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

스티그 라르손의 페미니즘, 저널리즘, 그리고 '밀레니엄'

Shain 2009. 7. 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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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의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가 드디어 한글 완역되었다. 3부 총 6권의 완간을 기다려왔기에 판매 첫날 구매했다. 밀레니엄 1, 2부가 그랬듯 3부 역시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지만, 국내 팬들의 기다림을 의식한 듯 오타와 오기가 수없이 눈에 띈다. 아마 문장부호나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출간된 모양이다.

10부작으로 예정되었던 밀레니엄 시리즈는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다. 2004년 11월 9일에 스티그 라르손은 3부 만을 완성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그의 노후를 위해 작업한 소설이 50세라는 짧은 인생을 장식하는 작업이 되버리다니 아쉽다기 보단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결혼하지 않았다는 여자친구 이야기 역시 극적이다. 그의 소설은 이렇게 뒤돌아볼 만큼 매력적이고 흥미있다.



이 소설의 영화가 스웨덴에서 개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2009년 2월 27일) 최고의 흥행율을 자랑하며 칸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한다. 리스베스 살란데르의 실제 모습이 구현되었다는 점과 소설 속 장면을 구현해내었음이 인상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언제쯤 개봉할 지 알 길이 없다. 원출판지인 스웨덴의 장소와 배경이 직접 촬영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외국에는 'The Girl Who Played With Fire'로 개봉할 듯 하다.


다른 무엇 보다 읽는 재미가 보장된 소설

밀레니엄의 전체 3부는 전체가 같은 주인공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한 부가 종결될 때 마다 한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남성 미카엘 블롬크비스트(Mikael Blomkvist)는 수퍼 블롬크비스트라는 닉네임을 가진 소규모 잡지사, 밀레니엄의 기자이다.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여주인공 리스베트 살란데르(Lisbeth Salander)는 아스퍼거 증후군 증세를 보이는 천재적인 해커로 보안업체에서 일하며 미카엘의 뒤를 추적한다.

제 1부[각주:1]는 미카엘이 경제사범을 추적하며 실종된 재벌가의 손녀, 하리에트 반예르를 찾는 내용이고 제 2부[각주:2]는 불법 성매매의 뒤를 추적하는 미카엘과 사람을 살해했단 누명을 쓴 채 자신의 숨겨진 비밀 속 남자를 추적하는 리스베트의 이야기이다. 제 3부[각주:3]는 리스베트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미카엘과 스웨덴 사포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전체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와 범죄 수사물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아래에서 보듯 원작의 표지는 국내와 다르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아스트리드 륀드그렌(Astrid Lindgren)의 소설 속 주인공 칼레 블롬크비스트(Kalle Blomkvist, 명탐정 칼레)와 삐삐 롱스타킹(Pippi Longstocking, 말괄량이 삐삐)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실제 현장 기자로 20년 이상 일해오고 극우파에게 테러 위협에도 시달렸던 작가는 주인공 미카엘의 외모를 자신과 비슷하게 묘사하곤 했다. 청바지에 회색 셔츠, 그리고 검은 재킷을 입은 그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되살아난다. 반면 삐삐의 성인 버전이라 할 수 있을 리스베트는 반사회적인 성격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으로 표현된다.

한번 손을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소설. 미스터리한 뒷 배경은 사실 별것이 없을 지 모르지만 여러 소재와 배경을 잘 배치하고 복선을 깔아 이어지게 만드는 솜씨는 뛰어나다. 작가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특히 리스베트가 활약하는 장면에서는 속시원한 감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주인공 수퍼 블롬크비스트는 뛰어난 기자

소설 속에서 묘사된 그의 기자철학과 작업 방식은 이상적이다 못해 존경스럽다. 추측성 의견이나 루머를 제외한 기사, 사실에 기반한 기사를 쓰기 위해 수없이 기사를 다듬고 증거와 자료를 준비하며 올바른 기사를 쓰기 위해 늘 팀원들과 토론하고 방향을 재정립한다. 증언이나 제보가 충분치 않은 기사는 아예 제외한다. 발로 뛰며 취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위협이 될만한 기사는 발표되기 전에 보안에 만전을 기해서 사회 어느 분야로부터도 압력을 거부한다.

밀레니엄의 영화 버전 포스터, Män som hatar kvinnor(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출처 : http://tja.blogg.se/film/)


무엇 보다 기사 자체가 언론이 아니면 캐낼 수 없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다. 국가가 은밀히 진행하는 비밀스런 일들을 파헤치기도 하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의 비리를 캐기 위해 노력한다. 또 억압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여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 그러나 개인의 사생활을 기사로 다룸에 있어서는 누구 보다도 인간적이고 공정하다. 그는 현상에 대한 공정한 여론을 형성하게 한다.

여주인공의 사생활과 '대중의 알 권리'를 그리고 제보자 보호를 철저히 구분하는 그는 기자라는 직업이 무식한 칼날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공정한 형벌을 치르게 해주는 직업이라 느끼게 해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그런 태도를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고 '돈벌이'가 되도록 해준다는데 있다. 그의 소설 속 스웨덴은 그의  뛰어난 기사에 열광하고 기자인 그에게 지지를 보낸다. 가십 만을 싣는 신문들도 많고 하이에나처럼 유명인에게 달라붙는 기사도 많지만 '밀레니엄'이라는 잡지의 존재 가치를 독자들이 인정해준다.

작가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


저널리스트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주인공은 공권력도 학문의 권위도 사람들의 상식으로도 보호할 수 없고, 파헤칠 수 없는 영역을 파고 들어간다. 재벌과 권력자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정정당당한 자신의 일을 해내는 성격 탓에 위기를 맞기도 한다. 어느 나라나 똑같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신문은 위기를 맞고 있다. 제 3부에 등장하는 편집장, 주인공의 친구 에리카 베르예르의 고난을 보여주며 은연 중에 작가는 판매부수가 줄어든 신문사의 살 길은 언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페미니즘, 그리고 정치성향

의도된 설정이겠지만, 시간 진행 방식으로 진행되는 각 파트별로 작가는 '여성'에 관한 몇가지 보고나 요약문을 집어넣는다. 본인의 기자로서의 재능이 잘 발휘되었을 이 부분은 본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여성'에 대해 잘 의식하지 못한 각종 통계(성폭력, 납치 등)를 기록하기도 하고 여성이 역사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음을 화두로 적기도 한다. 작가는 여성과 남성을 반으로 눈에 보이도록 '반대편'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 부분은 특히 1부에서 도드라진다.

밀레니엄 1부에서 리스베트 살란데르 역을 맡은 노미 라파스(Noomi Rapace). 고스룩에 피어싱을 하고 다소 특이한 취향을 보여주지만 매력적인 여주인공.


주인공 남자는 주로 '남자'와 싸운다. 단순하게 페미니스트와 안티페미니스트 구도로 소설이 진행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작가는 또다른 갈등 구조를 선명하게 배치시켜 놓는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권위적인 사람'과 '효율적인 사람', '부정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 '가해자'와 '피해자', '현명한 사람'과 '단순한 사람" 등. 작가는 '여자'라는 주제를 화두로 스웨덴 사회의 복잡한 갈등 구조를 요약해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부정한 사람들이 더러운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있고 언론과 피해자인 리스베트는 그리고 올바른 사람들이 그 구조에 대항해 싸운다.

리스베트에게 혹은 또다른 여성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가학적이고 기괴하다. 타고난 천재성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리스베트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종종 삐삐같은 파워로 속시원하게 상대에게 복수를 가하지만, 그녀의 사회적인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뿐이다. 그녀는 사회성 제로에 기이한 성취향과 외모를 가진 정신이 이상한 '미친년'일 뿐이고 약하지 않은 그녀를 향한 상대방의 증오는 점점 더 커져간다. 스티그 라르손은 '파워'가 가진 이 변태적인 가학성을 조금은 복잡하게 보여주고 증명해낸다.

영화 속에 등장한 밀레니엄 잡지사의 편집실.


단순히 그들은 여자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학적인 구조에 억압당하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것이 극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거나 남자, 변태, 살인자, 스토커로 불린다고 한들 그 속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공 미카엘은 그 구조와 싸우고 그런 저항에 기묘한 동지의식을 느끼는 리스베트는 자신에게 전혀 없는 사회성을 조금씩 키워가게 된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같은 기자 미카엘과 반사회적인 리스베트의 접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소설 속엔 한국인은 잘 알지 못하는 북유럽국가, 스웨덴의 역사적 정치적 이야기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일선에서 일하던 경력자답게 그 박식한 정보가 자주 드러나는 걸 보고 스웨덴이란 국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정의'를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스웨덴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스웨덴 전체가 그와 같다기 보단(종종 극우파 테러 협박에 시달렸다 한다) 그의 성향이 그러한 것이리라. 10부에 걸쳐 조명하고 싶었던 스웨덴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지 책을 덮으며 정말, 미치도록 궁금하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1. 밀레니엄 1부 - 원제 : Män som hatar kvinnor(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005 출판, 한국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미국은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으로 출판. [본문으로]
  2. 밀레니엄 2부 - 원제 : Flickan som lekte med elden (폭탄을 집어던진 소녀), 2006 출판, 한국은 '휘발유통과 화약을 꿈꾸던 소녀', 미국은 'The Girl Who Played with Fire'으로 출판 [본문으로]
  3. 밀레니엄 3부 - 원제 : Luftslottet som sprängdes(날아가버린 천국), 2007년 출판, 한국은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미국은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으로 출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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