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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유산' 채원과 '금나와라 뚝딱' 몽희, 우리가 이렇게 관대했었나?

Shain 2013. 6. 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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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개정으로 8촌 이상의 동성동본이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은 생각 보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동성동본 간의 결혼을 주제로 한 넥스트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가 발표된 것이 1995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성동본은 결혼이 금지되었고 사촌이나 팔촌같은 인척이 아님에도 본적이 같다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동거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8촌 이상의 동성동본은 혈연으로 볼 수 없고 과학적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어 법적으로 허용이 되고 있지만 요즘도 집안을 따지는 어르신들 중에는 여전히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죠.

'백년의 유산'의 민채원(유진)과 이세윤(이정진) 커플은 과학적으로도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또 법적으로도 춘희와 채원과의 입양 관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아무리 양춘희(전인화)가 친생자 확인 소송으로 이세윤을 친자로 증명한다 해도 결혼이 가능합니다. 재혼한 배우자의 자녀는 자동으로 내 아이가 된다는 전통적인 관념상으론 의붓남매지만 법적으론 의붓남매가 아니란 이야기죠. 이 역시 80년대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 커플이었지만 가능하다는 쪽으로 법이 바뀌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없지만 사회통념상 거부당하는 '의붓남매 커플'


지난 주에 '백년의 유산'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 채원과 세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있느냐는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백년의 유산' 팬분들은 주인공 커플의 절절한 사랑에 공감하고 허락해야한다는 입장이 많을거라 예상은 했고 그 부분은 저 역시 찬성이라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의외로 '반대'표에 투표하시는 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허락할 수 있다' 쪽의 답변이 무려 84%(214표 중 180표)나 됩니다. 부부 중 한쪽이 이혼해야한다거나 허락할 수 없다는 쪽은 20%에 불과합니다.

팬들이 많다는 상황을 감안해도 찬성 반대가 은근히 팽팽할 거라는 예상은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유연해졌나 싶었지만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극중의 세윤 아버지인 이동규(남명렬)는 민채원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이혼녀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허락해준 아버지이지만 자신이 아들로 키운 세윤이 친어머니인 양춘희의 의붓딸과 결혼한다는 수치를 절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려면 차라리 부자 간의 인연을 끊자고 했고 세윤은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가 채원을 납치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꼭 옛날 사람이 아니더라도 결혼은 현실이고 집안과 집안과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결혼은 반대할만 합니다. 젊은 세대의 눈에는 결혼해서 같이 살 당사자가 어른들이 아닌 본인이고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는데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서 안되는 일을 굳이 선택한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또 부부 모두가 양춘희를 '엄마'라고 부른다는게 얼마나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지 또 그런 일이 미래에 부부의 발목을 잡을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세대차이'인 동시에 '경험의 차이'인 것이죠.

'백년의 유산'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듯하다.


'백년의 유산'은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으로 엄팽달(신구) 할아버지의 죽음과 백설주(차화연)의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중병에 걸린 엄팽달 할아버지는 자신의 가업을 자식들이 사이좋게 물려받은 것을 알고 만족하며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를 뒤바꾼 당사자인 백설주는 그 어느 곳에도 기댈 곳이 없어 자살을 선택합니다. 아무리 말이 안되는 결혼이라도 죽음 앞에서 관대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시쳇말로 피한방울 안 섞인 의붓남매가 결혼한다고 해서 누가 죽는 것도 아닌데 허락 못할 이유가 있냐는 뜻이겠죠.

'백년의 유산' 시청자들의 관대한 선택을 보면 한편으론 '금나와라 뚝딱'의 주인공 커플에겐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재벌집 딸인 유나의 대역을 하고 있는 정몽희(한지혜)는 유나가 자신의 잃어버린 쌍둥이라는 것도 모른채 유나의 법적인 남편인 박현수(연정훈)과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정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보기 좋다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극중 몽희의 양어머니인 윤심덕(최명길)이 둘의 심상찮은 낌새를 보고 안절부절하듯 친언니의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죠.

더군다나 유나와 몽희가 친자매라는 것이 알려지면 두 사람의 결혼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처제, 처형과의 결혼은 아내의 인척과의 결혼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출생의 비밀' 따위는 묻고 묻고 또 묻어야 간신히 남의 눈을 속여가며 성립될 수 있는 사이란 뜻입니다. 법적으로 어떻게 성사되는 사이일지라도 또 남의 눈을 훌륭하게 속였다고 하더라도 한 자매가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것은 아무리 관대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불쾌하게 여길 만큼 윤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유나, 몽희 자매와 얽힌 박현수. 친자매들과의 결혼에는 관대해질 수 있나?


때때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해 많이 관대한 것인지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사회의 온도는 그렇지 않은데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들이 많죠. 어쩌면 소위 '막장' 드라마 덕분에 우리 사회가 관대하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때도 있습니다. 드라마가 판타지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느새 드라마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 속의 모티브가 된 연인들은 관대함이 부족한 사회 때문에 남들 눈을 피해 살아야했고 아이를 호적에 올리는 일 조차 힘들어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쉽게 쉽게 넘어갑니다.

그런 의미로 실제 상황에서 '백년의 유산'이나 '금나와라 뚝딱'같은 상황이 등장하면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찬성할 거 같습니다만 드라마 속에서는 반대하고 싶더군요. 실제 사연 속에서는 부족한 관대함이 어째서 드라마에서는 허용이 되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금나와라 뚝딱'의 몽희, 현수 커플도 드라마니까 허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과연 이 문제를 드라마 제작자들이 어떻게 해결할지 결과를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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