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폴더

금나와라뚝딱, 한국 드라마 특유의 LTE급 해피엔딩 껄끄럽지만 따뜻해

Shain 2022. 9. 18. 01:00
728x90
반응형

결혼하겠다는 예고도 없이 덜컥 아이부터 갖는 자식을 환영할 부모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결혼 상대로 데려온 사람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배신감이나 실망감 때문에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꼴보기 싫어질 정도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이성이야 부모 인생과 자식 인생은 별개고 자식의 선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꼴사납다고 합니다만 자식 인생에 모든 것을 걸었던 부모에게 상의 한마디없이 앞날을 결정하는 자식을 무조건 격려할 수만은 없는게 부모 마음입니다. 윤심덕(최명길)의 지독한 심술이 싫으면서도 대놓고 욕할수만은 없는게 그런 심리의 부모를 어디선가 보았기 때문이죠.

몽규가 무릎꿇고 잘못을 빌자 마음이 풀린 윤심덕은 민정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한다. 출처:

 

그런데 그런 부모들의 응어리진 마음은 아주 간단히 풀리기도 합니다. 갓 태어난 손주를 보면 자식은 미워도 손주가 눈에 밟힌다며 자식 찾는 부모도 있고 그렇게 반대하던 며느리감이나 사위감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풀어지기도 합니다. 윤심덕이 진짜로 원하던 건 민정(김예원)이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것이었고 아들 정몽규(김형준)가 잘못했노라 굽히고 들어오는 것이었겠죠. 나이들면 더 약해지고 어려진다고 하던가요. 엄마가 잘못됐다고 대들기 보다 이해한다고 말해주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몽규와 윤심덕의 화해가 너무 급했고 민정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윤심덕의 모습이 뭔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처럼

어제 '금나와라 뚝딱'에서 보여준 해피엔딩은 전반적으로 무리수였습니다. 현준(이태성)의 교통사고에 초고속으로 화해했던 박순상(한진희) 가족들은 남의 눈 신경쓰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며 닭살스럽도록 행복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박현수(연정훈)가 노블 다이아몬드 사장으로 취임하는 자리에는 본처 진숙(이경진)이 함께 가고 박순상의 집에는 첩인 장덕희(이혜숙)가 들어와 살고 또다른 첩인 민영애(금보라)는 따로 살게 됩니다.

 

마지막회를 의식한 LTE급 해피엔딩. 박순상은 취임식 자리에 본처를 데려간다.

 

어차피 정식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사이들이니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그렇게 따로 사는게 맞지만 여태까지 어떻게든 박순상의 후계자가 되고 남들과 비슷한 가족이 되보겠다며 지지고 볶고 싸웠던 세월은 뭔지 또 화해한 것까진 그렇다고 쳐도 갑자기 살가운 사이가 될 이유가 있는지 참 의아한 장면이더군요. 형제들과 며느리들끼리야 엄마들의 원한이 얽힌거니까 굳이 반목할 이유가 없지만 부모세대는 함께 모여 있으면 뭔가 껄끄러운 사이들인데 참 흥미롭다 싶었습니다. 그네들이 광고하는 LTE 핸드폰처럼 빠른 해피엔딩에 멀미가 날 거 같습니다.

특히 장덕희를 찾아가 박순상에게 가라 조언하는 진숙과 유나(한지혜), 그리고 친자매처럼 구는 민영애의 모습이나 제작진이 일부러 심은 티가 나는 보라색 가짜꽃을 보며 '이름없는 들꽃'이라 부르는 진숙의 모습은 이런 해피엔딩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톡톡히 드러내는 설정이었습니다. 자신을 내치고 첩을 둘이나 거느리고 산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 진숙도 특이하지만 본처가 나타났는데 자식 하나 죽을 뻔했다는 이유로 조용히 살기로 했다는 두 첩의 태도도 재미있습니다. 어떻게 살든 행복하면 그만이라지만 과도한 친한척은 요즘 말로 좀 '오글'거리잖아요.

갈등이 해결된 건 보기좋지만 이렇게까지 친한척하긴 너무 '오글'거리는 해피엔딩.

 

결정적으로 참 급하다고 느꼈던 장면은 그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얼굴 한번 안 비치던 정판금(최주봉)의 등장입니다. 그 사이에 출석부 출연 조차 하지 않던 정판금과 행자(조은숙)가 어제 갑자기 정병달(김광규)과 함께 나왔죠. 윤심덕 가족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시어머니 김필녀(반효정)가 아파트로 떠나고 몽규와 민정, 몽희(한지혜)가 다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최광순(김지영)과 함께 살던 그들의 집도 예전 보단 조용해질 분위기입니다. 김필녀가 따로 나가살자면 정판금과 정병달 가족이 꼭 필요하니까 49회가 다 되서야 얼굴을 비치네요.

예전에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이 세계적으로 인기였지요. 수퍼맨같은 주인공이 악당을 처치하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만들었던 것처럼 요새는 한국 드라마의 '해피엔딩'은 거의 강박증 수준 입니다. 시청자 쪽에서도 '에이 설마 요즘같은 때 새드 엔딩을 선택하겠어?'라고 생각할 정도니 말입니다. 아무리 끔찍한 비극으로 출발한 드라마라도 백이면 백 모두가 화해하고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회가 되면 도저히 화해할 거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울려다니고 말도 안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지요.

 

 

 

 

 

거기다 '금나와라 뚝딱'처럼 '막장' 소린 들었어도 유쾌한 분위기였던 드라마가 뭔가 앙금이 남는 엔딩 즉 가족이 벌을 받고 남은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식의 결말을 선택하면 보는 사람도 뭔가 찜찜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가족이다 보니 처음부터 응징은 불가능했다는거죠 덕분에 까칠한 성격의 대명사였던 유나는 드라마 초반부의 몽희처럼 가족들을 모두 돌보는 해결사 로 탈바꿈했고 어딘가 모르게 순정파 분위기를 풍기던 몽희는 형부 박현수를 아주 쉽게 포기해버렸습니다. 박현수도 그렇게 애틋했던 몽희를 기억상실증에 걸린듯 대하고 있죠.

박순상이 바람을 피운게 가장 큰 죄지만 어차피 아이들이 태어난 이상 서로 인상쓰지 않고 자식들을 책임지는게 도리에 맞습니다.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기왕 그렇게 된거 부모 잘못을 탓하지만 말고 최대한 행복할 방법을 찾으라는 이야기였을텐데 문제는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하는 현실적인 부분이죠. 굳이 박순상의 세 부인들이 서로 따뜻하게 지낼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수와 몽희가 서로에 대한 애절했던 사랑을 접었고 그게 당연한 순리기는 해도 갑자기 어느 순간 처제, 형부가 되는 것도 어색합니다.

갈등이 해결된 건 보기좋지만 이렇게까지 친한척하긴 너무 '오글'거리는 해피엔딩.


현준의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집안의 장남인 현수가 사업을 이어받고 때마침 성은(이수경)의 전 남친이자 아람(박민하)의 아버지인 진상철(김다현)이 죽고 성은이 둘도 없는 현모양처가 되고 현태(박서준)와 몽현(백진희)를 괴롭히며 죽겠다고 난리치던 미나(한보름)는 실종되고 - 물론 소지섭 스토킹하는 귀신 노릇 하느냐 바빠서 나올래야 나오지도 못하겠지만 - 딱 맞춘듯 때맞춰 사라지는 장애물(?)들과 초고속으로 해피엔딩이 성립되는게  '금나와라 뚝딱' 마지막회의 옥에티가 될 것 같군요.

뭐 이 드라마의 장점이 막장 마저 잊게 할 정도로 속도감있는 전개에 있었기 때문에 '와 마지막 해피엔딩까지 속도전으로 처리하는구나' 싶어서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은 드는군요. 개연성, 현실성 따지기엔 처음부터 무리였던 드라마였고 그런 속도감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모 자식 간의 감정을 날카롭게 묘사한 점은 충분히 장점 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의 서사는 좀 부족한지 몰라도 간결하고 빠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요즘 세대에게 가장 잘 맞는 타입인거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회의 마무리를 기대해봐야할 거 같네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