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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조여사의 극성스런 캐릭터와 '출생의 비밀'

Shain 2013. 6. 1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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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특정 종교 행위를 풍자하는 일은 드라마에서 쉽게 선택하지 않는 소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출생의 비밀'이 방송 첫화면에 넣은 멘트는 꽤 특이해보이더군요. '이 드라마는 특정 종교와 관련이 없으며 극 중 '조 여사(유혜리)'의 행동들은 철저하게 설정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는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조여사의 행동이 이야기 전개에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굳이 종교 비하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조여사의 캐릭터를 극성스럽게 연출한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죠.

조여사(유혜리)는 첫등장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기억을 잃고 나타난 정이현(성유리) 쪽으론 고개 한번 안돌리고 독실한 종교인처럼 성서를 무릎 위에 놓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성서 위에 올려진 손엔 종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다이아 반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최국 죄인이 제 자식 하나를 거두지 못하고 평화로운 우리 가정에 천둥벌거숭이 하나를 앞세우고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는 내용의 기도는 이현을 앞에 두고 독설을 퍼붓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성서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커다란 다이아반지. 조여사는 어떤 성격일까.

조여사는 반지를 비롯한 보석 치장과 아들 최기태(한상진)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탐욕스러운 성격입니다. 조여사는 자신이 믿는 종교가 굳이 기독교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입으로는 기독교 교리를 들먹이며 죄인과 탕아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지만 조여사는 그 어떤 종교라도 자신에게 행복과 위안을 가져다 준다면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종교가 무속신앙이라면 굿이라도 했을 사람이란 뜻이고 기도의 내용이나 바람도 상당히 속물스럽고 기복신앙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다르게 보면 어떤 '죄'를 짓고 그 죄값이 두려워 신앙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것이 아닌 '복'을 영원히 갖고 싶은 마음에 신앙에 의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최석에게 '천벌'을 운운하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며 며느리 선영(이진)을 닥달하고 정성들여 기도하고 정이현을 거두거나 홍해듬(길소원)을 기태에게 입양시켜 복수를 막겠다고 마음먹는 걸로 봐서 조여사가 이렇게 과장되게 종교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죄를 지었다는 증거이고 욕심의 상징인 것입니다.

'출생의 비밀'에 조여사 외에도 '상징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나치게 '순수'가 강조되어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는 홍경두는 최석이나 기태처럼 돈이 많지도 않고 이현이나 최국처럼 머리가 좋지는 않아도 얼마든지 사람 노릇을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의 오버스러운 순수는 가끔 짜증스럽게 보이긴 해도 돈이나 죄책감 때문에 피터지게 대립하는 극중 인물들과 대조적이란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이현과의 로맨스가 이어지지 않아도 홍경두는 최국이나 이현의 안식처같은 역할을 합니다.

가끔은 짜증날 정도로 오버하는 캐릭터 홍경두.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알츠하이머를 앓는 최석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캐릭터입니다. 소년시절 혹은 10년전의 일을 되새김질하는 그의 기억력은 천재적인 형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해 힘들어했던 과거와 형이 상속권을 주장할까봐 경계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최석의 비정상적인 퇴화는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 아주 작은, 그러나 인간적인 질시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인듯합니다. 이복 형인 최국은 정작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최석은 평생을 아파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죄책감에 시달리며 이현이 자신에게 '우월감'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선영의 심리가 최석의 비밀이자 이 드라마의 핵심인지도 모릅니다. 객관적으로 선영이 이현을 질투할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주처럼 자란 선영은 학비 걱정, 아르바이트 걱정 따윈 할 필요가 없었고 원하면 언제든지 과외 선생을 구해주는 부모에 넉넉한 형편까지 남부러울 것 하나 없었습니다. 그런 선영이 서점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죽자 학비가 없어 최국을 찾아가야했던 이현을 부러워했습니다.

외국 유학까지 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영은 정이현을 배신했다는, 어쩌면 한때의 질투나 시기로 넘길 수도 있는 일을 제때 사과하지 못하고 이현의 기억이 돌아올까 전전긍긍합니다. 천재적 능력을 가진 이현을 질투했고 그 남자를 빼앗았다는 죄로 무서운 시아버지와 냉정한 남편, 극성스런 시어머니와 살며 말라죽어가는데 그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해 앓기만 합니다. 차라리 털어놓으면 이현은 금방 받아줄텐데 이현은 어쩐지 남보다 위에 있는 존재처럼 자신을 받아들인다는게 못내 싫습니다.

결국 행복의 씨앗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진정한 '출생의 비밀',

이현과 최국 입장에서는 그들이 가진 특별함이 불행의 시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국은 천재인 대신 사회적 능력은 결여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최석은 어린 시절부터 가지지 못한 천재적인 능력 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증명하려 기를 썼고 자신의 아들인 기태가 최국의 딸인 이현 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일 때 만족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이현에게 열등감을 느낀 선영처럼 최석과 최기태는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최국과 이현이 갖고 태어난 것이 없어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똑똑하지도 않고 맨날 사기만 당하고 가진 것없는 홍경두가 세상 그 누구 보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아는 것처럼 '출생의 비밀'은 결국 타고난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데 있다는 뜻인 듯합니다. 최석이나 기태, 선영은 자신을 최국과 이현에게 비교하면서 불행하다고 느꼈습니다. 정작 행복의 씨앗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안에 숨겨져 있는데 그 부분을 깨닫지 못하고 이현과 최국을 바라보다 불행해진 것입니다. 총 18부작인 '출생의 비밀'도 벌써 마지막회가 다가오고 있더군요. 그들의 복잡한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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