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시청자들의 길티 플레져 MBC 욕망의 불꽃

Shain 2010. 10. 25.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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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즐기게 되는 것들을 말한다. 혹은 비난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가까이하는 것들을 뜻하기도 한다. 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는 종류들 혹은 불륜 드라마들이 대표적인 시청자들의 길티 플레져가 아닐까 싶다. 댓글을 보아도 게시판을 보아도 늘 비난의 대상이 되는 드라마지만 희한하게 시청율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MBC '욕망의 불꽃'은 평소 시청자들이 비난하는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불륜, 아내의 과거, 출생의 비밀, 한 모녀가 한 부자를 유혹하는 비도덕적인 관계, 재벌의 재산싸움, 혈육 간의 전쟁 등 기존 드라마들의 문제점이라 하던 내용은 모두 다 갖추고 있다.



첫회에 밝혀진대로 윤나영(신은경)과 백인기(서우)는 모녀 지간이다. 윤나영의 남편 김영민(조민기)의 아들인 김민재(유승호)는 윤나영과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이다. 한 모녀가 한 부자를 두고 야망을 펼치는 내용이니 스토리를 듣자 마자 혀를 차게 마련이다. 법적으론 남남이지만 의붓 남매와 다름없는 김민재와 백인기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니 이 드라마는 막장 확정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그 둘의 연애를 나무랄 수가 없다. 어머니인 윤나영의 인생이 꼬여도 그렇게 꼬일 수가 없다.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 빚쟁이가 뒤집어놓기 일수고 첫사랑이랍시고 사귄 남자는 떼어놓겠다며 깡패를 보낸다. 남들 속여 몰래 낳은 아이는 죽은 것으로 알고 있고 언니 인생 말아먹으며 재벌집 며느리가 됐는데 남편에겐 임신한 애인이 있다. 이렇게 지독한 인생을 사는 엄마가 있는데 자식 커플을 비난할 틈이 없는게다.

재벌집의 후계 다툼도 윤나영에게 쉴틈을 주지 않는다. 김태진(이순재)의 둘째 아들 김영준(조성하)는 꾸준히 노력해 이미 그룹의 요직을 맡고 있고, 남애리(성현아)는 친정집의 위세를 빌어 틈틈이 김태진의 의중을 압박한다. 틈새를 노리는 큰아들 김영대(김병기)와 큰 며느리 차순자(이보희)는 둘째와 셋째가 다투는 동안 어부지리를 얻고 싶어한다. 김태진이 밖에서 나은 아들 김영식(김승현)과 김미진(손은서)는 집안 재산을 어떻게 떼어먹어볼까 궁리하냐 바쁘다.




거기다 연기하는 배우들도 하나같이 프로급이다. 신은경을 상대하는 재벌 집안의 둘째 며느리는 악녀 연기로 빼어난 성현아이고, 김영민의 둘째 형으로 놀라운 존재감을 자랑하는 둘째 형은 배우 조성하이다. 큰형 내외도 만만치 않은 연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인데 윤나영의 언니 윤정숙 역할과 연인 강준구 역할은 각각 김희정과 조진웅이다. 주연급을 제외하고도 연기라면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채운 것이다.

25일 방영된 내용에선 막장스러움이 한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윤나영의 첫사랑이자 백인기의 생부인 박덕성(이세창)은 윤나영의 동서 남애리(성현아)와 불륜 관계에 있다. 윤나영이 젊을 때 모르고 있던 라이벌이 자신의 동서로 증오를 불태우기 더 좋은 상태가 된 것이다. 김민재의 친모인 양인숙(엄수정)은 윤나영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지만 다시 친아들 앞에 나타나 갈등을 유발하고 있고 김태진의 아내 강금화(이효춘)는 후계에 욕심낸다.

김민재의 친모인 양인숙은 송진호(박찬환)과 실질적인 부부 관계에 있었다. 윤나영에게 받아온 돈을 털어가는 송진호는 점잖아 보이는 얼굴과는 반대로 도박광인데다 날건달이다. 윤나영이 자신의 아들이라며 집착을 보이는 김민재는 어쩌면 송진호와 양인숙의 아들로 김영민과 전혀 혈연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이들 커플의 출현은 그 자체로 막장이지만 또다른 출생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큰 며느리 차순자는 알고 보니 시어머니 강금화와 먼집안 친척 사이다. 김태진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온 시어머니 강금화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엉망진창 족보가 형성된다. 둘째 며느리는 노골적으로 후계를 가지기 위해 시동생들 앞에 욕망을 드러내놓고 있고, 첫째 며느리는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오가며 이익을 얻고자 한다. 재산싸움 앞에서 체면 따위는 이미 아무것도 아니고 마음을 들킬까 속다른 말을 하기 일수다.

백인기는 백인기대로 인생이 순탄치 않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기 1위의 영화배우는 늘 악플과 악명을 달고 다니고 데뷰하기전에도 거친 인생을 살았다. 그때 찍힌 비디오 때문에 협박당하고 있고 늘 불안한 상태로 자신의 연예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사형수 아버지를 둔 것에 절망해 양어머니를 떠난 백인기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윤정숙(김희정)을 두고 고아라 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킬까 아슬아슬하다.

처음부터 이 드라마의 중심 테마이자 '소재'는 욕망이다. 두 여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부정한다. 등장인물들의 끝없이 뻗어나가는 욕심이 극의 중심을 끌다 보니 '착한 인물'이 늘 구도에서 밀린다. 백인기도 윤나영도 윤정숙을 가까이 두지 않고 떠나려 한다. 윤나영은 욕망을 위해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았지만 한순간 죄책감에 시달릴 지언정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



이런 주인공들의 행동이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한다. 욕망이라는 자체가 타인의 희생을 요구할 땐 과감히 드러낼 수 없는 소재이다. 김영준에 눌린 김영민은 어릴 때부터 숨겨진 욕망이 있지만 늘 눈치를 본다. 시아버지 앞에서는 사투리까지 써가며 욕망을 저울질하는 아내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시청자들은 사람이 저런 짓을 하면 되나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숨겨진 본능으로 욕망은 '그럴 법' 한 거 아닌가 싶어 곁눈으로 보게 된다. 거친 말도 서슴치 않으며 모든 장애물을 걷어가는 윤나영을 조금쯤 응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드라마의 주제도 내용도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길티 플레져'가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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