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안녕, 노빠 - 일개 정치인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Shain 2008. 2. 2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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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날이 흐리길래 오전에 병원을 들려 서둘러 집에 내려 왔다. 약간 지치고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창 밖에 하얀 눈이 쌓였다. 상당히 어렸던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가 애국가를 부르고 금지곡의 상징, 양희은씨가 상록수를 부르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한 지도 오년이 지났구나. 나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던(건강문제로 중간에 심하게 고생을 했으니)  5년이지만 정치인 노무현도 상당한 맘고생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 생각하던 올바른 정치 흐름이란 것, 내게 그것은 '균형'이란 의미이다. 여러 수준의 국민과 이익단체가 존재하는 만큼 사람들의 정치 성향 역시 다양하고, 이 다양한 수준의 모든 사람들이 고른 분포를 보여주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 아닐까 생각해보곤 했다. 오른쪽을 지향하는 사람이 반 있으면, 왼쪽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반 존재해야 한다. 그들의 균형을 위한 노력과 견제가 이상적인 정치라고 생각해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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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통령 노무현 취임을 장식하던 앰블럼 - 대구 지하철 참사로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8명의 국민대표와 대통령이 함께 입장하고 특권을 무시하려 애쓴, 인상적인 취임식 행사였다. 이 때 처음으로 봉황 대신 신문고의 앰블럼이 쓰였다고 한다.


8명의 국민 대표와 함께 입장하던 노무현 대통령. 언론사 사장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의 특권을 무시한 취임식 행사 때문에 비난 아닌 비난을 받았다는 기사는 참여정부의 초기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 지 잘 보여주고 있다. 끝나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은, 자발적인 후원단체 노사모의 활동, 돼지저금통 정치자금 모금과 언론사를 무시하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던, 그때 아니었을까?


나는 평범한, 중도우파 대통령이라도 보고 싶었다

2002년 당시 최선의 선택으로 중도우파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하면서 내심 좌파 정치인이 조금 더 많이 늘어나는 나라가 되어야할텐데 라며 염려했던 기억이 난다. 이건 내가 좌파를 지지한다는 뜻과는 또 다른 말이다. 어느 한쪽이 절대 옳거나 다수가 옳다는 상황 만큼 좋지 않은 건 없다. 더군다나 그 절대 다수가 다른 한편을 극도로 배제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정치에 희망은 없다. 중도우파라는 아쉬운 선택이지만, 그때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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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가 최근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진 노란 목도리와 노무현 대통령 인형 - 2002년 당시에도 비슷한 모양의 작은 노무현 인형을 살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기사)


2002년, 항상 권력을 승계받는 식으로 유지하던 역대 대통령들 사이에서(과거 영부인 대리를 하던 인물 조차 다시 정치 권력을 이어받겠다고 뛰쳐나오는 모습에 기가 막히던 시절) 처음 보는 성격의 대통령 후보에게 감동하고 29만원짜리 살인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지던 모습을 기억해 내며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우리 나라 정치 분야에 첫 희망을 본 셈이다. 약간은 나라가 좌측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고 있는 나이지만 망설임없이 이 후보에게 한표를 주기로 작정했다.

당내 경선을 거치고 올라오는 모습도 후보를 밀어주는 후원단체 노사모(누가 폄하를 하던 간에, 관선 , 정치깡패 수준의 정치에서 자발적 정치인 지원의 모습 보여줬다는 자체로도 역사에 남을 것이다)의 모습도 모범적인 수순을 밟고 있었다.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낼 때 조차 합의 수순을 밟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정몽준의 윤리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노무현 자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 '합리적인'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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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 - 이미지출처 : 오마이뉴스


피로 물든 우리 나라 정치 역사를 돌이켜보라. 박정희가 왜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까지 가야했을까? 전두환이 인심쓰듯 7년 단임제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언론은 대단한 일인양 대서특필하였다. 과연 그가 민주 대통령인 까닭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가? 제 2의 광주가 두려웠을 뿐이다. 6월항쟁 이후 노태우가 보여준 행동 그 이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와 언론은 과거와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준, 노무현 자체를 높이 평가하지 못하고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새로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을 뿐이다. 중도우파 대통령이라도 보고 싶은 염원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노무현에게 왜 감정적인가

컴퓨터 앞을 비운 지 오래 되어(바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제외하곤 꽤 오랜만이다) 올블로그나 다른 메타 블로그들에서 벌어지는 감정싸움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뻔하고 뻔한 '노빠' 타령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사람들은 왜 내가 노빠가 될 수 없는지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남이 어떻게 보는지 따위는 굳이 상관없지만 '감정적인 정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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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홍사덕에 의해 '백수들의 촛불시위'로 폄하된 탄핵반대 촛불 집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 이 무례함을 언제까지 봐야할 지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에서부터 그 자리를 지키는 동안 지지자는 계속 '감정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2002년,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 노무현이란 후보가 한번도 본적 없는 감동적이고 신선한 타입이다'라는 나의 평가에 지인은 '외국에는 흔한 전문 정치인'이란 견해를 보여줬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가치관이나 정치적인 견해가 탁월한 것도 아니고 수단이 탁월한 사람도 아니다. 같은 정당 내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가 낮다. 그러나 최소한 이상적이고 평범한 정치인이 갖출 모든 자세를 갖췄다. 이런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단 사실 자체가 창피한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이 훌륭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나라에 노무현같은 정치인에게 '팬클럽'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권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정치인 표본'이 나타난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역사적인가. 제대로된 정치인을 볼 수도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기쁨을 아마 알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바른 정치'에 대한 희망을 그렇게 엉뚱하게 해석하면 곤란하다.


단지 정상적인 정치인들이 보고 싶을 뿐

일전에 한번 적은 것처럼 좌파와 우파가 50:50을 이루는 나라를 보게 된다면 소원이 없겠다. 내가 싫어하는 극우파라 할지라도 그 합리적인 구성에서 합리적인 표를 얻어 대통령으로 탄생한다면 얼마든지 인정해줄 수 있다. 편법과 부정한 권력이 인정되는 지금같은 상황이 아니라 말이다. 고소영 정부와 강부자 정부라는 별칭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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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자 기사에 올라온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 언론 내에서 봉하마을의 허름함이 '화려함'으로 탈바꿈하는 논리를 이해해주고 싶지 않다.


삼성기름유출사고, 또는 인수위의 오렌지 파동같은 것들. 지적될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당치 않았던 것은 경찰의 영화포스터 수거 기사이다. 몇일전 TV 뉴스를 보니 영화 포스터 수거 업무는 각 구청담당인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저격당했다' 내지는 '대통령 암살'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단 이유로 경찰이 '밴티지 포인트' 포스터를 직접 수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해당 포스터가 영화포스터인 줄 몰랐다(대통령 암살 영화가 광고된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티저 광고가 유행한 건 10년이 넘어가고 있다)라던지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혼란을 노린 과도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경찰이 긴장했기 때문이다 등등 변명 기사를 쏟아부었지만, 사실 그게 영화포스터임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라 본다. 그 TV 뉴스에서 지적한대로 경찰의 과잉충성인 셈이지만 이미 그 기사는 포털에선 검색되지 않는다(KBS VOD서비스는 원래 검색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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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퇴한 박은경 장관 후보자의 '땅을 사랑할 뿐 투기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평범한 정치인이 보고 싶었던 내 꿈에 단단한 대못을 박아주었다. 그 실망을 모르는 사람들은 '노빠'라는 단어의 울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까닭에 '노빠'라는 별명은 면하게 되어 다행이려나. 그러나 여전히 평범한 정치인을 만난 충격이 그립다.


출처 :
네이버 오마이뉴스 -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열려
네이버 미디어오늘 - 언론사 사장들 대통령 취임식 ‘불청객’ 신세(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42625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49979
네이버 뉴스 - 사저 담장 안 노 前 대통령
네이버 뉴스 - 이명박 암살 저지 해프닝
네이버 검색 - 고소영 - 강부자 정부
KBS VOD 서비스 - 민생 치안 뒷전, 포스터 떼러 다니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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