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종영된 드라마 '금나와라 뚝딱'에는 아내를 셋이나 둔 가장 박순상(한진희)이 등장합니다.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아내는 이혼한 전처 한 사람 뿐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속칭 '첩'이라 불리는 여성들이지만 법적으로는 두 첩의 지위도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박순상과 한집에 살면서 공식적인 아내 노릇을 한 첫째 첩 장덕희는 박순상이 본처와 이혼했기 때문에 사실혼 관계를 주장할 수 있지만 다른 집에 사는 둘째 첩 민영애(금보라)는 본처가 있건 없건 아내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상황이죠. 한 남자의 세 아내가 형님 형님 하며 서열을 세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런 법적 지위 때문인가 봅니다(웃음).
일부일처제를 지향하는 우리 나라에서 '첩'은 어딘가 음침하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존재처럼 비춰집니다. 특히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전설이나 이야기 속 첩들은 하나같이 '착한' 본처를 괴롭히고 모함하는 사악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첩을 둔 주체가 남편이란 점과 첩이 본처를 제거하려는 원인이 본처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불안한 처지 때문이란 점을(왕실이나 양반가나 첩들의 생사여탈권을 본처가 쥔 경우가 많았죠)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악행이지만 본처나 첩은 죄를 받아도 남편이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에 방송중인 '상속자들'에 등장하는 제국그룹 김남윤(정동환)은 본처 정지숙(박준금)과 첩 한기애(김성령)와 한집에서 삽니다. 몇해전 '로맨스타운(2011)'에서 본처와 첩이 한집에 사는 내용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가정의 불문율로 여겨지던 일부일처제도 돈만 있으면 쉽게 그 개념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한 집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첩의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첩들끼리 우애를 나누는 눈물겨운 장면도 연출되는 거겠죠.
우리 나라 속담 중엔 '첩'에 대한 것들이 많습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시앗 죽은 눈물이 눈 가장자리 젖으랴,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 겉보리를 껍질째 먹어도 시앗과는 한집에 못 산다 등 본처와 첩의 앙숙관계를 제대로 묘사한 이 속담을 보면 70, 80년대 드라마에서 첩들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착한(?) 남편을 유혹해 가정을 파탄나게 하고 본처를 고생시키는 악역이 '첩'이라는 캐릭터의 고정 이미지였고 지금도 그 부분에는 거의 변함이 없죠.
법적인 아내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여인과 부부생활을 하는 것을 '중혼적 사실혼' 관계로 봅니다.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부부나 다름없는 것으로 인정되는 '사실혼' 관계와는 다르게 '중혼적 사실혼'은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합니다. 드러내놓고 어떤 유부남의 내연녀 역할을 할 수 없기에 아무 죄없는 자식들까지 남의 호적에 오르거나 법적인 어머니의 이름이 달라 마음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기존의 '첩' 캐릭터는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한, 슬픔과 어두움을 모두 담은 캐릭터였죠.
'청춘의 덫(1998)'이란 드라마에는 남부러울 것없는 부자집 아들 영국(전광렬)이 등장합니다. 알고 보면 영국은 두 어머니를 둔 복잡한 아들입니다. 영국의 아버지 노회장(김무생)의 본처인 한여사(김용림)는 공식적인 노회장의 본처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집안살림을 단속하는 여성이고 친어머니인 이여사(정영숙)는 영국의 친어머니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만 남편의 장례식장에도 갈 수 없는 첩이란 생각에 고통받고 늘 우울한 얼굴로 자식들을 슬프게 합니다. 노회장의 발인식 날에도 술을 마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드라마 속 첩들의 캐릭터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SBS 특집극 '곰탕(1996)'은 '첩'과 '본처'의 관계가 남편을 사이에 둔 앙숙이 아니라 동반자 관계로 묘사한 흥미로운 드라마였습니다. 부자집 아들이지만 난봉꾼인 남편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게 어떻게 채봉(서혜린)의 탓일까요.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한채 집안을 꾸리고 곰탕으로 생계를 잇게 된 주인공 순녀(김혜수)는 단맛, 쓴맛 모두 우려내는 진한 곰탕과 남편의 첩까지 자매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듯합니다.
특이한 건 본처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여겨져왔던 '첩'의 역할 변화입니다. 채봉은 자신의 부르튼 발을 손수 치료해주고 닦아준 순녀를 형님이라 부르며 순녀를 위해 성매매를 하고 나쁜 사람들이 추근거릴 땐 대신 앞을 막아서는 등 남편 보다 훨씬 더 순녀를 챙겨줍니다. 어떻게보면 첩으로 살면서 본처의 속을 썩인 그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외로운 순녀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줍니다. 나중에 치매에 걸려 그녀들의 남편 인성이 찾아왔을 때도 남편은 알아보지 못해도 순녀만은 잊지 않습니다.
아무리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보호한다고 한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묶어놓을 수 없는 한 혼외자와 '첩'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묘사되는 '혼외자'는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그들의 입장 때문에 삐뚤어진 성격이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바라는 탐욕스런 성격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도덕적 지탄의 대상은 온전히 부모가 되어야하지만 부모 세대의 갈등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금나와라 뚝딱'에 등장한 세 형제는 부모들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즘은 '첩'의 위상이 변하다 못해 '상속자들'에는 정략결혼한 본처 보다 남편을 더욱 사랑한다는 첩 한기애는 주인공 못지 않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합니다. 첩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기존 입장에서 본처가 오히려 가해자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동거녀'이지만 남편과 한집에 살며 엄마행세를 하는 첩과 재산 상속을 노리는 두 이복형제, 독특한 그들의 가족관계는 등장인물들의 발목을 잡을 갈등요소임에 분명하지요. 이런 경우라면 오히려 일부다처제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제도로 해석이 됩니다.
계모가 무조건 사악하고 못됐다는 게 편견인 것처럼 첩이 무조건 악녀이고 가해자라는 것도 어떤 경우 편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삼각관계로 아웅다웅하는 남녀들이 있는 것처럼 주인공에 비해 '어른'인 부모세대가 갈등하는 모습도 어떤 의미로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을 원죄를 지고 태어난 죄인처럼 묘사하는 분위기만은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첩'들의 위상이 변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사연은 점점 더 발전해가는데 어쩐지 자식대까지 이어진 우울함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가정의 개인사만으로 힘든데 자기 몫이 아닌 죄책감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없어졌으면 좋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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