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나는 노무현을 영웅으로 생각한 게 아니다

Shain 2009. 5. 2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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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지역은 물론 평지에서도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좌우 물길을 바꾸어 가면서 흐른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 2008. 2. 24 임기 마지막날 퇴임 만찬에서

어젯밤 덕수궁 앞 분향소에서 분향소 진입을 막기 위해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큰 슬픔이고 누군가에겐 그저 불법집회의 빌미에 불과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그 개인의 죽음은 분노하는 국민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 위정자가 있을까.

나는 말도 안되는 루머인줄 알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인정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황망한 가운데 향냄새를 맡고 국화꽃을 들고 추모에 동참하면서도 정말 명을 달리하신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평생 한번 만나보지 않은 사람의 부음을 들어도 동정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와 함께한 16대 대통령의 서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빈소를 지켰고 또 많은 사람들이 영정을 보며 눈물을 흘렸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를 위해 밤새워 불밝힌 국민들이 유난히 많았던 전직 대통령. 그의 당선 소식을 듣고 밤새워 시민들은 춤추고 노래를 불렀고 그의 탄핵을 보며 사람들은 거리를 메워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의 서거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영정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당신은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가?



1. 정치에 대한 첫인상을 남긴 대통령

어린 시절, 유난히 대통령을 TV에서 많이 보았다. 요즘이 되서야 '땡전뉴스'라고 비꼬곤 하는 9시 정각 대통령 뉴스는 어린 내가 알던 '일방적인' 정치의 전부였다. 대통령은 법이자 왕이고 아무도 '그들도 잘못할 수 있다' 설명해주지 않았으며 어른들은 그런 말하면 잡혀간다는 알듯말듯한 충고를 해주곤 했다.

TV에서 처음 본 더벅머리 노무현은 그런 '정치'에 파문을 일으킨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잘못이 무엇인지 따박따박 따지고 드는 당당함도 '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상대에게 분개하며 소리지르는 그 모습도 그때까지 내가 알던 '정치인'의 껍데기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청문회 스타' 노무현은 정치란 것은 옳고 그른 것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행위이며 그 행동에 떳떳함을 느껴야하는 그런 성스러운 것이란 신념을 심어준 사람이었다.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지지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청문회의 그 장면이다.



2. 노란 풍선과 노란 돼지의 열풍

정치에 관심을 가진 자는 운동권 뿐이라 비아냥대던 시절. 먹고 살기도 바쁜데 대통령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냐는 시절. 정치 논쟁을 지적 허영 쯤으로 여기던 그 시대에 혜성같이 나타난 대통령 후보가 바로 노무현이다. 아무도 당선되리라 여기지 않던 뉴페이스. 민주당에서 얼굴도 자주 보이지 않던 낙선자 노무현을 두고 희망을 보인 사람은 노사모 뿐이었다.

사람들이 저금통을 모아 대통령 후보를 지원한다는 듣도 보지도 못한 사건. 돈과 권력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대통령감이 아니라 수없이 깎아내려도 '모난 돌'에게 많은 사람들은 저금통을 보냈다. 노란색의 희망, 노란색의 열기 그 폭풍같은 열기로 이회창을 꺾은 노무현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때 처음 밤새도록 그의 당선을 축하하며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었고 그를 위해 기뻐하며 노래했다.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도 있음을 증명해낸 것이 스스로들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국민도 원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 2002년 12월은 국민들의 희망 속에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3. 탄핵에 맞서 촛불로 지켜진 대통령

어쩌다 탄핵이란 사태가 왔는지에 대해 정확한 분석을 내릴 사람들은 많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위정자들의 자만과 착각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자들의 비판을 반대세력 운집 쯤으로 생각했고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반응을 자신들에 대한 용인 정도로 해석했다.

대통령이 물러가라고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국민 뿐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그 자리에 있게 해야한다고 촛불을 들었다. 사람들의 에너지는 충분히 파격적이었고 그들의 기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람들의 에너지는 다시 불타올랐다.

정치 토론을 위한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그 때. 언론의 왜곡을 사람들이 비난하기 시작하던 그 때.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한 만큼 '사이버 전사'들의 반작용도 만만치 않아졌다. 알바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그때를 기점으로 다시 정치 혐오가 가뭄에 땅이 말라붙듯 번지기 시작한다. 대통령 노무현의 마지막 고난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4. 나는 대통령 노무현을 영웅이라 생각치 않는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올바른 역사를 위한 싹이 뿌려졌다 해서 그 위에 곧은 역사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유일한 '내가 뽑은' 대통령으로 여길 지언정 앞으로의 바르게 흐를 강과 곧게 자랄 역사를 위한 기초로 생각할 지언정 그를 완벽한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지도 영웅이나 우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또한 그의 정책과 정치 이념은 나의 가치관과 위배되는 부분이 아주 많다. 한번도 그의 정책 모두를 찬성해 본적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제대로 된' 정치인이었고 정치인이 가야할 나의 이상을 실현해준 사람이었을 뿐 그의 정책에 모두 순응한 것은 아니다. 강은 반드시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용납한 것이다.

자살로 인해 그의 죽음이 미화되거나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메말라버린 정치혐오의 땅, 이 불모지에 자칭 '모난 돌'을 내몰고 정을 맞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슬플 뿐이다. 씨앗을 심고 물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게으름에 아쉬울 뿐이다. 우리에게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는가?



5.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줄기의 가는 방향을 바꾸어도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자살하게 할 무거운 죄를 지우고 사람들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는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대통령을 추모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뜻을 불법시위로 단죄한다고 한들 그 의지가 꺾이는 법은 없는 것이다.

독재 정권과 학살정권, 그리고 눈속임의 정권을 겪어오며 많은 국민의 정치 의지는 좌절되고 우리 나라에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 혐오가 찾아왔다. 정치란 것 지긋지긋하고 정치인들은 혐오스럽다. 그렇지만 누구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한 사람 쯤은 발견하기 마련이다. 땡전뉴스를 시청하던 한 사람의 국민은 그렇게 정치에 대한 희망을 연장시켜 왔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그 이름이 주는 슬픔을 당신은 아는가. 바다로 흐르고 싶은 민심을 아는가. 그 개인의 죽음이 상징하는 많은 것들이 나는 슬프다. 국민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최초의 정치인. 스스로를 모난 돌이라고 이야기할 때, 탄핵을 받을 때 그리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느꼈을 그 감정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바보 노무현의 죽음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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