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던 사람 중에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같은 인물이 있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면에서도 그 목적을 향한 순수(?)한 집념이 너무도 강해 그 에너지를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많이 비슷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태준처럼 경상도 사투리까지 썼다. 내가 언급한 그 사람은 소꼴을 베러가서 공부를 했다고 했을 만큼 대학교는 커녕 고등학교 조차 다니기 힘든, 그런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했고 어느 분야에서 권력의 정점을 찍었다는 점에서도 이태준과 매우 비슷했다. 이태준이 늘 허기진 사람처럼 짜장면을 탐욕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니 손으로 김치를 쭉 찢어 친한 사람 밥그릇에 올려놓던 그 사람이 저절로 떠올랐다. 권력지향형 인물들 중에는 희한하게 비슷한 타입이 많은가 보다.


목적을 위해서 어떤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 이태준. 도덕이나 정의같은 말은 검찰총장 이태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펀치'의 이태준은 검찰총장으로 법무부장관 윤지숙(최명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박정환(김래원) 검사의 전처인 하경(김아중)과 같은 편인듯한 윤지숙은 어제 드러난 드라마 내용으로 보아 국회의원 진출을 꿈꾸고 있다. 검사 출신이 법무부장관이 퇴임 후 정치인이 된다 - 윤지숙은 국민들에게 어필한 부드럽고 깨끗한 이미지까지 갖췄으니 정치인의 엘리트 코스라 불릴만 하다. 이태준은 그런 윤지숙을 보며 '고대광실에 태어나 턱걸이 한번 안해본 양반'이라 비아냥댄다. 이태준을 꺾으러 계속 작전을 짜는 윤지숙이 자신에 비하면 너무 편하게 그 자리에 갔다는 말이렸다.


반면 이태준의 뒷모습은 윤지숙의 엘리트 코스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태준은 검찰총장이 되기까지 세진자동차 사장이던 형 이태섭(이기영)과 함께 성장했다. 구체적으로 과거를 보여준 적은 없지만 태섭은 이태준의 꼭두각시이자 돈줄이었던 듯하다. 이태준은 애초에 윤지숙처럼 좋은 집안에 넉넉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으니 총장까지 올라오는 동안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 뭐 이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펀치'가 4회까지 진행될 동안 윤지숙은 계속해서 이태준에게 당하는 모양새다. 이태준을 밀어내기 위해 아무리 좋은 작전을 꾸며봐도 불법에 익숙한 이태준의 계략에는 도저히 당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정의'가 무언가에 매몰되는 과정을 첫회부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족을 빌미로 협박해 정국현(김응수)의 검찰총장 출마를 막고 딸의 양육권을 요구해 하경의 청문회 증언은 막는다. 압력으로 안되는 사람은 돈으로 회유한다. 이태준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돈과 권력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지없이 이태준이 제시한 조건에 걸려든다. 이태섭의 세진자동차 비리를 증언할 핵심인물인 양상호(류승수)는 높은 연봉을 제시한 박정환에게 넘어갔고 급발진 사고로 남편을 잃을 위기의 아내는 유일하게 자신들을 도와준 검사 신하경을 배신하고 조강재(박혁권)이 제시한 김밥집에 거짓증언을 한다.


이태준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검사선서 그 따위거 개나 주라 그래'라고 말이다. 정의, 신념, 원칙, 도덕같은 교과서적인 단어는 그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박정환도 그랬다. 신하경 사건에 급발진 사고 운전자의 아내가 증언한다는 말에 긍정적인 예상을 하는 이호성(온주완) 검사에게 박정환은 말한다. '세상이 니 생각 같았으면 나도 너처럼 살았을거야'라고. 세상은 이태준과 박정환에게 늘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 세상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은 남들이 교과서에 써놓을 법한 가치를 하나씩 버려왔던 것이다. 사적인 목적을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일 따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정의 보다는 돈을 선택하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한다.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증언하겠다던 양상호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아내 이야기를 듣고 2억 연봉에 혹하는 과정은 솔직히 비난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내 가족의 배고픔 앞에 얼굴도 모르는 해고 노동자의 죽음과 먹지도 못할 정의란 가치가 뭐 얼마나 중요하단 말인가. 급발진 사고 운전자의 아내가 신하경을 배신하는 모습도 그랬다. 거짓말 한마디만하면 남편도 수술할 수 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김밥집이 생긴다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신하경은 벌벌 떨며 자신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 여자의 모습에 눈물날 만큼 서운하지만 비난도 하지 못한다. 그녀의 비참한 처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포기한 가치는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겨루기에 쓰일 카드에 불과하지만 그 대가로 받은 돈은 그들의 가족을 살리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신하경은 박정환과 자신과 그 증언자들이 권력이라는 장기판의 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급발진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이태섭의 비리를 캐는 과정에서 몇사람이 죽어나갈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지루한 버티기에 동참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태준이나 박정환이 형제와 같은 동지애를 느끼는 것도 어쩌면 그런 장애물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원칙대로 살다가 언제 윤지숙처럼 남보다 앞서나간단 말인가.


어떻게든 가족을 지켜야하는 박정환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뿐이다. 그의 펀치는 어딜 향해야할까.


위에서 언급한 그 인물은 아무나 믿지 않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옆을 지킨 사람에겐 반드시 의리를 지켰다. 예의, 도덕, 원칙같은 말은 그 양반에게 대부분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인맥과 경제력에 올인하며 순수하게(?) 권력을 쫓는 모습이 정말 힘이 넘쳤다. 그런데 허기진 듯 거치게 달려가는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사소하게는 김치를 손으로 찢어먹는 식사 습관부터 크게는 옳지 않은 이유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거친 말투까지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고 싫어할만한 이유는 꽤 많았다. 그 사람과 많이 닮은 이태준 검찰총장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펀치'는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싶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버리는 신념을 검사는 왜 꼭 지켜야할까?


아마도 박정환은 처음에는 김밥집을 선택한 아내처럼 늘 대출에 허덕이는 가난한 가족을 위해 정의를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7년동안 이태준과 동고동락하며 거침없이 달려온 그는 자기 자신의 미래를 잃었고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가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태준이 아내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신념을 버렸고 건강검진 한번 받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남은 것은 고작 3개월의 시한부 생명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버려온 가치가 이제는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 윤지숙처럼 고고하게 살 수 없는, 혹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원망해야할까 아니면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후회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이태준이라는 썩어버린 법조계를 뒤집어놓아야하는 걸까. 박정환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그 답을 찾아야한다. 이제는 사방이 적인 박정환 - 그의 강력한 '펀치'가 누굴 향해 날아갈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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