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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장태하를 제외한 모두가 슬픔을 감추고 살았다

Shain 2013. 7. 1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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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의 조윤희가 맡은 우아미 역은 아무래도 비호감이었던 모양입니다.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에서 우아미가 두 남자주인공을 휘어잡을 캐릭터는 아닌거 같다는 말이 많더군요. 일부에서는 자신을 산부인과로 데려다준 형사에게 공짜로 과일쥬스를 사달라 할 정도로 뻔뻔한 캐릭터라며 '민폐형' 주인공이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컵밥 포장마차 주인이라는 설정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드라마의 분위기를 확 뒤집을 정도로 엉뚱한 캐릭터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아미가 등장하면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의 드라마가 레코드 판이 튀는 것처럼 묘하게 바뀌긴 하더군요.

굴지의 재벌 총수로 한 집안의 아버지로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장태하.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 드라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비극을 감싸안으려면 우아미 정도의 성격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같긴 하더군요. 우아미는 공기찬(양진우)과의 결혼식을 앞둔 임신 5개월의 주부로 검찰사무관 시험을 준비중입니다. 공기찬과 신혼집을 꾸리기 위해 노량진에서 컵밥 장사를 하던 중이던 우아미는 범인의 뒤를 쫓던 하은중(김재원)과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장은중(기태영)과도 만나게 되었죠. 아무래도 남편 공기찬이 장태하(박상민)의 사주로 죽게 되면서 우아미도 이들의 비극에 함께 휘말리게 될 것같습니다.

공기찬과 장태하의 사연을 제외하면 우아미는 하은중의 비극과는 관련없는 인물입니다. 하은중은 친아버지 장태하가 지은 죄 때문에 하명근(조재현)에게 유괴되었고 두 아버지의 죄값으로 인해 고통받게 되는 역입니다. 그런 하은중을 상대하는 캐릭터가 평범하지는 않겠죠. 하은중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끔찍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과거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은 자신의 욕심으로 윤화영(신은경)의 재산을 빼앗고 건물을 붕괴시킨 장태하인데 드라마 속에서 행복한 유일한 사람은 장태하 뿐인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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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희대의 살인마 도척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마천은 백이 숙제같은 착한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살다 죽었는데 사람을 수없이 괴롭히고 죽였던 도척은 호의호식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죽을 때도 아이같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죽었다며 하늘을 원망합니다. 장태하는 자신의 아들을 하명근에게 유괴당하고 잠시 잠깐 고통받았지만 되돌아온 지금은 되돌아온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울 꿈까지 꾸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죄값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와 명예는 멈출줄 모르며 커져가고 있습니다. 반면 장태하로 인해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그 때문에 죄를 짓고 단 하루도 편안히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폐캐릭터란 평가까지 받은 우아미의 첫등장. 얼마나 큰 비극을 감싸주려고.

하명근은 장태하에게 복수하려다가 죽은 아들 건영처럼 자신에게 장난감 총을 쏘며 아빠라고 부르는 하은중을 유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어린 은중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눈물짓고 때로는 은중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원흉 장태하와 죽은 아들 건영 때문에 분노하지만 윤화영의 성북동 집엔 하은중이 돌아갈 자리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곤 자기 아들로 키웠습니다. 하명근은 '유괴'라는 천인공로할 죄를 지은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은중의 엄마인 윤화영이 아직도 수면제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는 걸 똑똑히 알게 되었기에 여전히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괴롭고 힘이 듭니다.

윤화영은 윤화영대로 고주란(김혜리)과 장태하에 대한 복수심으로 아들을 바꿔친 자신의 죄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본 낯선 아이의 유전사 검사 결과를 바꿔치기하고 그 아이를 장은중으로 키우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마다 그 아이는 은중이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합니다. 원수나 다름없는 고주란의 딸 주하(김규리)를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마치 처음부터 진짜 가족인양 장태하, 장주하와 함께 식사하는 윤화영은 매일매일이 힘겨워 보입니다. 생판 남의 아이가 진짜 은중이가 차지할 부와 명예를 누리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어딘가에 버려진 진짜 은중이 떠올라 마음이 괴롭습니다.

은중을 통해 괴로움과 행복을 동시에 맛본 하명근은 윤화영이 여전히 은중을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태하의 아이로 키워진 은중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가끔씩 냉정하게 자신을 내치는 어머니 윤화영을 보며 불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88년도에 실종된 어린아이의 몽타쥬 사진을 팩스로 받아보는 어머니는 대체 무슨 비밀을 감추고 있는걸까 기억을 잃어버리고 '금만복'이란 이름의 고아로 살던 은중을 어머니는 내 아들이라며 큰 집에 데려갔지만 가끔씩 자신이 친아들이 아닐거란 예감이 듭니다. 재벌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를 가진 은중이 행복하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어머니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윤화영의 자리를 노리다 섹스 비디오를 유출당한 고주란은 어린 은중을 죽었다고 거짓말했던 죄로 딸까지 빼앗기고 맙니다. 윤화영의 호적에 오른 주하는 고주란을 부정하며 공석이든 사석이든 윤화영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장주하는 장주하대로 어릴 적부터 완벽하게 아들 노릇을 하라는 고주란의 성화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자라야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덜 익힌 고기를 먹으면서 장태하의 딸이라는 점을 티내고 사업적 성공에 전전긍긍하며 속이 탈 때 마다 어머니의 차를 타고 과속운전을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라곤 하나도 없는 주하가 피를 나눈 가족에게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고주란까지 부정하며 장태하의 딸로 사는 주하는 불안해하고 장은중은 가끔씩 냉정한 윤화영 때문에 상처입는다.

장주하의 캐릭터는 어릴 때도 특이했습니다. 처음 본 윤화영에게 어머니 때문에 죄송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도리에 밝았고 은중을 잃고 반쯤 미친 윤화영을 큰어머니라 부르며 불쌍하게 생각했으며 다시 돌아온 은중에게도 다정했습니다. 똑똑하면서도 못된 성격은 아니라서 엄마 고주란이 시키는대로 아들 노릇을 했던 주하입니다. 회사일은 꼼꼼하고 완벽하면서도 사석에서는 실수투성이고 과속운전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만큼 속이 썩어문들어진 성인 장주하 캐릭터가 흥미롭더군요. 개인적으론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한 배역 중 하나입니다.

첫방송부터 지금까지 '스캔들'을 보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하필 이렇게 엄청난 출생의 비밀과 비극을 셋팅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은 장태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에 가장 힘들고 괴로워할 아버지는 장태하가 될지도 모르죠.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고 혼자 웃고 있지만 그 누구 보다 믿었고 사랑했던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에게 배신당할 아버지가 바로 장태하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혹시나 이 엄청난 슬픔과 고통은 장태하의 최후를 위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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