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한국인들이 나눠먹는 소울푸드 '한국인의 밥상'

Shain 2012. 8. 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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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부모님도 TV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을 곧잘 보시더니 시골로 이사오고 난 후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사는 지역과 관련된 농촌 프로그램을 선택하곤 하시는데 '여섯시 내고향'같은 프로그램 아니면 '고향극장'같은 농촌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좋아하십니다. 또 가끔은 현실에 맞지 않는 설정 때문에 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시긴 해도 농촌 드라마도 시청합니다. 요즘은 복잡한거 보다 단순한게 좋아 '동물의 왕국'도 재미있다고 하시니 고연령층 중심으로 제작된 그런 프로그램들이 아무래도 편하신 모양입니다. 공영방송 KBS에서 제일 쓸모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이런 것들입니다.

어제는 식사 후 TV를 켜니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을 방영하더군요. 매주 목요일 7시 30분 쯤에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어머니가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배우 최불암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다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지역의 토속 음식들을 조명합니다. 청량산이나 '얼음골'같은 관광지를 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마을을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진행자 최불암이 때로는 일반 가정집을 찾아가 토속 음식을 얻어먹고 은어나 성게같은 그 지역 특산품을 직접 잡아보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밥상. 냇가에서 낚시해서 구어먹는 은어, 은어밥과 은어뽀글이.

어제 경북 봉화를 방문해 은어축제에 참가하고 직접 은어 낚시를 해보더군요 바다에 나갔다가 때가 되면 물을 거슬러 돌아온다는 은어는 냄새를 맡아보면 비린내가 나지 않고 수박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어서 그렇답니다. 뜨거운 여름날에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불을 피워 구워먹는 모습이 참 맛있어 보이더군요. 내친김에 마을 사람들이 잡은 은어를 요리하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산후조리를 위해 많이 먹었다는 '은어밥'이라는 신기한 음식은 저도 처음 듣습니다. 민물고기를 넣고 밥을 만들면 비린내가 날 것 같은데 신기하게 맛있답니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은 후라도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배가 고프기 마련입니다. 더우기 우리 지역에서 보기 힘든 다른 고장의 토속 음식을 맛깔나게 요리하다 보니 저 음식 한번 먹으러 그 고장을 다녀오고 싶다는 욕심까지 납니다. 평소에 민물고기가 비리다며 먹지 않던 저조차 '은어뽀글이'라는 민물매운탕이 맛있어 보이다니 신기한 일입니다. 지난주에는 강원도 물회와 경상도의 물회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며 직접 시식을 하던데 늦은 시간에 바다회가 먹고 싶어 입맛을 다시기도 했습니다. 잔치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식해'라는 음식도 봤습니다.

때로는 바다 위에서 물가자미를 잡아  배위에서 물회를 만들어 먹는 모습도 연출합니다. 고기를 잡느냐 고생한 선원들이 배가 고파  즉석에서 가자미를 채썰고, 재빠르게 물을 부어 시원한 물회를 만들어 그 회에 밥까지 말아먹는게 한국식 '패스트 푸드'랍니다. 그런 유래를 가진 음식이 관광지에서 인기있는 '물회'가 되어 선원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팔리기 시작했답니다. 어부들의 끼니였던 물회가 가정집에서도 만들어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보는 사람의 입맛만 당기는게 아니라 전혀 몰랐던 이야기까지 설명해주니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선원들의 패스트푸드가 인기있는 물회로 탄생하기까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지역 특산품이나 특별한 음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인의 밥상'은 음식의 기원과 풍속을 뒤쫓는 특별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일상을 음식과 연결시킵니다. 때로는 무덥고 뜨거운 여름이 음식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이 음식을 만들며 때로는 그 지역의 풍부한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입맛이 됩니다. 화려한 '맛집'을 방문하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인 만족감이 가득합니다. 시청자들을 위한 '소울푸드'라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외국에는 흑인들에게서 유래한 '소울푸드'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즉 흑인들이 백인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자기들 만의 고유한 음식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프라이드 치킨'같은 것이 대표적인 소울푸드였다고 하는군요. 노예살이를 하던 흑인들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고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던 싸구려 음식을 '소울푸드'라 불렀으나 이제는 '어머니의 맛'이라던가 '고향의 맛'같은 정신적인 충족감을 주는 음식들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는 '김치'같은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빠가사리와 모래무지같은 민물고기를 잡아 생선국수와 어죽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 오랫동안 전통을 지키면서 은어를 제사상에 올리는 사람들, 바위를 모닥불로 데워 쑥을 얹고 은어 훈제를 만들어먹는 사람들. 그들이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어먹는 모습이 참 정겹게 다가옵니다. 특히 대청댐이 생길 때 큰 마을이 수몰되고 16가구만 남아 살고 있는 군북면 사람들의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 짠하게 합니다. 피라미로 도리뱅뱅이를 만들고 금강에서 잡은 올갱이로 무침이나 전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먹는 모습이 한번쯤 나도 나눠먹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련된 음식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나눠먹는, 마음을 채워주는 음식.

생각해보면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런 평범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에서는 '갱시기'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음식이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에 고구마나 콩나물같은 여러 재료를 넣고 찬밥과 함께 끓인 그 음식은 일하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곤 했다고 합니다. 은어국수나 은어죽같은 토속음식이 아니라도 함께 먹기 때문에 특별한 음식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카메라가 조명하는 음식은 그 지역 사람들에겐 고급음식도 아니고 별난 것도 아닌 그냥 삶입니다. 말 그대로 '한국인의 밥상'입니다.

음식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도 존재하지만 정신적인 만족감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모닥불에 바로 구워먹는 은어나 이것저것 넣고 끓여먹는 칼국수가 최고의 맛은 아닐 수도 있겠지요. 흑인들이 튀겨먹던 프라이드 치킨이 처음에는 고급음식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거친 음식이 가족, 이웃사람들과의 정을 돈독히 해주고 삶의 피곤을 싹 씻어줄 만큼 만족스럽다면 그 음식은 정말 최고의 소울푸드일 것입니다. 그런 잔잔한 정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주 목요일 잊지 않고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된 것은 아닐까요. 이웃들의 소울푸드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이 다큐멘터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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