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목소리가들려, 법의 현실은 서대석 서도연의 공소 취소는 판타지

Shain 2013. 7. 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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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본 드라마 중에 이렇게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드라마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법정 안의 법리 공방부터 법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사람들까지 우리 사회가 '정의의 여신상'이라 부르는 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표현한 드라마는 간만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쓰려는 포스팅 내용과는 별개의 내용이라 다시 작성할까 하지만 '너의 목소리가 들려' 황달중(김병옥) 사건에 모델이 될만한 억울한 옥살이가 실제 존재했듯 민준국(정웅인)과 심장병수술 그리고 수하아버지 박주혁(조덕현)과 유사한 사례(살인 사건이 아니라)도 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드라마는 또 처음입니다.

26년 만에 실질적인 무죄 판결을 받아낸 황달중. 서도연의 공소취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며 오열하는 서도연(이다희) 검사의 연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늘이나 다름없던 아버지 서대석(정동환)이 친아버지 황달중의 억울한 옥살이를 방조한 당사자라는 진실에 서도연은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이 황달중의 딸이 맞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통지받은 서도연은 아버지의 공소장을 작성하는 자신의 상황에 냉정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이 열리기전 감옥으로 황달중을 찾아갔고 서도연의 나이만 듣고도 자기 딸임을 알아보는 황달중 때문에 서도연은 한번 더 쓰라린 가슴을 달래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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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26년간 실형을 살던 황달중에게 딸을 만나는 것은 유일한 소원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해하며 생일선물로 산 크레파스를 만지작거리는게 그의 소일거리였죠. 그러나 황달중은 신상덕(윤주상) 변호사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딸을 만나고 아빠라고 밝히는 것을 반쯤 포기하는 부성애를 보여줍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딸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서도연도 서도연이지만 황달중에게도 서도연이 검사로서 자신을 심문하는 법정이 마음아프고 지옥같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기뻐하고 숙연할 수 밖에 없었던 황달중의 무죄 판결. 실제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일부에서 지적한대로 딸과 아버지가 법정에서 만난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 설정은 어떻게 보면 '법정 신파극'일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고 합리적이어야할 법정에 부성애와 효심이 개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검사와 피의자가 친족 간일 경우 기피 신청을 하거나 제척 신청을 해서 떨어트려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굳이 자신의 아버지의 죄를 딸이 공소하도록 설정한 건 아무리 냉정한 법관이라도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한 옥살이의 당사자라면 사법의 칼날에 피해입은 그 사람이 네 아버지라면 죄를 물을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질문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법리적으로 황달중이 유죄란 것을 알지만 황달중의 상황은 단순하게 법령으로 해석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입니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아내 정영자(김미경)에 대한 분노는 인간이 감내하거나 '용서'를 강요할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배심원들이 장혜성(이보영)의 변론을 듣고 만장일치로 황달중의 무죄를 결정한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법의 잘못된 판단에 저당잡힌 한 사람을 동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굳이 서도연이 황달중의 딸이어야 하는 이유는 법복을 입은 서도연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못할 짓이라면 다른 피의자에게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법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에게 해줄 수 있는 보상은 고작 사과 뿐인데 그마저 힘든 현실.


미국 사람들 모두가 배고프고 힘겨웠던 대공황 시절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는 손녀에게 먹일 빵을 훔친 할머니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할머니가 빵을 훔쳐야하도록 방치한 도시의 시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자신이 벌금 10달러를 내겠다고 합니다. 또 방청인들에게도 50센트씩 벌금을 내게해 그 돈을 할머니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후에 뉴욕시장이 된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의 이 명판결은 법은 법대로 지키되 '법에도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법조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단 것이죠.

'나는 잘못한게 없다'는 서대석의 외침.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법은 이렇다.


장혜성에게 '나 좀 살려달라 우리 아빠 좀 구해달라'며 울부짖던 서도연의 마음이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법리적인 유무죄 여부 보다 검사로서 자신이 입을 손해 보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억울한 한 아버지가 원하는 '무죄' 선언을 듣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법이 보여줘야할 인정이고 법조인들이 해줘야할 의무라는 것을 말이죠. 동료 검사 잔디머리(장희웅)의 법리 해석을 존중하지만 김공숙(김광규) 판사와 국민참여재판단의 법감정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공소 취소'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는 것도 '극적인' 방법이었겠죠. 안타깝게도 이 모든 상황 설정이 판타지이지만 말입니다.

현실세계의 '억울한 옥살이'는 온정으로 처리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법의 잘못을 인정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인정받고 나서도 손해배상청구에 시간이 걸립니다. 항소에 항소를 거듭해 대법원 판결까지 가서야 무죄를 확정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있고 재심 기간이 자꾸 늦춰져 실제 황달중처럼 중병에 걸린 사람도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억울한 판결임을 인정받고 갔으면 좋겠지만 조작이 의심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죄 판결이 날지 의심스런 사건도 있습니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황달중의 짧은 시간.


서도연은 내 가족에 대한 판결이란 입장에서 공소 취소를 결정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법은 '나는 잘못한게 없다'고 항변하는 서대석 쪽일 것입니다. 법의 빈틈이나 잘못된 판결을 감추고 싶어하고 끝끝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나는 '법적으로 잘못 없지만 도의적 책임이 있다'같은 말장난으로 상황을 모면하겠죠. 가끔씩 냉정한 눈으로 서도연을 바라보던 서대석은 '권위적'이란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법정의 재판관이 현실의 재판관인 것처럼 어린 장혜성(김소현)을 판결하고 권력을 누린 사람이니 말입니다.

도연에게 모든 전말을 듣게 된 아내(장희수)가 서대석을 떠난 것처럼 사람들이 법을 멀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속어가 생긴 것도 법감정과 법이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이겠죠. 좀 더 법과 대중이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아무튼 황달중과 서도연의 부녀놀이는 참 흥미롭게 봤습니다. 물론 장혜성은 여전히 재수없는 계집애 도연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나 봅니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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