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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광해군과 정명공주 모두가 피해자라는 관점

Shain 2015. 5. 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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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에서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징비록'을 방송중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 선조라는 임금이 얼마나 답답하고 속터지는 인물인지 볼 때 마다 한숨이 나온다. 전쟁전에는 피터지게 대립하고 싸우던 신하들 조차 전쟁중에는 한뜻으로 뭉쳐 광해군을 밀어주는 판에 선조는 그 좋은 머리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위신이 세워지나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나 그 궁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 보면 선조는 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뒤집어지고 왕조가 바뀌어도 모자란 그 시국에 자신의 자리를 지켰으니 말이다. 비약하자면 선조 한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반정으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야했던 광해군이나 적자로 태어나 광해군에게 희생된 영창대군이나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나 선조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화정'은 선조의 아들 광해군과 선조의 딸 정명공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다. 한 아버지에게 태어났으나 정치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운명. 광해군(차승원)과 정명공주(이연희)가 본디 아무리 따뜻한 성정을 타고난 사람이라 해도 두 사람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짜놓은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주선(조성하)이라는 모종의 세력이 인목대비(신은정) 측과 광해군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어 두 피해자들의 비극은 점점 더 끔찍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역사적 사실에 아주 많은 창작을 보탠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한때 폐서인된 인목대비가 정명공주를 죽었다고 위장했다는 말은 있지만 공주가 일본까지 갔다는 이야긴 말도 안되니까.


이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부분이다. 기존 광해군 드라마나 인목대비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들과는 달리 둘중의 어느 한쪽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질 않아 양쪽 모두가 피해자라는 관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패륜이라는 명목으로 물러난 광해군이 얼마나 아까운 군주인지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임진왜란 동안 신하들에게 밥투정이나 하던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전장을 누비며 활약한 왕자는 광해군이었다. 그런 광해군이 아버지의 구박을 받으며 수많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정적들에게 심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재조명되어 광해군의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많은 선조와 결혼한 인목대비가 권력을 탐낸 탐욕스런 젊은 계모였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광해군 보다 어린 인목대비가 노련한 늙은 정치인들과 인빈 김씨처럼 세력이 쟁쟁한 나이많은 후궁들 사이에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젊은 계비를 들여 적자를 얻고 후계구도를 어지럽혀 놓은 선조의 잘못이 가장 컸고 서자가 왕이 된 마당에 어린 적자가 살아있으면 왕권은 위협받을 수 밖에 없으니 영창대군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선조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니 어린 아들을 잃고 폐서인된 서궁 인목대비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광해군도 정명공주도 모두가 피해자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있다. 광해군은 원치 않게 아버지를 죽인 왕이 됐고 정명공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복오빠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이 되고 있다. 드라마 화정(華政)의 포인트는 이 부분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도 그 점이다. 두 주인공은 대립구도가 가장 분명한 사람들인 동시에 가장 화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인 까닭이다. 드라마틱한 재미를 위해서는 한쪽이 악역이고 한쪽이 선한 사람인 것이 가장 편리하지만 둘 모두가 손가락질받는 악역이 되기엔 억울한 사람들이다. 이이첨(정웅인)을 비롯한 여러 악인들이 등장하지만 통쾌한 재미를 이끌기에는 확실히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기존의 광해군 드라마에서 개시(김여진)와 광해군을 연인 사이로 설정한 경우가 많은데 반해 '화정'은 개시와 광해군을 정치적 동반자로 설정한 부분이다. 전에도 한번 언급한 적있지만 처세에도 밝고 정치적으로도 유능했던 광해군은 아버지의 상궁이었던 개시를 자신의 후궁으로 둘 만큼 어리석은 왕이 아니었다. 개시와의 연인설은 광해군을 폐위시킬 때 반정세력이 뒤집어씌운 모함이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에서 진짜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면 진즉에 폐위를 주도하고 목숨을 빼앗아도 모자랄 만큼 큰 반정의 구실이었을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미 이 드라마도 벌써 10회 이상 방송되었고 역사왜곡이란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이미 진행되어 버렸다. 많은 부분이 아쉽지만 이미 시작되어버린 이상 정명공주가 실제로 남겼다는 '화정(華政)'이라는 글자 - 빛나는 정치- 라는 말의 해석을 광해군과 정명공주와 인조가 어떻게 달리할 것인가 현대인들의 그 해석이 궁금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역사를 읽어봐도 광해군이 선조나 인조에 비해 참 억울하고 아까운 임금이었으나 인조와 선조는 안타깝게도 승자로 기록된 사람들이다. 승자들의 정치가 '빛나는 정치'로 해석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인조가 등장한다니 혹시 광해군이 폐위되어 버티는 이야기까지 그려지려나 그것도 궁금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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