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목소리가들려, 반쪽 해피엔딩이 보여준 세가지 법적 논란

Shain 2013. 8. 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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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마지막회 방송은 여러모로 뜻깊었습니다. 아홉살 나이차는 연상연하 커플 장혜성(이보영), 박수하(이종석)의 판타지 로맨스로서는 완벽한 해피엔딩이었지만 그 둘의 가족을 죽이고 11년 동안 괴롭힘 민준국(정웅인)은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으니 우리가 아는 권선징악적인 해피엔딩과는 차이가 있었죠. 거기다 국선전담 변호사 차관우(윤상현)는 민준국의 감형을 위해 열심히 변호했습니다. 몇 건의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 '우리'라는 말에 위로받고 지난 날을 인정하고 편안해하는 모습은 살인자가 죄값을 받아야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은 섭섭한 결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판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민준국. 차관우와 함께 하는 그의 법정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너목들'은 다큐가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으나 마지막회에서 꽤 많은 법적 논란거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박수하가 장혜성을 칼로 찌른 행위는 민준국을 살해하려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검사 서도연(이다희)이 충분히 기소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민준국은 여러 건의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 모두를 다 까발려야하는거고 박수하는 범인 체포에 공을 세웠고 법에 피해를 받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작은 범죄를 덮어줘야한다는 온정은 감정적으로는 공평해도 법적으론 부당한 일이 될 수 있었죠.

그러나 드라마는 서도연 검사의 재량으로 박수하를 기소유예했습니다. 민준국을 죽이려했다는 의도를 덮어주고 장혜성이 상해를 입은 건 사실이나 살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몰아간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과 과정을 모두 아는 검사가 김공숙(김광규) 판사와 변호사들의 말을 듣고 일종의 '융통성'을 발휘한 것인데 사실 서도연 검사, 장혜성, 차관우 변호사는 서로의 가정사를 훤히 꿰고 있는 가족들이니 또 박수하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실제 상황에서 이런 재량이 남용되면 당연히 문제가 됩니다.

법에는 당연히 심장이 있고 감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라면 논란이 될 수 있는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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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법이 범죄 행위에 대한 '보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냐 하는 오래된 논란입니다. 영화 '모범시민(2009)'은 딸과 아내를 죽였음에도 응분의 대가를 치루지 않은 범죄자에 대한 분노로 검사와 범죄자에게 보복하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형제도 부활'을 외치는 이유 중 하나도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가벼운 처벌을 받고 감옥에서 편하게 사는데다 출소 후 같은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법감정' 보다 법이 너무 약하다는거죠.

반면 노르웨이같은 나라의 교도소는 범죄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으로 유명합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도 최고형이 20년을 넘지 않으며 죄수(학생이라 부른다는군요)들은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교도소 생활에 넓은 방에 설치된 평면TV, 도서관, 레크레이션 시설, 방갈로, 녹음실 등이 마련된 교도소에서 최대한 편안한 생활을 누리다 출소합니다. 이런 시설은 놀랍게도 효과를 보여 노르웨이 범죄 재발율은 20퍼센트(16% 정도)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교도소인데다 우리 나라와 사회, 경제 수준이 다르니 단적으로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의미있는 수치죠.

'민준국과 똑같이 보복하는 인간이 되기 싫으니까'라며 사형을 반대하는 장혜성과 박수하.


'너목들'의 장혜성과 박수하는 민준국이 사형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민준국이 억울한 마음에 복수를 꿈꾸며 살인을 저질렀던 것처럼 자신들도 복수를 위해 그를 죽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겐 감히 범죄자들에게 '인권타령'한다며 비난받을 일인지 몰라도 두 사람은 법적 처벌의 목적이 '보복'이나 '복수'가 아닌 다른 것에 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덧붙여 민준국은 차관우와의 약속을 지켜 감옥 안에서 자백하지 않아도 될 죄(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심장수술을 했던 교수도 민준국이 죽인듯합니다)까지 자백합니다.

세번째는 '변호제도'에 대한 논란입니다. 극중에는 법의 무자비한 칼날에 휘둘려 인생을 망치거나 망칠 뻔한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극중에서 자주 등장한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은 천칭저울로 죄의 무게를 공평하게 달고 법의 칼날을 단호하게 휘두른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법은 공평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처벌만 강력한 경우가 생각 보다 많습니다. 서대석(정동한) 판사같은 사람이나 성공에 목마른 검사는 무조건 범죄 사건 자체를 들여다보기 보다 실적 올리기에 바쁘고 변호사는 수임료에 눈독들이는 현실 속에서 '민준국'같은 삐뚤어진 범죄자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우리라는 말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라서요' 흉악한 범죄자에 대한 답은 사형이 전부일까.


변호제도는 단순히 억울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왔고 신상덕(윤주상) 변호사처럼 황달중(김병옥)이나 폐지줍는 할아버지를 잘 돌봐주는 변호사를 훌륭한 변호사라고 했습니다. 고성빈(김가은)은 장혜성의 변호가 아니었으면 살인 미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목들'은 변호제도의 의미를 한차원 더 발전시킵니다. '우리'라는 표현에 감동하는 민준국의 모습에서 그랬듯 세상 모두가 꺼려하는 범죄자의 목소리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바로 변호사라는 것입니다. 장혜성이 수화를 배우는 이유도 바로 의뢰인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서도연의 말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흉악한 범죄자를 개미오줌 만큼도 불쌍해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만큼 고통받으라고 합니다. 아무리 범죄 내용을 읽어봐도 사형받아 마땅한 범죄자들이 더 많고 저 역시 너무 가벼운 처분을 받는게 아닐까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는 경시하면서 범죄자에게는 어찌 이리 관대한지 판결내린 판사와 변호를 맡은 변호사까지 미워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힐링이 공감과 이해에 있듯 범죄자에 대한 교화와 치료도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모두가 외면한 의뢰인의 목소리를 들어줄 단 한사람은 변호사임에 틀림없구요.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줄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드라마의 메시지.


세상엔 분명 감정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창원 교수가 자신과 신창원의 차이를 설명하듯 범죄자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적 유대감을 상실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찰대 면접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이 없었다면 나도 민준국처럼 복수에 눈이 멀어 짐승이 될 수도 있었다'는 박수하의 발언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그런 상실감이 잃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죠.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너목들' 18회 방송 동안 박수하 역의 이종석이 꽤 귀엽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장혜성 보다 아홉살이나 어리다는 걸 알고 나니 달달한 로맨스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더군요(역시 이런게 취향입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회적 유대를 잃고 범죄자가 된 민준국이란 캐릭터에 흥미가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황달중의 사연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구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회의 이면을 짚어줬다는 면에서도 꽤 의미있는 드라마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게 본 드라마였고 또 마지막회 방송 후에 결혼소식 발표한 이보영씨 결혼 정말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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