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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무지개' 이희진의 천천히 연기 전략

Shain 2014. 1. 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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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MBC 연예대상으로 주말 드라마가 결방했더군요. 무심코 다운로드 받으려했더니 '황금무지개'와 '사랑해서 남주나'가 방송 목록에 없더라구요. '황금무지개'는 전체적인 내용은 제가 별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닙니다만 연기자들을 보는 재미로 종종 시청합니다. 토요일 방송분에는 박화란이란 이름의 새로운 캐릭터로 이희진씨가 등장했더라구요. 사채업자였던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가로챈 윤영혜(도지원)와 대립하는 역할로 사납고 독한 캐릭터더군요. 이희진도 2013년 한해동안 꽤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같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독하고 사나운 역할로 돌아온 이희진.


1997년 '베이비복스'로 데뷔한 이희진이 연기자가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의외였습니다. 팀의 막내였던 윤은혜는 '베이비복스' 때부터 워낙 나이가 어렸고 해체된 후에 새로 시작하기 편했지만 이미 '베이비복스'로 이미지가 굳어있던 이희진은 연기자로 변신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이희진이 연기자로 데뷔했을 땐 '핑클'의 성유리, 이진, 옥주현같은 멤버들은 이미 한참전에 연기에 도전해 활약중이었죠(성유리는 2000년대 초반에).

연기자가 연기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수도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연기라는 면에서 연기자와 가수를 구분하는게 큰틀에서는 의미없지만 시청자들은 가수 출신 연기자에게 묘한 괴리감을 느끼는게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그네들이 가수로 얼굴을 익어서, 연기에 비해 눈에 띄니까 이질감이 느껴져서 연기를 못하는 것처럼 느낀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그게 그런 것만도 아니더군요. 잘하는 거 같으면서도 뭔가 다르긴 달랐습니다.

소위 '가수 출신' 들이 가끔 보면 연기자 출신 보다 발음도 좋고 발성이 훌륭한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가수였기 때문에 연기자 발성과 다르다는 게 눈에 띄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기자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캐릭터나 감정에 따라 다른 발성법을 훈련받아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곤 하는데 이게 노래하는 발성법과는 당연히 다르겠죠. 가끔 성격이 강한 역할을 맡았을 때 '떽떽거린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목청은 좋은데 연기자들의 발성과 달라서 아닐까 싶습니다.

'베이비복스' 시절엔 상상할 수 없던 이희진의 연기. 뒤늦게 돌아온 그녀의 변신.


'소녀시대'의 윤아나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데뷔 초반부터 드라마 주연급으로 발탁된 건 연기자훈련을 받은 덕분이었죠. 요즘은 이렇게 걸그룹도 데뷰전에 연기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베이비복스'같은 90년대 걸그룹들은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채 인지도만 믿고 대충 투입되는 경향이 있어 훨씬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습니다. '베이비복스'처럼 애매한 시기에 데뷔한 걸그룹들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핑클'의 성유리가 초반에 고생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때문이죠.

드라마 제작진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를 발연기라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연시키는 것은 그들의 출연 자체가 이미 상업적으로 훌륭한 광고 아이템이기 때문이죠. 유명세로 먹고 사는 연예계에서 이미 얼굴을 알렸다는 것은 누구 보다 유리하다는 뜻입니다. 이희진도 배우로 첫출발할 때는 '베이비복스'의 전멤버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특히 '최고의 사랑(2010)'에서 보여준 제니라는 캐릭터는 걸그룹 출신 이력에 딱 맞는 배역이었습니다.




 





'최고의 사랑'은 국보소녀 출신의 구애정(공효진)이 탑스타 독고진(차승원)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입니다. 당시 이희진은 국보소녀의 맏언니 제니로 직접 국보소녀의 춤안무를 선보였고 '몸치'로 알려진 공효진이나 다른 멤버들 보다 훨씬 훌륭한 춤실력을 선보입니다. 배슬기나 유인나도 잘 했지만 확실히 춤추는 모습이 확실히 다르더군요. 신인급 배우들 보다 훨씬 유리한 출발이었고 연기의 단점을 지적받았지만 걸그룹 멤버라는 역할의 특수함 덕분에 쉽게 묻어갈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점점 더 출연 캐릭터를 늘여나가는 이희진. 특별한 천천히 접근 전략.


솔직히 지금도 이희진의 연기력이 연기자 데뷔 때보다 탁월하게 좋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감정표현이 미숙한 편이고 종종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이 독한 건지 화가 난 건지 구분이 안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인공 염정아의 앙숙이자 라이벌이었던 연지연 역의 '내사랑 나비부인(2012)'도 여주인공에게 질투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하기 보단 서투른 편이었죠. 남나비가 발연기하는 톱스타 역이였는데 연지연도 못지 않는 발연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특별출연 형식으로 혹은 단역으로 여기저기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히는 이희진에게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마의(2012)'나 '무신(2012)', '메디컬탑팀' 등에 출연했지만 비중이 그닥 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마의'나 '무신'의 역할은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이라 좋은 인상을 남기기엔 충분했습니다. 경력을 보니 각종 연극 무대, 뮤지컬 무대에도 여러번 올랐던 적이 있더군요. 배우 박근형의 말대로 연기자에게 무대극이 왜 꼭 필요한지 절실히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점점 성장하는 이희진.


짧지만 다양한 출연을 통해 이제는 가수 이희진 보다는 연기자 이희진을 기억할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을 것이고 내년쯤에는 확실한 연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단역이나 조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주연급으로 투입된 아이돌 연기자 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좋은 전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비중있는 배역으로 무리하게 투입되었으면 반발도 컸고 부족한 점도 많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가수 출신 연기자를 일부러 배척하는 시청자는 없습니다. 잘 하고 노력하는 만큼 인정해주는게 시청자입니다. 그래서 천천히 접근하는 이런 이희진의 접근방식에 더욱 호감이 갑니다. '황금무지개'의 박화란은 윤영혜와 서진기(조민기)의 악행을 방해하거나 동조할 역할이고 깡패 두목 역을 하는 김만원(이재윤)과도 얽히게 될 역할 같습니다. 이희진이 이번 역할로 얼마나 큰 발전을 보일 지는 알 수 없으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은 틀림없는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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