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좋은 말로, 그냥 대화합시다 - 거친 말로 호소할 순간은 따로 있다

Shain 2008. 2. 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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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화제가 된 블로거 다툼을 두고 한참 생각해 보았다. 블로그 간 다툼이 이어지는, 웬만한 주제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대화 소재로 쓰지 않는 문제들이다. 과격한 사람들끼리는 큰 다툼이 날 수 있는 주제기도 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대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문제기도 하다. 이런 문제일수록 지적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그 방법은 조심스러워야할 것이 틀림없다.

나 역시 어떤 말투의 거만한 태도를 가진 블로거들은 나도 당장 싫은 소리를 내뱉고 싶을 만큼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모 정치인과 다수를 빚대어 남의 삶을 신기하고 특이한 듯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어지간히 머리끝까지 화가 나지 않은 이상 참는다. 말같잖은 소리를 읽게 만드는 블로그는 주제가 공감 가더라도 되도록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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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자신이 하는 말이 인신공격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댓글이 넘쳐나면 주인장과는 상관없이 방문할 곳이 못된다. 덕분에 방문하는 블로그의 주제가 한정되는 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몸이 장애가 있거나 아파서는 안된다는 사람이나 결혼을 늦게 하고 싶어하는 여성에게 당연스레 언어폭력을 내뱉어야 한다고 믿는 인간형의 글을 굳이 읽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건 '생각이 다르다'는 차원은 이미 건너간 문제다. 가장 황당한 건 이 현상에 분노하는 사람이 적다는 거다.


날카로운 비판이나 감정적인 기술과도 다른, 노이즈 마케팅, 악플

격렬하게 욕하고 표현하고 행동하는 '부정적 대화법'을 발견한다. 어떤 주제가 '옳고 그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시끄러워야 사람들이 모인다. 혹은 남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신경쓰지 않기도 한다. 이건 주제의 옳고 그름, 그러니까 가치관과는 상관이 없을 수 있다. 피가 난무하는 영화를 시각적으로 훌륭한 오락거리로 간주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일까.

참고로 '모종의 부당함'에 대해 비판과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항상 동의하고 있다.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어떤 현상을 비판하는 자세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사회현상 비판은 효과적이고 이성적이고 날카로울 수록 지향할 자세 아닐까 싶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는 것'도 목적없는 비난은 확연히 구분되야할 때가 있다.

반대로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기술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말도 아니다. 블로그는 개인의 기록이고 항상 남들 만을 향해 열려 있는 곳은 아니니 사적인 감정, 유머, 타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감정을 기술한다고 해서 '나쁘다'라고 할 수 없다. 타인의 공감이나 동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틀린 블로그'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다. 자신의 감정을 기술하고 해소하는 자체가 문제될 리 없다. 다만 표현 수위와 방법에 따른 문제가 파생할 따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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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 파격적이고 부정적인 화법을 선택하는가?

예로 부터 권력이 낮은 곳의 소리를 듣는 법은 없다. 드라마 속 진부한 모습이 아니라 실제 조선이란 나라가 백성을 위해 움직인 나라가 아니란 것,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반 백성 보단 양반의 의견 하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대부의 나라'라는 관점은 개인의 의견 보다 '대기업'을 중시하는 현대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알리고 싶을 땐 '과격한 방법'을 동원하도록 은연 중에 부추키고 있다.

쉽게 말해 파워를 가진 대상에게 의견을 표현할 때 '좋은 말로 해서 안 들어먹는다'란 뜻이다. 그래서 억눌린 사회성은 좀 더 심하게 표현하고 좀 더 과장되게 대항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버마 군사정권에 대항할 방법이 게릴라 유격대나 승려들의 항의 시위 뿐이었고,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시위에서 표현할 방법이 화염병 뿐이었다는 '정서'는 제법 뿌리깊은 인간 역사이다. 군사정권이나 일제 강점기를 맞았던 우리 나라 뿐 만이 아닌 세계적 정서기도 하다.

이런 정서가 군사적 파워나 단체의 힘으로 승화되지 못할 때 혹은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될 때, '욕설'이  발달하기도 한다(출처 참고). 공격할 수 없는 큰 대상을 두고 인간은 욕설을 내뱉게 된다.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향하지는 못하더라도 감정적 배설을 이루어내는 '약자의 가장 강력한 행위'가 욕이다. 과거의 욕은 정서적인 공감을 얻고 있었기에 용납 되었고, 이해 받을 수 있었고,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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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갤러리가 유지되는 지금이 아닌, 초기 DC 인사이드는 이런 악플의 긍정적 성격을 최대한 시원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정치 풍자와 해학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당시엔 네티즌 언어를 이해 못하는 쪽이 더 많았다) 정치권 폼맨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DC유저 선거법 고소'라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약간 믿을 만한 음모론에 의하면, 선거법과 실명제가 강화된 이유는 익명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는 네티즌을 좀 더 쉽게 단속하고 싶었던 정치인의 발상이라는 웃지 못할 견해도 많다(실제 선거법 단속 사례를 보아도 웃어넘기기만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탄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목적없는 '악플'로 발전하는 양상도 보인다. 악플이 용납되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 국가, 정치인, 대기업같이 감히 손댈 수 없는 파워를 가진 존재도 아닌,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일로 '부정적인 대화법'을 시도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그 외에 무의미한 욕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차별 욕설을 옹호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임수혁 선수 악플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항할 존재가 없으면 악플도 무의미하다

테러 수단으로 권력에 대항하던 욕설의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상대하는 '파워'나 '억눌림'의 정체는 예전 보다 몇배는 교묘해진 까닭에 굳이 공공의 적, 화풀이 대상을 찾는다면 '노무현' 정도다. 혹은 어떤 사람은 내 분노가 향해야할 곳의 정체를 시간이 없거나 지쳐 있는 까닭에 꼼꼼히 찾지 못하기도 한다. 아니 찾는다고 해도 공격할 수 없는 대상임은 과거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불특정다수에 대한 만성 악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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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공격성은 투사, 히스테리 같은 심리학 용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일탈행동'에 해당한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리고 일탈행동 제재는 사회구성원 스스로가 합의한 것인 까닭에 언젠가는 스스로를 얽매게 된다. 정확한 상대를 향해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되지 않은 '분노'는 유머도 해학도 카타르시스도 되지 못하고 '범죄'가 되버린다는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을 모욕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래도 좋은 말로 그냥 대화하자.

최대한 자세히 길고 세세하게 글을 서술하는 이 방법을, 내 마음 속에 특정 대상을 향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누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분노가 있고 그 분노를 삭이거나 표현하면서 산다. 또박또박 입바른 소리, 자극적이지 않은 주제로 문제를 지적하면 약간의 파워를 가진 집단 조차 귀기울여 주지 않고, '이슈'도 되지 못하고 파워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가졌던 간에 나는 악플을 만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 분노를 합리적으로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건 부정한 파워를 가진 집단과 마찬가지란 뜻이 된다. 이 원칙적인 방법론을 지키지 못하면 '의사소통'의 길은 요원하다. 파워는 부정함이나 욕설같은 수단으로 거칠게 얻는게 아니다. 하나씩 둘씩 뜻이 모이는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인 - 한국의 욕설 (요약, 황인덕, 한일 욕설의 비교고찰, 비교민속학과 비교문화)
네이버 뉴스 - `뇌사` 임수혁, 무슨 잘못했다고…비방글 파문확산
네이버 뉴스 - 임수혁 '너무한' 악플…"故 최요삼 선수처럼 장기기증 하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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