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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앨리스, 차승조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아들이었다

Shain 2013. 1. 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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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 로맨틱 코메디에는 수많은 재벌 후계자들이 등장합니다. '청담동 앨리스'의 찌질한 재벌 후계자 장띠엘샤(박시후)도 그동안 다른 '로코물'에서 보던 재벌 2세들처럼 적당히 매력있고 비현실적인 그런 캐릭터였습니다. 차승조는 프랑스에서 자수성가했다며 자신이 아르테미스 한국지사 회장이 된 건 자신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했고 아르테미스의 가방이 비싸도 사겠다고 덤비는 여성들을 조롱하곤 했습니다. 차승조는 알고 보니 애정결핍증에 걸린, 사랑이라는 환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남달랐습니다. 우리가 알던 현실 속 재벌 아들들이 아니었습니다.

현실 속에서 마주 치는 재벌 후계자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요즘은 '은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할 정도로 평범한 서민들과의 갭이 엄청납니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칠공자'같은 재벌 2세는 엄청난 돈을 하룻밤 향락을 위해 써버리는가 하면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요리조리 피해 군대를 가지 않는 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고 자기 돈이 아닌 회사돈으로 무리한 사업을 하다 망해도 대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상속세 탈세를 위해 범법을 저지르는가 하면 학교에서도 알아서 그들을 대접해준다고 합니다.

차승조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아들에 불과했지만 본인은 몰랐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했던 차승조의 착각은 프랑스에서 고생하던 자신의 그림을 사준 사람이 아버지 차일남(한진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깨어지고 맙니다. 차승조는 한세경(문근영)과 갈등하며 소인찬(남궁민)과의 가슴아픈 이별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던 서민들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자신도 노력해서 성공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재능으로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순진한 차승조의 환상이 현실과 마주치면서 산산조각이 난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림을 사주지 않고 완전히 의절했다면 차승조 역시 그저그런 재능있는 미대생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사실 진짜로 아버지가 관심을 끊고 의절했다고 해도 신인화(김유리)의 말처럼 어릴 때부터 길러진 안목 자체가 달랐을테지만요.

흥미로운 것은 극중 허동욱(박광현)과 차승조는 그림을 누가 사줬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차일남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반면 서윤주(소이현), 타미홍(김지석), 한세경, 문비서(최성준)같은 서민들은 단박에 승조의 아버지라는 걸 알아맞췄다는 것입니다. 많은 시청자들도 그 그림이 팔려 차승조가 살아날 수 있었다는 걸 듣고 그림은 차일남이 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재벌가의 아들에겐 '아버지의 재산'이란 타고난 행운이 있다는 걸 서민들은 다 아는데 정작 그 혜택을 누리는 본인들은 그 행운을 자신의 노력으로 거머쥐었다고 생각하다니 큰 가치관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승조 너에게는 '타고난 행운'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니. 그림을 사준 사람은 '차일남'

이 드라마를 로코물인 동시에 재벌과 서민의 생각과 입장 차이라는 관점에서 시청했던 시청자들에겐 차일남 말고는 그림을 살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청담동 앨리스'를 순수한 사랑 판타지로 생각한 사람들은 그 그림을 산 사람이 서윤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차승조는 세경에게 '가난이 벼슬이냐'며 '가난하고 사랑이 무슨 상관이냐'며 자신의 그림이 팔린 걸 '행운'이라 매도하지 말라 합니다. 애정결핍증 환자로 보였던 차승조의 밑바닥 즉 부유한 재벌 아들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세상같은 건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는 세경의 말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유리천장을 느끼며 젊은 나이에 좌절하고 한득기(정인기)처럼 평생 일한 직장에서 적은 돈을 받고 물러납니다. 그러나 승조는 '행운같은 거 믿을 수 없는' 서민의 삶을 말하는 세경에게 '그런 루저들이나 하는 말은 그만하라'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건 그냥 어리석어서라고 생각하냐'는 세경에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승조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아들일 뿐입니다.

서로 보고 싶어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 생각의 차이는 환상과 현실의 차이 만큼 크다.

그동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진실을 보려하지 않았던 차승조는 '이상한 나라'에서만 살아왔던 진짜 앨리스였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차이 조차 부정했습니다. 그런 차승조의 말과 생각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부자와 결혼하려던 세경의 생각과 대조되어 우리가 '청담동'이라 불러왔던 부유층의 가치관과 성공할 수 없다며 권리를 포기하는 '삼포세대'의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맨살이고 이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가 문제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청자들 중에는 여전히 세경은 '꽃뱀'이며 왜 초등학교 교사나 공무원같은 가능성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디자이너란 허황된 직업을 선택했느냐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입장은 차승조처럼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주제에 윤주와 세경에게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나대는 신인화와 비슷한, 일종의 가진자 중심의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남자 잘 만나 팔자를 고치라는게 아니라 순간순간 돈과 편한 방법에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편견없이 보라는 뜻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진짜 엔딩이 뭐죠? '앨리스의 언니'는 무엇을 뜻할까.

'청담동 앨리스'가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문제작이었던 흔한 로코물이었든 간에 그 이야기는 끝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결말에 맞춰 마지막회를 예측했습니다. 예고편 타미홍의 말대로 진짜 결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앨리스를 깨운 언니가 다시 꿈을 꾼다'는 내용입니다. '꿈 속에서 이상한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반쯤만 믿는다'는 말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아마도 맨몸으로 살기 힘든 현실을 치열하게 마주하면서도 적당히 꿈을 꾸란 뜻일 것입니다. 차승조가 진짜 현실을 보면서도 세경과의 사랑을 시도할 거란 뜻이겠죠.

앨리스의 언니는 앨리스와 달리 책읽기를 좋아하는 착실한 여성이었습니다. 승조도 세상의 '기능론'을 믿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 무조건 비난했고 실망했습니다. '불치병 보다 무서운 가난' 때문에 신데렐라가 되기로 한 세경을 만나지 못하고 장띠엘샤가 그대로 환상 속에 살았더라면 이상한 나라를 탈출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헐리우드 해피엔딩도 아니고 현실적인 결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사랑' 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반반'을 인정하는 이런 결말도 좋지 않을까요(양념반 후라이드 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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