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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와라 뚝딱'으로 본 최근 막장 드라마 흥행공식

Shain 2022. 9. 17.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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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된 '금나와라 뚝딱' 마지막회에서는 그동안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했던 1인 2역 촬영의 비밀을 보여주더군요. 1인 2역 촬영에는 배우 한지혜의 대역을 할, 한지혜와 신체 사이즈가 비슷한 다른 배우 하나가 필요합니다. 한지혜가 대역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정몽희와 손유나 역할을 각각 촬영하면 나중에 두 영상을 합쳐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하는 것입니다. 일명 '크로마키 기법'으로 불리는 동영상 편집 기술인데 그 때문에 한지혜의 대역을 하는 배우 뒤에는 편집을 위한 블루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할 때 유나나 몽희 모두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이유도 그게 편집에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죠.

모두가 용서하고 화해하고 행복해지는 결말로 마무리된 '금나와라 뚝딱'

솔직히 '생방송' 촬영으로 비난받는 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 현실을 자주 읽어보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뻔히 같은 배우인걸 아는 상황에서 굳이 1인 2역 촬영을 했어야 했나 싶었습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과도한 촬영으로 지친 한지혜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특히 늘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유나 역할을 할 땐 화장이 들떴다는 느낌이 해상도 낮은 화면으로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도드라졌습니다. 그러나 '금나와라 뚝딱' 제작진은 다소 무리해보이는 1인 2역을 끝까지 고수했고 시청률 1위도 사수 했습니다.

반면 어제 방송된 49회와 50회를 보고 난 느낌이 그렇게까지 개운하진 않습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어 오손도손 화목하게 사는 건 그렇다고 치지만 살인 미수까지 저지른 장덕희(이혜숙)를 여우같은 아내라며 받아들이는 박순상(한진희)이나 그런 첩 장덕희를 위로하며 아들 현수(연정훈)를 죽이려했던 죄까지 덮어준, 하늘같은 본처 진숙(이경진)의 행보가 영 찜찜했기 때문이죠. 권선징악적 차원에서도 뒤끝이 남습니다. 몽희(한지혜)의 인생을 희생시켜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낸 윤심덕(최명길)의 행동도 오버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생방송 드라마 촬영 환경에서 무리한 1인 2역 촬영. 시청률 1위 유지의 비결.

높은 시청률로 종영된 '백년의 유산'과 '금나와라 뚝딱'에서는 최근 인기를 끄는 한국 드라마의 흥행공식을 찾아볼 수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막장'으로 부를 수 있을 만큼 소재나 설정이 선정적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드라마의 공식이랄까요. 똑같이 '막장'이라 불리면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그냥 손가락질 받고 끝나는 드라마도 많습니다. 인기있으면 무조건 단물쓴물 다 우려먹는 우리 나라 드라마 시장에서 이런 장르가 특화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인기 드라마들의 첫번째 특징은 속도감있고 빠른 전개 입니다. '금뚝'은 캐릭터들의 사연이 다양해 출연분량이 적은 민정(김예원) 하나 만으로 한편이 꾸려질 수 있을 만큼 장황해질 수 있는 이야기였지요. '금뚝'은 그런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간단한 대사 하나로 처리하고 신파로 발전할 수 있는 극중 상황도 재빨리 넘어갑니다. '백년의 유산'도 이 부분에서 유사했는데 시청자들은 저 캐릭터의 사연이 어떻다는 정보는 전달받고 그 캐릭터에게 잠깐 공감하기는 해도 그 감정을 질질 끌지는 않습니다. 순식간에 다음 사건으로 연결되다 보니 '막장'을 느낄 시간도 없는 셈입니다.

아들의 살인미수까지 저지른 첩과 사는 박순상. 무리하고 빠른 그들의 해피엔딩.

두번째 특징은 모든 등장인물이 용서받고 화해하는 무리수 해피엔딩 입니다. '백년의 유산'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른 방영자(박원숙)와 유아 납치를 저지른 백설주(차화연)가 행복해지고 '금나와라 뚝딱'에서 장덕희가 용서받는 모습을 보면 막장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은 '법'없이 사는 사람들같고 '가족'이란 심각한 범죄 마저 용서하는 무적 키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집요하게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건 그만큼 시청자들이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는 뜻인지도 모르죠. '금뚝'에서 몽희와 현수가 처제와 형부 사이인데도 잘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이 해피엔딩 강박증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드라마에 활기를 불어넣는 밉지않은 악역입니다. '백년의 유산'에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면서도 밉지 않은 악역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어쩐지 측은한 악역이었던 마홍주(심이영)는 악역 방영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금뚝'에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독한 말을 퍼부어도 속시원하고 깔끔했던 유나가 그 역을 맡았습니다. 첩을 거느리고 살며 평온한체 하던 시댁의 위선을 날카롭게 꼬집는 유나가 호감도가 높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악역'들은 드라마의 흐름을 급반전시키는, 설득력있는 조커 역을 합니다.

 

 

 

 

 

 

 

 

네번째는 그 무엇 보다 중요한 흥행공식으로 능력있는 배우의 출연입니다. 이번 '금뚝'으로 늘 고만고만하다는 평가를 받던 한지혜를 다시 봤다는 시청자들도 많더군요. 한지혜가 때로 매력없는 캐릭터로 혹평받던게 사실입니다만 이번에 선택한 유나와 그와 대조적인 몽희 캐릭터는 한지혜의 반전 매력을 선보이기엔 최적 이었습니다. 무려 1인 4역을 선보인 한지혜가 이 드라마 흥행의 일등공신인 것은 두말할 것 없구요. 거기에 중견배우들의 활약이 드라마를 살렸습니다. 너무너무 얄미웠던 시어머니 김필녀(반효정)와 그에 장단 맞추는 사돈 최광순(김지영)의 이야기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제와 형부의 로맨스,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인 설정에 점점 더 무뎌지는 시청자들.

다섯번째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설정으로 '금뚝'에서는 처제와 형부의 로맨스를 그리고 '백년의 유산'에서는 의붓남매의 결혼, 출생의 비밀 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금뚝'같은 경우는 이외에도 본처를 거짓말로 내쫓은 처첩갈등, 애인있는 남자와의 결혼,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과거 등 각종 자극적인 설정이 다수 등장했습니다만 처제, 형부의 결혼은 법적으로도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유나의 인기가 폭발적이라 그런지 뒷부분에서 내용이 급반전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막장드라마' 현상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시청자들이 지겨워할수록 화제성을 위해 점점 더 독한 설정을 이용하겠죠.

위에서 언급한 '해피엔딩 강박증'은 어떻게 보면 막장 설정 때문이라 볼 수 있는데 누가 봐도 비난할 수 밖에 없는 관계에 극단적으로 심각해진 갈등을 봉합하자면 극중 등장인물이 부처가 되는 방법 말고는 도저히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가족관계로 얽힌 범죄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고 나면 누군가는 불행해져야하고 주인공 역시 윤리적 결함을 떠안는 셈이니 보는 사람들의 기분이 착찹해질 수도 있겠죠. 어제 '금뚝'에서 보여준 것처럼 관계가 복잡할수록 화해도 어색하고 급할 수 밖에 없는 듯합니다.

드라마의 완성도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공감할 거리가 많았던 '금나와라 뚝딱'

우리 나라는 유난히 '막장 드라마' 장르에 특화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PPL을 따오기 쉽고 연기자의 연기력과 대본에만 의존하면 되니까 제작비도 저렴합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적으로 이런 류의 '소프 오페라'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중파나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막장 드라마를 많이 제작한다는게 문제 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가족드라마에 고부갈등이나 재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보게 되었고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라는 평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금나와라 뚝딱'은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중산층의 허영을 날카롭게 꼬집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짚어낸 점에서 좋았으나 박순상 가족을 통해 일부다처제를 긍정적으로 그린다거나 가족의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등 부정적인 부분도 참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면 뻔하디 뻔한 1인 2역을 흥미롭게 살려난 한지혜와 연기자들의 꼼꼼한 연기 덕분이죠. 재미있지만 완성도 면에선 아쉬웠던 '금나와라 뚝딱' - 다음에는 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사들이 그 특별한 능력을 다른 장르 드라마 제작에도 투자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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