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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발표된 '고노 담화'는 일본군 성노예(위안부)의 존재를 시인하는 공식문서로 발표 이후 지금까지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공식입장이었습니다. 어제 27일 일본 총리 노다 요시히코의 망언 즉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발언은 기존 일본의 입장을 번복하는 것으로 일본 일부 각료들 사이에서는 '고노담화'를 수정해야한다고 주장도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가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증거를 수집하고 발표한 고노담화인데 정치적 입장에 따라 뒤집을 수 있다니 참으로 뻔뻔한 행동입니다.
피해국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이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서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그 과거를 알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한둘이 아닌데 수많은 증언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입장도 입장이지만 일본 관동군 731부대 즉 마루타를 이용한 생체실험은 중국 쪽에 훨씬 피해자가 많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차례 그들의 생체실험을 입증할만한 증거자료와 극비 문서가 발견되었지만 일본은 이 역시 공식부인하고 있습니다.
1988년 국내 개봉한 영화 '마루타(Man Behind the Sun)'는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88년 발표된 정현웅의 장편소설 '마루타'가 대중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사람을 잔인하게 생체실험했다는 이시이 시로 준장의 731 부대는 한국인들을 패닉에 가까운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입니다. 소설 '마루타'의 전체 내용은 일본군 대위 요시다라는 가상의 인물이 731부대에서 근무하며 목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엮여 있는데 등장인물과 생체실험에 대한 묘사는 증언과 목격담을 소설화한 것입니다.
그런 끔찍한 '731 부대'의 참가자들은 공식 처벌이나 책임을 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살다 죽었습니다. 일본이 공식 부인하고 있는 사안이니 그들에게 법적인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례적으로 '고노담화'를 통해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하나 그 범위와 강제성, 보상에 대한 문제는 한번도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이 없고 때때로 겉핥기식의 사과가 이뤄질 뿐입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셈이니 일본은 중국과 한국같은 주변국가를 물로 보고 있나 봅니다.
위에서 계속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본래 이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특히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써서는 안되는 표현이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포함해 사용했던 '정신대'라는 표현도 옳치 않습니다. '정신'이라는 말 자체에 앞장선다는 뜻이 있는데다 인간적으로 착취당한 위안부 여성들과 강제 노역에 끌려간 여성들의 피해와 보상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본래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이 옳지만 증언하러 나선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런 표현이 수치스럽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위안부'라고 어쩔 수 없이 쓴다는 것입니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라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피해당사자들의 자발적 참가를 강조하는 일종의 말장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을 써 그녀들이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945년에도 유엔 조사를 통해 공장 노동자를 뽑는다는 광고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증언들이 보고되었고 전범들의 자백도 있었지만 일부 한국 학자들도 구체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전쟁터로 나간 사람들이라 주장하곤 하니 일본 정부의 말장난은 허탈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복과 동시에 이들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피해조사나 사례 발표가 그 즉시 있었을 법도 한데 아쉽게도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1980년대 후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드라마를 통해서 말입니다.
가해자 일본은 끊임없이 '위안부'나 '731부대'같은 자신들의 과오를 부정하려할 것입니다. 이번 노다 총리 발언 이전에도 일본 우익들은 '고노 담화'의 내용을 수정해야한다며 수차례 이의를 제기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이런 전쟁범죄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피해 국가였던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들 역시 위안부 문제는 드라마나 짧은 뉴스 토막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를 환기시킨 것은 '드라마'였습니다.
때로는 '위안부'라 불리고 때로는 '정신대'라 불렸던 그들의 이야기가 종종 영화화될 기회를 얻곤 합니다. 2012년에도 곽재용감독이 '꽃신을 신고'라는 대작을 준비중이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위안부를 소재로 제작된 다큐 몇편은 있어도 극영화로 제작된 것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91)'라는 괴작 한편 뿐입니다. 윤정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위안부의 과거를 조명하기 보다 선정적이란 느낌이 강했던 이상한 영화가 되버리고 맙니다. 그만큼 이 문제를 영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위안부'의 이야기를 최초로 묘사한 드라마가 1986년 방영된 KBS의 '노다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위안부란 표현을 쓰지 않고 공장 노동같은 노역과 위안부 모두를 통틀어 '여자정신대'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도 '정신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 한 가족의 수난사를 그린 이 드라마 속에서 여주인공 성희(한혜숙)는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정신대로 끌려갑니다. 강제로 끌려간 한 여성의 고통을 묘사한 드라마 속 '정신대' 이야기가 당시 많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뒤를 이어 KBS의 '역사는 흐른다(1989)'라는 드라마에선 위안부는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남혁(박진성)의 애인이던 갑혜(하희라)는 정신대로 끌려가 남혁의 친구와 마주칩니다. 애인의 친구와 마주친 수치스럽고 당황스런 그 상황에서 남혁의 친구가 처벌받을까 두려워 어서 침상으로 올라오라 애원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1년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위안부 묘사에 정점을 찍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란 이유로 정신대에 끌려간 여옥(채시라)는 강제로 위안부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갑니다. 미친 사람처럼 반항하고 넋이 나간 여옥에 대한 묘사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국민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지금은 작고하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증언을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그뒤로 수백명의 할머니들이 앞다투어 증언을 하였고 그 참상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같은 동포들 조차 언급하길 꺼렸고 1965년 맺어진 '한일기본조약' 즉 한일협정으로 인해 더욱 거론하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일제강점기 때 악명높던 고등계 형사가 '여명의 눈동자' 속 스즈끼(박근형)처럼 경찰이 되었다는 이야기 만큼이나 금기시 되었던 이야기죠.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각시탈'에서는 실존인물 배정자를 모델로한 채홍주(한채아)가 민간업자들과 손을 잡고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정신대를 조직합니다. 개인적으론 이 채홍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데 배정자같은 인물이 적극적으로 정신대를 조직해 위안부로 끌고갔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자발적 성매매라 우기곤 합니다. 아무리 배정자는 조선인이라기 보단 일본의 충견이고 위안부 문제에는 일본이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더라도 일본은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한 사실을 증거로 내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때로는 글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시대를 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때 속아서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노라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니면 그 드라마 속에서 본 일들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일본은 지금 국력을 무기로 진실게임을 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어쩌면 일본 정부의 최근 움직임 즉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과거까지 부정하는 이런 망언들은 어쩌면 한국인들의 무대응과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릅니다.
'고노담화'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실이 알려진 것이 20여년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하나둘씩 증언자들이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일본군 위안부'.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본 것 이외에 무엇을 더 알고 있는 것일까요.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일본 정부의 망언을 보며 관심에서 소외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피해국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황당한 일입니다. 20세기 초반 일본이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서 어떤 일을 자행했는지 그 과거를 알고 있는 국가와 민족이 한둘이 아닌데 수많은 증언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입장도 입장이지만 일본 관동군 731부대 즉 마루타를 이용한 생체실험은 중국 쪽에 훨씬 피해자가 많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차례 그들의 생체실험을 입증할만한 증거자료와 극비 문서가 발견되었지만 일본은 이 역시 공식부인하고 있습니다.
1988년 국내 개봉한 영화 '마루타(Man Behind the Sun)'는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1988년 발표된 정현웅의 장편소설 '마루타'가 대중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사람을 잔인하게 생체실험했다는 이시이 시로 준장의 731 부대는 한국인들을 패닉에 가까운 충격에 빠트렸기 때문입니다. 소설 '마루타'의 전체 내용은 일본군 대위 요시다라는 가상의 인물이 731부대에서 근무하며 목격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엮여 있는데 등장인물과 생체실험에 대한 묘사는 증언과 목격담을 소설화한 것입니다.
1991년 방영된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묘사된 위안부 여옥(채시라).
그런 끔찍한 '731 부대'의 참가자들은 공식 처벌이나 책임을 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본 사회에서 살다 죽었습니다. 일본이 공식 부인하고 있는 사안이니 그들에게 법적인 처벌이 가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례적으로 '고노담화'를 통해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하나 그 범위와 강제성, 보상에 대한 문제는 한번도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이 없고 때때로 겉핥기식의 사과가 이뤄질 뿐입니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셈이니 일본은 중국과 한국같은 주변국가를 물로 보고 있나 봅니다.
위에서 계속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본래 이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특히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더더욱 써서는 안되는 표현이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포함해 사용했던 '정신대'라는 표현도 옳치 않습니다. '정신'이라는 말 자체에 앞장선다는 뜻이 있는데다 인간적으로 착취당한 위안부 여성들과 강제 노역에 끌려간 여성들의 피해와 보상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본래는 '일본군 성노예'라는 표현이 옳지만 증언하러 나선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런 표현이 수치스럽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위안부'라고 어쩔 수 없이 쓴다는 것입니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라고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피해당사자들의 자발적 참가를 강조하는 일종의 말장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엔은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을 써 그녀들이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노다지(1986)'에서 묘사된 정신대. 성희(한혜숙)는 정신대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다.
1945년에도 유엔 조사를 통해 공장 노동자를 뽑는다는 광고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증언들이 보고되었고 전범들의 자백도 있었지만 일부 한국 학자들도 구체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전쟁터로 나간 사람들이라 주장하곤 하니 일본 정부의 말장난은 허탈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광복과 동시에 이들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피해조사나 사례 발표가 그 즉시 있었을 법도 한데 아쉽게도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건 1980년대 후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드라마를 통해서 말입니다.
가해자 일본은 끊임없이 '위안부'나 '731부대'같은 자신들의 과오를 부정하려할 것입니다. 이번 노다 총리 발언 이전에도 일본 우익들은 '고노 담화'의 내용을 수정해야한다며 수차례 이의를 제기해 왔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일본인들은 이런 전쟁범죄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피해 국가였던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들 역시 위안부 문제는 드라마나 짧은 뉴스 토막을 통해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 정서를 환기시킨 것은 '드라마'였습니다.
때로는 '위안부'라 불리고 때로는 '정신대'라 불렸던 그들의 이야기가 종종 영화화될 기회를 얻곤 합니다. 2012년에도 곽재용감독이 '꽃신을 신고'라는 대작을 준비중이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위안부를 소재로 제작된 다큐 몇편은 있어도 극영화로 제작된 것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91)'라는 괴작 한편 뿐입니다. 윤정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위안부의 과거를 조명하기 보다 선정적이란 느낌이 강했던 이상한 영화가 되버리고 맙니다. 그만큼 이 문제를 영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드라마 '각시탈'의 한장면. 배정자같은 인물이 있어 일본은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 주장한다.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위안부'의 이야기를 최초로 묘사한 드라마가 1986년 방영된 KBS의 '노다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위안부란 표현을 쓰지 않고 공장 노동같은 노역과 위안부 모두를 통틀어 '여자정신대'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도 '정신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근대까지 한 가족의 수난사를 그린 이 드라마 속에서 여주인공 성희(한혜숙)는 사랑하는 애인을 두고 정신대로 끌려갑니다. 강제로 끌려간 한 여성의 고통을 묘사한 드라마 속 '정신대' 이야기가 당시 많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뒤를 이어 KBS의 '역사는 흐른다(1989)'라는 드라마에선 위안부는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남혁(박진성)의 애인이던 갑혜(하희라)는 정신대로 끌려가 남혁의 친구와 마주칩니다. 애인의 친구와 마주친 수치스럽고 당황스런 그 상황에서 남혁의 친구가 처벌받을까 두려워 어서 침상으로 올라오라 애원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1년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위안부 묘사에 정점을 찍습니다. 독립운동가의 딸이란 이유로 정신대에 끌려간 여옥(채시라)는 강제로 위안부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갑니다. 미친 사람처럼 반항하고 넋이 나간 여옥에 대한 묘사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국민적인 분위기에 힘입어 지금은 작고하신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증언을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그뒤로 수백명의 할머니들이 앞다투어 증언을 하였고 그 참상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같은 동포들 조차 언급하길 꺼렸고 1965년 맺어진 '한일기본조약' 즉 한일협정으로 인해 더욱 거론하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일제강점기 때 악명높던 고등계 형사가 '여명의 눈동자' 속 스즈끼(박근형)처럼 경찰이 되었다는 이야기 만큼이나 금기시 되었던 이야기죠.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본 위안부의 모습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운데 일본은 부정한다.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각시탈'에서는 실존인물 배정자를 모델로한 채홍주(한채아)가 민간업자들과 손을 잡고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정신대를 조직합니다. 개인적으론 이 채홍주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데 배정자같은 인물이 적극적으로 정신대를 조직해 위안부로 끌고갔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자발적 성매매라 우기곤 합니다. 아무리 배정자는 조선인이라기 보단 일본의 충견이고 위안부 문제에는 일본이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더라도 일본은 자신들에게 더욱 유리한 사실을 증거로 내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때로는 글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사실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시대를 살던 많은 사람들이 그때 속아서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노라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니면 그 드라마 속에서 본 일들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일까요. 일본은 지금 국력을 무기로 진실게임을 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어쩌면 일본 정부의 최근 움직임 즉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과거까지 부정하는 이런 망언들은 어쩌면 한국인들의 무대응과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릅니다.
'고노담화'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실이 알려진 것이 20여년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된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하나둘씩 증언자들이 숨을 거두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일본군 위안부'. 우리는 드라마 속에서 본 것 이외에 무엇을 더 알고 있는 것일까요. 어이없고 기가 막히는 일본 정부의 망언을 보며 관심에서 소외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보며 다시 한번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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