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결혼 입양 시집살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Shain 2012. 9. 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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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이야기 중에 '가족의 따뜻함' 보단 '가족의 무서움'을 알려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여행 중 화목하고 정많은 한 대가족을 알게 되었는데 그 가족은 얼마나 서로 위하는지 나그네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족의 둘째 아들이 살인 사건을 저지르자 나그네의 그런 '착각'은 깨어지고 맙니다. 가족들은 살인을 저지른 둘째를 비난하는게 아니라 둘째 아들이 받을 형벌을 걱정하더니 결국 살인의 책임을 나그네에게 덮어씌우기로 작정하고 나그네를 죽이려 합니다.

한 가족들 간의 결속력이나 사랑은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그들이 똘똘 뭉쳐 타인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면 그것은 '왕따'입니다. 무리를 짓는 건 행복한 일이나 그 무리의 결속이 타인을 괴롭히는데 이용된다면 그건 폭력입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한 가정주부가 자기 아들이 학교에 제출할 사진을 찍겠다며 고아원에 사는 지환(이도현)에게 상처를 준 것처럼 말입니다. 내 아이가 받을 내신은 중요시하면서 부모잃은 아이가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마음이 아팠죠.

아직까지 '입양' 결정을 못한 윤희는 자신이 '지환이 엄마'라고 나선다.

구시대적 가치를 추구하고 엄하지만 인자한 할머니 전막례(강부자), 무뚝뚝하고 속정깊지만 그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들 방장수(장용),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쌓인게 많으면서도 한마디 불만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온 엄마 엄청애(윤여정), 잘 속는데다 순하고 세상물정을 몰라 인간 말종 남편에게 이혼당한 방일숙(양정아), 자기 때문에 오빠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눈치보며 아들 노릇을 하려는 방이숙(조윤희),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게 싫어 악을 쓰고 떽떽거리는 얌체같은 방말숙(오연서)까지 그 가족은 함께 있으면 행복해 보입니다.

차윤희(김남주)는 그들 가족에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남'입니다. 잃어버렸던 아들 방귀남(유준상)의 아내라는 점은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동안 똘똘 뭉쳐온 가족들과는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지닌 이방인입니다. 그런 며느리를 자기들에게 맞춰보겠다며 '며느리의 도리'를 운운하고 예의를 따져보지만 넝쿨째 굴러온 복덩어리 차윤희는 만만치 않는 '적수'입니다. 뜬금없지만 그런 차윤희가 결국 지환의 입양을 결정하려 합니다. 사실 결혼과 입양과 시집살이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자신들의 무리에 받아들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타인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연습

극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커플은 누가 뭐래도 '천방커플'입니다. 천재용(이희준)과 방이숙은 순수하고 계산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듭니다. 특히 그동안 주욱 자신감없는 모습을 보였던 이숙이 천재용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어제는 천재용과 꼭 닮은 재용의 아버지(이재용)이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알고 보니 외모 뿐만 아니라 천재용과 성격도 가치관도 비슷한 이 아버지는 방이숙을 정말 마음에 들어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이숙은 더 이상 결혼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반면 등장부터 지금까지 철이 없었던 말세커플은 아직도 많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겹사돈이고 아직 어리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시청자들 중에서도 이 커플이 얄밉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워낙 말숙이가 차윤희를 많이 괴롭혔고 잘생긴 꽃미남 차세광(강민혁)도 이제서야 말이지 얌체같은 타입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마음에도 없는 빈말로 상대방이 자신에게 넘어온다고 믿는가 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루 아침에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약아빠진 타입입니다. 특히 미운털 박힌 말숙이는 뭘해도 안 예쁘다는 평을 자주 받았죠.

천진난만함, 아이 다섯, 쭈쭈바로 예비 시아버지를 사로잡은 방이숙.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낯빛을 순식간에 바꾸는 말숙은 한때 자신의 사돈집안 여자들인 한만희(김영란)과 민지영(진경)을 씹다만 껌처럼 흉을 보았지만 차세광의 가족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애교를 부리며 빈말을 합니다. 속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아이가 가족의 결혼 상대자로 용납이 될 리가 없죠. 말숙은 차윤희에게 '며느리의 도리'라며 그 어떤 누구 보다 많은 요구를 해댔습니다. 안 그래도 방장수 가족을 배타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는, '남'의 입장인 차윤희는 말숙이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갈 정도로 막내 시누이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말숙은 차윤희를 한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롭힌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만희와 민지경이 한편이 되어 자신을 무시하자 펑펑 울면서 서러워하지만 자신이 한 짓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이니 어디가서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자신이 배척하던 입장에서 배척당하는 입장이 되자 눈물만 흐르고 어떻게 할 줄을 모르죠. 한편 말숙의 어머니인 시어머니 엄청애는 며느리가 한 집안의 가족이 된다는 건 간섭을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구시대의 시집살이'가 공존하는 요즘. 현대 사회의 가족은 어떻게 다른 걸까.

귀남이 앞집에 산다는 걸 알게 되자 윤희에게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 하고 윤희가 아침으로 빵을 먹으니 밥을 먹으라 하고 아이를 낳기 싫다고 말하는 귀남 부부에게 아기를 꼭 가졌으면 좋겠다 어필하는 엄청애와 전막례에게 '가족'이라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요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더 오래 살았던 자신들이 깨닫게 된 세상의 이치를 자식들이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또 그게 그들을 위해서 좋다는 걸 알기에 하는 말이지만 그런 방식의 '가족'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남을 자녀로 받아들여 훌륭하게 키워낸 양부모(길용우, 김창숙)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식잃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여러 아이들을 입양한 양부모들은 작은엄마 장양실(나영희)에게 버림받고 말을 잃은 귀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위로해 주었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인 귀남의 양부모 가족은 엄청애가 부러워할 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을 연출하곤 합니다. 며느리에게 핫팬츠를 권하고 편하게 놀러가자 말하는 시어머니가 편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남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시집살이의 본질이다.

마찬가지로 귀남이 장양실을 용서하고 전막례나 엄청애, 방장수가 장양실을 받아들인다면 그것도 역시 '남을 가족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귀남을 잃고도 30년을 입다물고 살아온 그녀의 행실은 용납할 수 없지만 그래도 30년을 가족으로 살았기 때문에 장양실이 아이를 유산하고 남편에게 냉대를 받으며 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는 없어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막례는 그런 무서운 짓을 저지른 며느리를 방정훈(송금식) 보다 걱정하며 가족들 몰래 병원에 입원시킨 후 돌보고 있습니다.

부부끼리 사랑하며 살기도 힘들다는 요즘. 결국 핏줄의 의미 보다 중요한 건 가족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동안 생판 남이었던 남편이든 인연이 닿아 입양한 아이든 하루 아침에 가족이 된 며느리든 한때는 '남'이었던 그들을 진짜 '가족'으로 만드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 뿐입니다. 드라마의 전개상 별상관이 없는 듯한 그래서 뜬금없다는 말까지 듣는 차윤희의 입양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선택인 듯합니다. 결국 시집살이나 입양이나 남이 가족이 된다는 점에서 그 근본이 똑같다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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