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다시 불거진 맥도날드 할머니 된장녀 논란을 보며

Shain 2013. 10. 1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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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돌아가신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 만으로 고인의 가정사와 성격이 파헤쳐지는 것도 옳치 않거니와 평온해야할 한 개인의 죽음이 이런식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적은대로 저 역시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미디어가 힘없는 한 개인(누군가는 고학력자이니까 약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봤습니다만 그건 좀)을 끝까지 다르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어떻게든 짚고 넘어갈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삭제를 고려 중이라 웬만하면 이 글도 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요즘은 맥도날드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외국인까지 불만인 모양 이더군요. 도대체 맥도날드 할머니는 뭘 그렇게 큰 죄를 지었길래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기사가 나고 실명에 전직에 학력에 부모에 동생하고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생활까지 까발려져야했던 것일까요. 인터넷 포털에 특정 이슈를 한 방향으로 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도 '된장녀' 논란은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어제 올라온 경향신문의 '맥도날드 할머니 길에서 구한 이는 벽안의 외국인'이라는 기사는 한국을 방문한 한 젊은 외국인과 길에서 생활하던 맥도날드 할머니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었고 어떻게 보호소에 가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으로 친분을 나눴는지 짤막하게 적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신이 내게 유일한 가족'이라고 했던 할머니의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타인의 도움을 거부한다고 알려졌던 맥도날드 할머니의 마지막 우정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거지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다 싫다고 거절하던 할머니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과는 대화도 허용하고 도움도 받았다는 사실이 영어사대주의이고 된장녀 기질이다 이런 이야기인데 그런 씁쓸한 댓글과 더불어 그동안 잘못 알려진 여러 이야기들이 동시에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댓글들 중에는 맥도날드 할머니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폭행하는 다른 할머니를 헷갈려 적은 글들도 있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거부했다는 막연한 추측도 다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한 여러 기사. 왜 진실은 호도되었는가?

사실 맥도날드 할머니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에는 잘못 알려지거나 편견 때문에 과장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관심있는 분들은 잘 아실 것 입니다. 일단 방송 출연이나 기사화 자체가 본인의 의도 보다는 누군가의 알림으로 이뤄진 것이었고 할머니가 한 연예인을 폭행했다는 기사도 사실 와전된 것이라는 증언이 많습니다(경향신문 '맥도날드 할머니 폭행사건’의 진실은

). 지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도움을 거부한 것은 맞지만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외국인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아이나 주부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면 '아이가 귀엽다'며 대화를 나눈 것도 사실입니다.

할머니가 여러 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주장도 제 생각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할머니의 가족들이 할머니를 싫어하고 말고는 그 분 개인의 가정사이이니 '민폐' 운운하는 자체가 타인들의 몫이 아니고 맥도날드 매장에 민폐를 끼쳤다는 것 역시 맥도날드 사장 측에서 '우리 매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데 대해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쿨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 그러니까 맥도날드 회사 측에서는 자신들의 매장엔 누구나 올 수 있다며 할머니가 폐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남들이 그 업체를 걱정해준 셈입니다.

할머니가 한국인을 무시하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도 맥도날드 매장에서 싫어하는데 민폐를 끼쳤다는 것도 누군가를 마구 폭행했다는 것도 모두 잘못 알려진 사실이며 한 개인의 '비밀'에 해당하는 사생활을 두고 잘못이라 운운하는 것도 부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방송에 출연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를 잘 안다고 생각했고 쉽게 '된장녀' 타입이라며 단정했지만 그 할머니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났고 왜 혼자 있기로 결정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스테파니 세자리오 씨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할머니가 대화하길 좋아했다는 점 입니다. 남들이 다 알고 싶어하는 개인사나 혼자 사는 이유나 맥도날드에서 잠을 자는 이유 보다 사회, 정치 분야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즐겨했고 실제 그런 인터뷰를 했던 기자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음을 알 수 있습니다(머니투데이, 맥도날드 할머니 '1년전 스타벅스 갔다가'). 할머니가 바랐던 것은 밥도 옷도 잠잘 곳도 아닌 속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가 현대사회는 고학력 사회라 배고픔만 채워주던 복지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하더군요. 물론 아직도 굶주려 죽는 많은 아이들과 노인들이 있지만 배가 고파서 죽는 것 보다 혼자 죽어서 아주 오랜 후에 발견되거나 외롭다는 고통 속에서 죽거나 사람들과 단절된 채 죽는 것을 훨씬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의외로 식사나 옷같은 것으로 도움을 주려고 할 때 거절하는 노인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런 도움을 받아야하냐며 강력한 거부감을 보이시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냐며 화를 내는 분들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대화를 원했다.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사생활이 아니라 이 부분 아닐까요?

 

홍세화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나눈다(1999)'에서 홍세화씨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한국 여성들에게 남긴 조언이 기억납니다. 프랑스 공원에서 홀로 쉬는 할머니들 중에 눈빛이 어진 할머니들과 친구가 되어 할머니의 외로움을 위로하고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노인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란 충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네티즌들의 기준대로라면 혼자 사는 프랑스 할머니들은 대부분 된장일거에요.

몇번을 강조하지만, 맥도날드 할머니의 학력, 성격이나 가족사는 결코 중요한것도 알아야할 것도 아닙니다. 돌아가신 그 분을 만나서 대화 조차 나눌 수 없는 지금은 더더욱 이야기할 주제가 못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호도나 잘못된 소문도 본질과 어긋난 문제입니다. 이제는 맥도날드 할머니가 아니라 홀로 죽게 되는 인간의 서글픔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혼자 남게될 인류를 위해서 발전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닐까 요. 한 외로운 노인의 죽음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 말고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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