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능력이 뛰어난 영매들이 귀신들과 다과를 즐기고 파티도 하고 뭐 그런식으로 묘사한 컨텐츠를 예전에 본 것같지만 '주군의 태양' 태공실(공효진)이 귀신들과 커피에 마카롱까지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물론 커피 브랜드 PPL 때문에 설정된 장면이겠습니다만 귀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던 태공실이 주중원(소지섭)과 함께 하면서 귀신들과 함께 사는 삶을 즐기기로 했나봐요. 드라마 첫회에 등장했던 무서운 귀신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던 시청자들까지 덕분에 귀신들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픽과 분장으로 만들어진 귀신도 무서웠지만 귀신 보고 놀라는 태공실의 다크서클도 섬뜩했거든요.
드디어 죽은 차희주(한보름)의 쌍둥이로 짐작되는 조깅녀(황선희)가 주군의 고모 주성란(김미경)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납치 사고 일년 뒤에 영국에서 찍힌 것으로 보아 차희주는 쌍둥이였고 그때 죽었던 사람은 둘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차희주의 얼굴을 모를 리 없는 주성란이 못 알아본 이유가 뭘까 했더니 살아남은 쌍둥이는 차희주와 얼굴이 달랐습니다. 주군이나 주성란이 못알아보도록 성형수술을 했다는 뜻인데 어쩐지 차희주를 보는 것같은데다 주군의 비밀인 난독증까지 아는 걸 보니 뭔가 무서운 여자란 느낌이 듭니다.
주군의 아버지(김용건)는 주군을 살리기 위해 백억가치의 목걸이를 납치범에게 주었단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주군 주변의 미스터리한 인물들의 속마음이 하나씩 드러나며 납치사건의 공범이자 주군에게 가장 위험한 인물은 차희주의 쌍둥이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주군도 아버지에게 전달받은 사진으로 차희주가 쌍둥이란 사실을 알고 태공실을 통해 둘 중 어느쪽이 살아남은 것인지 알고싶어하는 듯합니다. 슬픈 눈으로 쌍둥이를 바라보는 차희주 귀신은 주중원과 자매 모두를 맴돌고 있는 듯합니다.
그동안 비밀로 감춰져있던 태양의 '사고'란 것도 곧 밝혀질 듯하고 두 사람의 로맨스가 무르익고 김실장(최정우)이 인정하는 '주군의 태양'이 되어가는 요즘 드라마에서 선보인 '귀신' 설정이 참 깨알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 귀신과 외국 유령의 범람으로 요새는 귀신하면 '악령'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주군의 태양'에 특별출연하는 귀신들은 흥미로울 정도로 인간적입니다. 원래 한국의 귀신들은 무섭거나 잔혹한 복수를 하는 귀신들 보다는 동정이 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지요. '주군의 태양'에서 연출된 귀신들의 비밀을 가볍게 적어봅니다.
몽달귀신과 손각시의 결혼
흔히 '귀신'이라고 하면 죽은 사람의 넋이나 사람의 혼령을 뜻합니다. 크게 보면 오래된 물건에 달라붙은 귀나 떠돌아 다니는 산 사람의 혼령도 귀신이지만 대개는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귀신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살아있을 때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억울한 일이 있을 때인데 결혼하지 못하고 죽은 총각귀신(몽달귀신)과 처녀귀신(손각시)도 그중 하나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결혼도 못하고 죽은 귀신이 가장 안쓰럽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옛부터 결혼도 못한 딸이 있는 집은 딸의 관을 남자들이 지나다니는 대로변에 묻거나 특별한 물건을 관에 넣어 혼령을 위로해주고 결혼 못한 총각이 죽은 경우엔 드라마 속 고스트 웨딩 플래너(이용녀)처럼 혼끼리 결혼을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원한이 쌓인 몽달귀나 손각시가 집안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결혼도 못하고 죽은 가족이 안타까운 동시에 제사를 귀신은 지내줘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무자귀 즉 자식없이 죽은 귀신들이 훨씬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더욱 정성을 들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차희주 역시 주중원 옆을 떠도는 '처녀귀신'인 셈인데 옛사람들은 처녀귀신이나 총각귀신들이 좋아하던 사람 옆을 맴돌며 해를 끼치거나 그의 연인을 괴롭힌다고 믿었습니다. 그 사람을 짝사랑하던 상사귀인 경우엔 더욱 악착같이 못살게 굴지요. 물론 극중에선 태공실이 누군가를 보호하고 싶어하는 차희주 귀신의 진심을 듣고 전해주는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만 처녀귀신 차희주 대신 그 쌍둥이가 못된 마음을 먹으면 태양이나 주군이나 모두 위험한 상황이란 이야기죠.
원한이 풀린 미명귀의 아름다운 승천
'주군의 태양' 초반부 에피소드 중 가장 무서웠던 것 중 하나는 분홍신 귀신입니다. 그동안 자신을 속여온 남편의 진심과 불륜 현장을 목격한 한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는 내용의 이 에피소드는 끔찍한 얼굴의 분홍신 귀신으로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거짓말로 두집 살림을 하던 남편의 가증스런 얼굴이 얼마나 싫었으면 태공실과 주중원에게 도움을 받으려했을까요. 분홍신 귀신은 끝까지 혼자 남은 자신의 엄마를 걱정했던 것같습니다.
원래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죽은 '원귀'들은 '장화홍련전'이나 '아랑사또전'의 주인공들처럼 원통한 마음 때문에 무섭고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원한이 해결되면 그 누구 보다 아름다운 얼굴로 승천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복수는 기껏해야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정도고 산 사람에게 직접 해를 끼치는 경우는 생각 보다 적습니다. 그래서 극중의 귀신들이 승천할 때는 모두 아름답게 해탈한 모습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분홍신 귀신처럼 결혼한지 1년이 안되어 죽은 신부의 귀신을 미명귀라고 합니다. 요즘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통틀어 미명귀라고 한다더군요. 미명귀들은 남편에게 남은 미련으로 후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아 후처들이 이유없이 아프면 미명귀의 혼령을 달래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괘씸하게도 매장직원과 불륜을 저지른 극중 남편같은 경우엔 두말할 것 없겠지요.
귀신은 처음부터 또렷이 보이지 않는다
귀신이 밤에만 보이는 이유는 캄캄한 밤에 공포심이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마음 속에 두려워하는 생각이 귀신을 더욱 또렷이 보이도록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없고 뇌의 착각이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단정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 만큼이나 볼 수 있느냐 없느냐도 생각하기 나름이란 이야기죠. 그런데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귀신이 선명하게 보이는건 아니라고 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행동을 반복하는 귀신이나 자신이 죽었다는 걸 모르는 귀신들은 자의식이 없습니다. 제가 포스팅에서 차희주 귀신이 강력하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이 죽었다는 걸 너무나 똑똑하게 알고 있고 억울함이나 원한을 호소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원혼들처럼 무서운 외모도 아니고 평소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래 귀신들은 태공실에게 들러붙어 졸라대는 사람들처럼 자기 생각 밖에 못하기 때문에 한가지를 반복합니다.
드라마 첫회에 등장한 할머니 귀신은 초반에 그 형체가 또렷이 보이지 않다가 태공실이 누군지 의식하고 난 뒤에야 얼굴이 확실히 보였죠. 귀신 좀 볼 줄 안다는 사람들도 모든 귀신들을 정확히 알아보진 못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귀신이라기 보단 그냥 뿌옇게 보이는 영적인 기운인 경우도 있고 흐릿하게 간신히 성별이나 형체만 보이는 귀신도 있다고 하지요. 형체가 또렷할수록 자의식이 강하고 소원도 강력한 귀신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태공실에게 집요하게 따라붙지요.
지박령과 물령, 터귀신의 장난
킹덤 쇼핑몰 의자에 앉아 휴지통 뚜껑을 돌리는 귀신과 태양이 귀신사진을 찾을 때 화장실에서 봤던 귀신은 일종의 지박령입니다. 태공실과 주중원의 말을 알아듣고 목걸이를 전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대개는 산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 만의 세계에 빠져 있곤 하지요. 귀신을 보지는 못해도 이런 지박령들이 있는 곳에 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네요. 또 태양이 주군의 차를 처음 얻어탔을 때 차 속에서 본 귀신처럼 사고가 많이 나는 곳에서 사고 당시의 행동을 반복하는 귀신도 일종의 지박령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티귀나 부엌귀신처럼 어떤 물건이나 장소에 붙은 귀신들 또는 집터에서 건물을 수호해준다는 터귀신들도 있고 오래된 물건에 사람들의 나쁜 마음이 엉겨서 생기는 귀신이나 많은 사람들의 삐뚤어진 마음이 모여서 생기는 귀신도 사람들에게 장난을 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동티귀는 무속 신상에서 모시는 신주나 신체를 망가트린 어린아이들을 괴롭힌다고 하지요.
주성란의 혼을 쏙 빼놓은 도자기 귀신처럼 물건에 뭍어 인간의 탐욕과 못된 마음을 자극하기도 하고 태이령(김유리)에게 붙었던 성형귀신처럼 점점 더 사람을 광기에 몰아넣는 귀신도 있습니다. 인간들의 욕심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커피마시는 청소년 귀신이나 제사상 못받는 잡귀들까지 점점 더 약해지는 인간의 영혼과 사람들의 욕망에 맞춰 귀신의 종류도 늘어날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형교통사고가 일어난 장소에는 원귀
처음에는 태양이 귀신을 본다는 걸 믿지 못하던 주군은 자신이 생명줄이자 방공호라며 달려드는 태양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나중에는 킹덤 부근에서 엄청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직접 달려가 '방공호'를 자청할 정도로 태양을 걱정하게 되지요. 교통사고가 난 장소에는 많은 사상자가 나고 그 주변에는 원귀들이 나타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원귀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로 살아있을 적의 집착으로 인해 한이 남아있는 귀신들입니다.
고시텔에 사는 형제나 매맞는 아이를 돌봐주려했던 인형에 붙은 아이들 귀신도 어떻게 보면 원귀인데 그 아이들은 복수보다는 다른 아이들은 자신들처럼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녔죠. 물귀신같은 귀신들이 대표적인 원귀로 심한 경우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이려할 때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비명횡사한 원귀들의 집합체를 영산이라고 하는데 전쟁이나 붕괴사고,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는 영산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귀신들은 죽기전 모습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교통사고나 잔인한 살인으로 죽은 현대의 귀신들은 과거 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거기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욕망도 늘어나기 마련인지라 원귀들의 원한도 복잡해져가고 있습니다. 귀신들은 산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회장귀신(이재용)과 그런 아버지가 내연녀를 사귀었다고 믿은 자이언트몰 사장(이종혁)의 모습을 보면 귀신이 있냐 없냐 떠나 귀신들의 세계도 진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군의 태양' 마지막회까지 남은 에피소드는 모두 다섯편. 태공실이 당했다는 사고와 차희주의 쌍둥이가 숨긴 비밀이 마지막 부분을 끌고 갈 핵심인듯한데요. 그 사이에 또 어떤 안타까운 귀신들이 나타나 태공실과 주중원의 이야기를 더욱 달달하게 만들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7년전에 당했다는 태공실의 사고와 15년전에 일어난 주중원의 납치사건에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지 궁금하네요. 오늘밤에도 새로운 귀신 이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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