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드라마로 만들어질 것이라 상상 조차 하지 않았던 화랑세기가 드라마로 등장한 것이 반가운 탓인지 문제점이 많은 '전형적 영웅 판타지 사극'임에도 선덕여왕에  대한 시선을 끊을 수 없다. 사극으로서는 지적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지만 드라마로서는 작가가 에피소드를 전개하는 실력이 뛰어난 편이라 버릴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드라마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니 누가 위정자가 되어도 어차피 '백성들은 고생한다'는 미실의 대사를 보며 정치인을 떠올리기도 한다.

위서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인 화랑세기, 그 화랑세기를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든 MBC 선덕여왕은 캐릭터 창조를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최근 이승효란 텔렌트의 연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알천에 대한 기록은 화랑세기, 삼국사기를 통틀어 그리 길지 않다(인기를 끈 탓인지 알천은 이유없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활약한 알천은 그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일 것이다.

미실과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특히 주인공인 선덕여왕과 그의 아버지 진평왕 등은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많지 않다. 또 기록이 있다고 한들 정통 무인답게 무뚝뚝한 성격임을 짐작할 수 있는 김유신 조차 화랑세기의 묘사와는 약간 달라 성격을 짐작함에 무리가 있다. 짧은 기록을 기반으로 창조된 드라마 주인공들은 어떤 의미로 역사가 되살아난 듯 신기하기만 하다.

화랑세기엔 각 풍월주들의 혈연과 업적, 그리고 그 관계와 에피소드를 적은 글들이 많다. 이전에 여러번 적었듯 MBC 선덕여왕은 그 화랑세기, 삼국사기와 어긋나는 묘사가 나올 때가 있다. 드라마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인물이 화랑세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묘사되고 있어 드라마와 화랑세기와 다르다는 블로그 포스팅이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몇몇 인물은 기록과는 성격이 확 다르다.

선덕여왕이란 드라마에 출연(?)해서 가장 이미지에 손해를 입는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세종의 아들이자 진흥왕의 마복자인 하종전군이다. 출처 : MBC 선덕여왕


세종과 하종 전군은 드라마 보다는 훨씬 유능하고 점잖은 인물로 기록된 편이다. 그리고 무사로서의 묘사가 강조된 화랑은 문노, 김유신, 염장, 알천 등이다. 설원과 보종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 설원은 화랑도 잘 장악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의 느낌이 나고 보종은 동성애자의 분위기를 풍긴다. 설성의 후예들로 설원, 보종 모두 외모가 아름다웠다는 점 만은 일치하는 듯하다. 문노에 대한 기록은 그가 화랑 내의 권력을 다투었음을 보여준다.

MBC 선덕여왕에는 화랑세기에 묘사된 모습과 가장 일치하는 캐릭터가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미생이다. 정웅인이란 배우가 맡은 미생은 그동안 미실의 오른팔로서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미실의 충복 역할을 한다. 남편과 애인, 아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미실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놀고 즐기길 좋아하는 성격 탓에 미실에게 힐난을 듣기도 한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 미생은 꼼꼼하진 않지만 눈치가 빨라 누나의 애인과 아들들의 관계를 잘 조율해준다.

미생은 칠칠치 못한 행실 탓에 미실이 감싸주어 위기를 모면했는데 공주들과 사통해 왕이 벌하려 하자 미실은 동생과 내가 인통 가문이라 그러고 다니는 걸 어찌 말리겠냐고 하여 면하게 하고 화랑 주제에 말에 오르지 못해서 문노를 비롯한 윗사람에게 야단맞자 사다함이 감싸주어 화랑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지난번에 적은대로 화랑엔 무를 중시한 타입과 풍류를 중시한 타입이 있는데 미생은 전혀 '무사'로서의 화랑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누나를 잘둔 덕에 풍월주 자리까지 오르며 출세하였다.

화랑세기는 미생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공은 3년 동안 위에 있었는데 의론이 일치하지 않아, 상선(上仙)이 많이 걱정하였다. 이에 하종공에게 양위하고 물러나 천성을 길렀다. 공은 부귀하게 나고 자라 아랫사람의 마음을 몰랐다. 또 색을 좋아하고 재물을 탐한 까닭에 뭇 사람들의 신망이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선문(仙門)에 있어, 낭도들이 문하에서 많은 배출되었으므로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공은 처첩이 많았고 아들이 백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모두 기억할 수 없었다. '미생기(美生記)'에 “공의 용모가 수려하고 말에 운치가 있었다”하였다. 남도(南桃)에 갈 때마다 유화로서 목숨을 바치기를 원하는 자가 천백을 헤아렸다. 공이 한번 눈길을 주면 따르지 않는 여자가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공을 천간성(天奸星) 하늘의 간사한(간음할) 별을 의미한다. 이 라고 하였다. 평상시에 시첩의 수가 …인데 눈썹을 그리고 아름답게 화장을 하였다. 그 향락함이 천자보다 더하였다. 진(陳)나라의 사신이 …상국(上國)에도 또한 아직 이와 같은 재상이 없다고 하였다. … 상국의 사절이 되어 그 제도를 두루 수집하여왔다. 까닭에 … 공은 어머니와 손위 누이에게 효도하기를 감히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출처 : 화랑세기 필사본 - 이종욱 역

미생은 궁에서 지내며 태자 공주들과 어울린 인물이기도 한데 미생과 설원과도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던 미실은 사도왕후의 명으로 세종의 아내면서도 동륜태자와 관계를 갖고 또 진흥왕의 총애를 받았다.  미실은 자신의 은밀한 행적을 질투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미생에게 동륜태자를 '여색'에 빠트리도록 한다. 불륜을 위해 보명궁주(진흥의 후궁) 궁의 담을 넘던 동륜태자는 개에게 물려죽는다. 이 일을 들켜 미실과 미생은 궁에서 물러나고 위기에 처하지만 진흥왕의 사랑이 두터워 무마되었다.

천간성(天奸星)의 이미지에 적절한 목소리와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정웅인의 미생랑은 화랑세기에 기록된 풍월주 중 가장 구설에 많이 오른 사람이 아닐까 한다. 출처 : MBC 선덕여왕


동륜태자와 더불어 돌아다니다 벌어진 일화 중 재미있는 것이 있다. 아름다운 부인이 있단 이야길 듣고 태자와 찾아가 관계를 맺었으나 태자가 죽고서는 첩으로 삼으려 했다. 미실이 '아이가 어미를 찾으니 그냥 색공만 하게 해달라'는 부인의 호소를 듣고 남편있는 여자를 탐한다고 꾸짖는다. 미생이 부인을 돌려보내고 그 여인의 남편 당두를 관직에 오르게 해주자 당두는 고맙게 여겨 다시 아내를 바치려 한다. 그 둘은 끝까지 친하게 지내며 출세길을 도와주고 충복이 되었다. 색을 추구하는데도 '도리'를 따졌다는 미생.

미생이 이처럼 간사하고 여색을 밝히는 독특한 인물이긴 한데 드라마에서 묘사하듯 그에게도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니 바로 춤과 음악에 능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초기에 유리컵에 물을 담아 연주하는 고현정의 음을 바로 잡아주고 화랑들이 춤과 연주는 미생을 따라갈자가 없다고 칭찬하는 장면은 화랑세기와 일치하는 묘사이다. 탐욕스러워 비난받기만 하던 미생에게도 칭찬할만한 재주 하나쯤은 있었던 모양이다.

외국어를 구사하며 상인들과 외국 대사를 접대하는 모습은 무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정웅인이라는 배우가 화랑세기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간사하고 유들유들한 캐릭터는 책에서 살아난 듯 아주 비슷해 보인다. 미실이 가볍게 던진 질문에 여든 여섯번째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그럴듯하다. 대부분이 기록과 드라마 속 캐릭터의 성격이 유사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한 대남보는 미생의 아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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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lliud.net BlogIcon 의리
    2009.07.16 21:50

    화랑이라는 직업이 그리 멋있지만은 않았다는걸 잘 알게 해준 드라마군요.

    •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09.07.17 04:37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문노, 김유신, 김서현 등의 가야출신들은 무술을 연마하고 공을 쌓아 자신들의 실력을 인정받길 원했고 귀족의 자제라도 하종, 사다함, 알천 등은 전쟁에 출전하여 공을 세웠는데 그들처럼 노력하지 않고 단지 골품 만으로 화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좋은 말로 그들의 도를 풍류라 부른다 한들 골품이 가진 한계이자 화랑의 부정적인 일면인 건 사실이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