귀남의 양부모나 친부모 모두 약간은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양부모의 입양을 생각해보라는 권유는 귀남의 처지를 생각해보고 또 유산한 윤희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과 가정을 모두 건사하고 싶은 윤희에게는 무리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들 문화의 '오버스러움'은 차윤희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시댁 가족은 말숙(오연서), 이숙(조윤희) 등 모두 하나같이 만만찮게 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지고 볶고 갈등하면서 이제서야 간신히 정을 붙인 셈입니다.

드라마 PD로 일하는 차윤희의 최고 능력은 남들에게 맞춰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배우들의 억지 요구에 맞춰주며 출연해달라 사정하고 때로는 옳지 않은 직장 상사의 요구에 사정하며 대응하는 그녀는 처음에도 시어머니 엄청애의 기분을 맞춰주려 선물을 주곤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간만에 찾아온 귀남의 양부모에게 맞춰 팩을 하고 핫팬츠를 입고 영화를 보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어떻게 보면 그 양부모들이야 말로 귀남이 더 가깝게 느끼고 편하게 생각하는 '진짜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자주 보는 것도 아닌 그 양부모에게 모든 코드를 맞추는게 윤희로서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윤희가 양부모에게 맞춰 입양을 고려하겠다고 하자 놀라는 엄청애.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양부모에게 더 잘해주는 것 같은 윤희를 보며 엄청애는 속상해 합니다. 친아들인 귀남이 자신 만의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들처럼 느껴져 서운한 건 알겠는데 그걸 아들에게는 표현하지 못하고 콕 집어 윤희에게만 말하는 엄청애의 처지는 이해가 가지만 윤희의 말대로 그건 아들에게 말할 문제지 며느리에게 말할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면 며느리는 양쪽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표현하는 서운함은 윤희에게 내가 귀남의 친엄마라는 유세같기도 하고 내 눈치를 봐달라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안갔던 장면 중 하나는 엄청애가 귀남의 양어머니 앞에서 입양을 반대했던 장면이었는데 천애고아로 우울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던 귀남이 그토록 번듯하게 자란 건 어디까지나 양부모의 공이고 입양 덕분입니다. 그런 양부모가 입양을 고려해보라고 하는 건 실제 입양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생각해보겠다할 문제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윤희도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한 것일테구요. 그런 걸 굳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은 '내가 사준 홈웨어 왜 안 입냐'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현명하지 못한 태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 정이가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엄청애의 심정, 키워준 엄마에게 자격지심이 드는 친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참고 살아온 세월을 이해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건 어쩌면 그런 소심한 질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질투를 늘 며느리를 붙잡고 하소연하니 이해하면서도 답답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겠죠. 반면 며느리 쪽에서 나오는 솔직한 말은 그리 달갑게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은 윗사람의 말은 뭐든 순종하는 시집살이 세월은 겪은 며느리라 차윤희의 눈물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일이 반복되면 양부모는 편해도 친부모는 부담스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차윤희의 양부모와 친부모에 대한 태도가 달라보였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시청자의 눈에도 분명히 보이는 건 양부모는 윤희가 살갑게 굴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는 것이고 엄청애는 사사건건 불만을 터트린다는 것입니다. 약간은 불편한 그런 시어머니에게 그래도 웃으며 다가가는 건 그래도 윤희가 며느리기 때문입니다. 어른이건 아이건 편한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인데 정말 아들 며느리를 가까이 두고 싶다면 붙잡고 섭섭함을 표현하기 보다 윤희를 한번 더 다독거려주는게 더 나은 게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자신도 그런 일을 겪은 '며느리'였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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